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 없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갈까?

본질의 계보 에필로그 - 끝나지 않은 질문

by wis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이 만물의 근원 ‘아르케’를 찾아 나섰던 그 순간부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철학의 거인들이 펼쳐 보인 눈부신 지성의 향연, 중세 신학자들의 경건하고도 치밀했던 사유, ‘이성’의 횃불을 높이 들었던 근대 철학자들의 담대한 도전, 그리고 마침내 현대 철학의 다채롭고 때로는 현기증 나는 풍경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본질’이라는 오래된 질문을 이정표 삼아 참으로 길고도 흥미진진한 시간 여행을 함께했습니다.


이 여정을 통해 우리는 ‘본질’이라는 것이 결코 하나의 고정된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질'은 시대의 정신과 사상가의 고뇌 속에서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때로는 하늘 저편의 영원불변하는 이데아였다가, 때로는 우리 발밑 현실 속에 숨 쉬는 형상과 목적이기도 했고, 경건한 신앙 속에서는 창조주 신의 마음속 깊은 예지였으며, 빛나는 이성의 시대에는 인간 정신이 구성해낸 세계의 질서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 존재 자체가 의심받거나, 끊임없이 해체되고 또 새롭게 생성되는 그 무엇으로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확고한 ‘본질’이나 절대적인 ‘진리’가 사라진 시대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유동적이며, 마치 모래성처럼 끊임없이 허물어지고 다시 세워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그렇다면 ‘본질’에 대한 수천 년의 탐구는 이제 그저 빛바랜 과거의 유산일 뿐, 더 이상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 되었을까요?


저는 감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본질의 부재’ 혹은 ‘본질의 다원성’이라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더욱 절실하게 우리 자신과 세계의 의미를 묻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절대적인 기준점이 사라진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우리는 스스로 별을 읽고 방향을 찾아 나아가야 하는 항해자가 된 것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우리 앞에는 이런 질문들이 놓여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면, 나는 무엇을 믿고 어떤 가치를 내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를 여전히 ‘나’이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더 나은 삶’, ‘더 좋은 세상’의 모습은 과연 어떤 그림이어야 할까?"


이 장대한 ‘본질의 계보’를 따라오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어쩌면 ‘본질’이란 우리가 마침내 도달해야 할 견고한 목적지가 아니라, 우리가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하며 그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할 저 너머의 지평선과 같다는 사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지평선은 우리에게 안락한 해답이나 안정감을 주는 단단한 땅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불확실성과 열린 가능성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용기 있게 선택하며, 우리 시대의 ‘본질’을 새롭게 써 내려갈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발견하게 됩니다. 플라톤의 동굴에서 벗어나 빛을 향해 나아가려 했던 그 간절한 노력처럼,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 속에서 삶의 목적을 찾으려 했던 그 뜨거운 열정처럼, 칸트가 인간 이성의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이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도덕 법칙을 세우려 했던 그 숭고한 용기처럼, 우리 역시 이 끝나지 않은 질문 앞에서 각자의 답을 찾아가는 고독하지만 의미 있는 여정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본질’을 묻는다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의 의미를 묻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길고 긴 이야기가 여러분 각자의 마음속에 잠자고 있던 ‘본질’에 대한 탐구심에 작은 등불 하나를 밝혀드릴 수 있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본질’은 무엇인가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 온전히 여러분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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