본매로우와 생 와규가 들어간 호화로운 쌀국수 - 와 문제의 카르파쵸
밴쿠버 오기 전부터 밴쿠버에 쌀국수 맛집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왔다. 어느 가게를 가야 할지 고민했는데 마침 숙모께서 요즘 인기가 많은 맛집을 알려주셨다. 미슐랭가이드 빕 구르망에도 수록되어 있었다. 쌀국수가 쌀국수 아닐지 생각이 들면서도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다. 예약제라고 들은 것 같아 걱정했는데,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다행히 당일 대기도 가능하다고 쓰여 있어 점심에 줄 서서 대기하고 맛볼 수 있었다. 가게 이름은 ‘런치 레이디(The Lunch Lady)’이다.
체감상 30분 이상 기다렸다가 햇빛이 눈을 직격으로 강타하는 자리로 배정받았다. 옆자리가 비자마자 자리를 바꿔달라 부탁했다. 줄 서면서 구글 지도 후기를 많이 읽어봤더니 한국분들의 사랑 어린 후기가 많았다. 공통으로 추천하는 메뉴가 점점 추려졌다. 먹고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닌데 셋이 갔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여러 개 먹어보자 싶어서 쌀국수 외에도 특별히 추천이 많았던 메뉴를 모두 시켜보기로 했다.
카르파쵸를 주문할지 여부를 두고 그와 나의 의견 충돌이 일었다. 난 다들 맛있다고 하니 궁금해서 시켜야 한다는 쪽이었고, 그는 딱 봐도 맛이 없어 보이는데 왜 시키냐는 쪽이었다. 도전파와 안전파가 같이 여행하면 이렇게 가끔 의견이 다르다. 점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나는 몇 가지 메뉴를 주문하면서 문제의 카르파쵸에 관해 물었다. 점원은 ‘많이들 주문하는 메뉴이고 아주 맛있다’고 했다. 가게 점원인데 그럼 당연히 맛있다고 하지 맛없다고 하겠나. 하지만 나는 사심을 가득 담아 그 말을 긍정의 사인으로 받아들였다. 카르파쵸도 함께 주문했다. 나는 한국인들의 입맛을 믿는다.
음료가 먼저 나왔다. 미모사라는 음료가 궁금해서 주문했는데 달달한 건 예상했지만 예상외의 알코올이 훅 같이 들어왔다. 뜨끈한 햇빛을 느끼면서 몇 모금 홀짝거리는 것만으로도 취하는 기분. 카르파쵸는 예상보다 일찍 나왔다. 그런데….
한 입 먹자마자 ‘이건 아니다’는 경고가 혀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뇌를 강타했다. 음식에 고기랑 풀이 있으면 그래도 기본적으로 기본 이상은 할 것이라 기대하고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정말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돈이 아까워도 도저히 먹고 싶지 않은 그런 맛이었다. 그와 그의 친구도 같은 느낌을 받은 것 같았다. 그는 어차피 맛없는 음식을 도대체 왜 시키냐, 이해할 수 없다고 연거푸 이야기했고 가뜩이나 음식이 맛이 없어서 속상한 나는 화가 났다.
아니 맛없을지 있을지 시켜보지 않으면 어떻게 아니?
음식이 맛없으면 맛없구나 하고 말면 되는 거지(?)
이미 시켜서 먹어버렸는데 뭘 어떻게 하니?
내가 네 말을 무시한 것도 아니고 너무 궁금해서 시킨 거잖아. 너는 실수 안 하니?
-도전파의 일방적 입장에서만 서술함을 안전파들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흠흠. 아무튼.
구글 지도에 자신의 감상을 쓰는 건 온전히 그 사람의 자유이며 그 말을 들을지 말지도 나의 선택이다. 하지만, 이날 나는 내가 오롯이 한 선택임에도 카르파쵸가 너무너무 맛있으니 꼭 시켜야 한다고 했던 기억 안 나는 누군가와 문제의 음식이 ‘베리 굿’이라 말한 점원이 조금 미웠다. 난 이럴까 봐 정말 웬만하면 ‘너무 맛있다’는 표현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누굴 탓하리. 추천하면 한다고 뭐라고 하고 안 하면 안 한다고 뭐라고 했을 거면서. 별로일 게 예상되어도 궁금해서 시도하는 나와 모험을 싫어하는 그의 조합이 거의 처음으로 아주 맛없는 음식을 만나 마찰이 일어난 날이었다(하지만 난 과거로 돌아가도 아마도 궁금하다며 또 카르파초를 주문하지 않을까).
미슐랭 쌀국수라고 제목에 광고해놓고 메뉴 혹평과 싸움으로 분량의 반을 채우는 것. 그것의 정그루의 브런치스토리이다(아님).
그러면 다시 추천 글로 돌아가 보겠다. 이곳에서 유명한 쌀국수는 ‘본 매로우가 들어간 와규 쌀국수’이다. 이름만 들어도 호화스럽다. 난 쌀국수에 본 매로우가 들어간 것도 생고기가 따로 나오는 것도 여기서 처음 봤다. 본 매로우를 싹싹 긁어 넣고 생고기를 부어 섞어서 먹어보면?
너무 맛있다.
그는 한 입 먹고 세상에서 먹어 본 쌀국수 중에 국물이 제일 맛있다고 했다(그 후에 쌀국수 세 번 더 먹고 말이 바뀌었던가 아니었던가?). 국물이 깔끔한 듯한데 깊이가 깊어서 이런 국물이라면 어디서 쌀국수 분말 부어서 만든 그런 쌀국수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원래도 고기가 들어있는데 생고기를 따로 준비해 담아 주는 것이 참 특별해 보였다. ‘핏물 하나 나오지 않는 고기를 취급한다, 고기에 자신 있다는 얘기 아니겠냐’는 지인의 말씀을 듣고 납득했다.
신선하고 뜨거운 물에 갓 들어가 야들야들한 고기와 쌀국수를 같이 집어 먹어보니 맛이 참 좋았다. 그러곤 또 깔끔하면서 깊은 국물을 삼킨다. 이것이 바로 미슐랭의 품격인가, 생각했다.
대기는 길었고 자리는 협소했지만, 충분히 기다림과 불편함을 감수할 만한 경험이었다. 같이 주문한 쌈 싸 먹는 게 튀김과 고기도 맛이 전반적으로 맛이 좋았던 기억이다(‘엄청 맛있다’고 나는 말하지 못한다. 이유는 상술). 맛집이라고 인정할 만하다. 다만 한 가지 메뉴는 부디 신중하게 고민하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그게 무엇인지는 위에 너무 길게 써 놔서 다들 아실 거라 믿는다.
“함부로 런치레이디에서 카르파쵸를 시키지 마시오!”
런치 레이디
The Lunch Lady
1046 Commercial Dr, Vancouver, BC V5L 3W9 캐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