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밤새, 언제든 환영입니다!
캐나다에 오기 전에도 어렴풋이 몇 번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치즈케이크는 캐나다가 진짜 맛있다고.
그의 친구를 만나던 어느 날. 친구가 그 치즈케이크 집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그의 눈빛이 변했다. 바로 그날 그 치즈케이크집에 같이 방문했다. 케이크를 한 입 문 순간, 그 말이 허풍이 아니었음을 단번에 알았다.
이 가게는 밴쿠버, 그랜빌 아일랜드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마치 서커스 제목 같은 글씨체로 Cheesecake etc.라 쓰여 있고, 내부가 보이는 창의 일부는 빨간 커튼으로 가려져 있다(그래서 서커스를 떠올렸을지도). 내부는 어두운 색으로 칠해져 있고 내가 태어나기 전 잘 모르는 어느 시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느낌이었다. 아직 해가 쨍쨍한 일곱 시, 오픈 시간을 막 지나 도착해 금방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이곳은 케이크 기본 맛을 고르고, 소스/크림을 고르고 토핑을 고르는 구조인데, 일단 한 가지 맛은 그냥 기본으로 주문하고 나머지 하나는 점원분의 추천을 받기로 했다-저녁도 빵빵하게 많이 먹고 갔지만 여긴 보통 케이크집이 아니니까-. 점원분은 자신 있게 초콜릿 케이크와 특별한 크림 그리고 아몬드 슬라이스와 이것저것을 추가한 케이크를 추천했다. 기대도 되었고 솔직히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 추가금액 많이 나오겠네..’
케이크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내부를 구경해 보니 생각보다 좌석이 많고 잘 보이지 않지만 여기저기 공간이 나뉘어 있어 사람들이 더 들어갈 수 있었다. 느지막한 일곱 시에 열어서 새벽까지 운영하는 치즈케이크 가게라니. 조금은 동화 같고 재미있었다. 재즈공연도 한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너무 일찍 들어가서 너무 빨리 먹고 나와서 그런가, 평일에 가서 그런가 아쉽게도 재즈 공연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가게 한쪽에 놓여있는 피아노가 계속 내 시선을 끌었다. 여행에 가서 피아노를 치는 것은 나의 로망이자 행복이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조심스럽게 피아노에 다가갔다. 멀리서 봤을 땐 멋들어진 그랜드피아노인 줄 알았는데 무늬만 그랜드인 디지털피아노였다. 악보대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쓰여 있었다.
언제든 피아노 치셔도 됩니다.
클래식 노래 10분, 일반 노래 10분 이내.
재즈 음악은 밤새 치고 언제든 또 치러 오세요!
내가 이 날을 위해 몇 달간 재즈피아노를 배운 게 아니던가. 피가 끓고 두근거렸다. 설레는 마음으로 내가 악보 없이 연주할 수 있는 끝내주는 재즈피아노곡을 상상하는데…
놀랍게도 단 한 곡도 없었다. 클래식 곡이라도 칠까, 서툰 재즈피아노 곡이라도 칠까 생각하다가, 이런 실력으로 연주하는 게 부끄럽다는 생각과 동시에 오늘 처음 본 그의 친구들도 있는데 굳이 피아노를 치겠다는 게 수선을 떠는 것처럼 느껴져 자리에 앉았다.
드디어 케이크와 음료가 나왔다. 얼핏 보기엔 평범한 모습인데 이게 뭐가 그리 맛있을까? 한 입 베어 물었다.
놀랐다.
여느 치즈케이크처럼 꾸덕하게 확 들어오지도 않고 짠맛이 확 올라오지도 않으며, 얼핏 먹으면 폭신한 일반 케이크 같은 느낌이면서도 케이크 시트 느낌은 아닌, 부드럽고 입에 무언가 남지 않으면서 고소하고 맛있는 그런 치즈케이크였다. 나로서는 처음 먹어 본 치즈케이크 스타일이었다. 캐나다 치즈케이크가 맛있다고 할 만한 맛이군, 생각했다. 점원분이 추천해 준 호화로운 초코치즈케이크도 물론 맛있었지만 역시 최고는 순정. 치즈케이크와 위에 올라간 크림을 같이 먹으면 참 맛있고 과일 시럽 같은 토핑은 없는 게 낫다 생각했는데 막상 없이 계속 먹으니 조금 물리는 기분이라 딸기나 블루베리 토핑을 추가해 따로 달라고 해서 조금씩 같이 넣어 먹는 게 가장 좋은 조합 같다.
밤에 차를 타고 보면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어느새 어두컴컴해진 늦은 밤, 많은 사람들이 치즈케이크를 먹으러 모여있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한 번 먹고 왔으면 아쉬웠을 텐데 나중에 삼촌과 숙모를 모시고 한번 더 다녀와서 아쉬움이 덜하다. 특별했던 치즈케이크와 특별했던 공간. 나중에 언제쯤에야 다시 한 번 방문할 수 있을까?
그때는 더 느지막이 방문해 재즈공연도 기다려 보고, 나도 옆 사람들의 독려에 못 이기는 척 디지털피아노로 가서 멋들어진 곡을 연주하고 환호를 받으면서 조금은 수줍게, 하지만 멋들어지게 인사하고 들어오고 싶다. 그곳에 같이 케이크를 먹고 있던 이름 모를 드러머와 재즈보컬이 갑자기 튀어나와 같이 노래를 하면 금상첨화겠다. 그리고 혹시나 연주가 별로이면 어떤가? 그것도 재즈인걸. 중간에 노래를 멈추지만 말고 신이 나서 연주하고 싶다.
이번엔 비록 연주는 하지 못했지만, 밤에만 여는 분위기 있는 이 치즈케이크집을 떠올리면 듣지 못한 신나는 재즈음악이 같이 떠오르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