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9
내가 일을 하게 된 이래 아이와 같이 지내는 시간은 준 반면, 같이 이야기하는 시간은 더 늘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도 수다 모드와 묵언수행 모드를 수시로 넘나들며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아이지만, 요즘 달라 보이는 것이 있다면, 엄마인 나에 대한 고마움 혹은 미안함을 느끼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내가 음식 하느라 힘들까 봐 제일 만들기 간단한 음식을 해달라고 하거나 빵을 먹으면 된다, 심지어 아침은 먹지 않겠다고 얘기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달라진 건 아이뿐만이 아니다. 도서관에 나가기 전에는 아침 7시 반에 겨우 일어나 아이를 등교시켰다면 지금은 알람보다 1시간이나 빨리 일어나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1인분씩 유리그릇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도서관으로 간다.
아이는 아이대로 그런 나의 음식을 더 고맙게 먹고 싹싹 비운다. 가끔은 점심시간에 학교 앞 분식집에서 산 김밥이랑 어묵을 집에 두고 나올 때도 있는데, 이 또한 싹싹 비운다.
오늘은 수학학원에 다녀온 뒤에 1시간이나 내 옆에 붙어서 수다를 떨었다. 전에도 한 번 이야기보따리가 터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 하긴 했었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노래가 안 된다면서 노래를 봐 달라고 찾아온 것이다. 변성기 이후 노래가 안 된다면서 친구들과 노래방도 안 갔고, 노래해보라고 하면 무조건 안 하겠다던 아이다.
같이 노래를 불러주면서 두성도 알려주고 음정도 잡아주었다. 고민거리가 조금은 해결됐는지 이제는 책을 보겠다면서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최근에 내가 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도 1/3쯤 읽었고, 고골의 '외투'도 읽고 짧은 후기를 휴대폰으로 전송해 주었다. 오늘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를 읽어보겠다고, 그리고 역시 후기를 써보겠다고 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책상 위에서 반납일을 넘긴 구립도서관 책이 수십 권인데, 내가 도서관에서 일한 이후로는 내가 권하는 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방학이어서 그런 걸까? 나의 부재가, 도서관 일이 아이에게도 영향을 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