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를 심은 사람
지친 하루의 끝
터덜터덜 집 골목을 걸어갔다.
저 멀리 도로 위로 빼꼼 삐져나온 장미 줄기를 봤다.
'피었구나!'
5월이면 어김없이 집 담벼락에 피던 장미
올해도 장미가 필까? 생각했다.
이 탐스러운 장미의 주인은 우리 집 맨 꼭대기 층에 사시던 목사님이었다.
내게 5월의 장미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느냐며
종종 선선한 저녁이면 담벼락을 서성이시던 목사님.
작년 코로나 후유증으로 하늘나라에 먼저 가셨다.
주인을 잃어버린 장미.
겨울 내 말라버려서 죽은 건 아닐까? 그동안은 목사님이 가지치기를 해주셨는데 이번엔 아무도 돌보지 않아 죽은 건 아닐까? 담벼락을 지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5월을 기다렸다.
그리고 5월,
장미는 어김없이 피었다.
이 장미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위로를 주었을까?
이 꽃은 목사님이 심었다.
나는 물 한 번 준 적 없고, 가지 한 번 쳐준 적 없는데,
이 꽃을 누리는 건 나였다.
나는 심지 않은 장미를 누렸다.
나는 지금껏 심지 않은 것들을 참 많이 누렸다.
하나님의 법칙이었다.
떨어진 겨자씨가 장성한 나무가 되어 새를 품고 사람을 품는 법칙.
그것이 하나님의 법칙이었다.
예수라는 한 사람의 희생을 통해 인류가 구원받은 것처럼
나라는 한 사람의 섬김을 통해 누군가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낸 이유였다.
집에 돌아와
'나는 무얼 심었지?' 생각하다 씁쓸해졌다.
나도 누군가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사람일까?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일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