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날 상황 속에 버려두신 것 같은 날들이 있다. 애타게 기도를 해봐도, 목이 쉬도록 찬양을 해봐도, 지난날 받은 축복들을 계수해 봐도 상황에 가려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지 않는 순간이다.
주변은 온통 적뿐인 것 같고, 나의 마음은 검은 재처럼 한없이 가볍다. 어제의 의지와 확신은 오늘의 실패를 더 초라하게 만든다.
그때 나의 마음에 이런 의문이 싹튼다. "하나님 날 사랑하긴 하세요?"
사랑한다면 이런 고난 가운데 날 두실리가 없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나를 이런 시련 한가운데에 홀로 우두커니 세워두실 일이 없다. 때마침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떠오른다. [임마누엘 : 하나님이 함께하심]
하지만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건 하나님이 나를 다른 상황 속으로 끌고 가시는 것이다. 왜 나를 뿅 하고, 고난이 없는 상황으로 인도하시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하나님은 나의 비참함 가운데 함께 머무시길 택하시는지. 세상을 창조하신 그분의 능력이라면 지금도 상황을 바꾸실 수 있으실 텐데, 왜. 그저 나의 칠흑 같은 어두운 밤에 함께 머무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날.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하늘은 맑고, 더운 여름 공기가 나를 감쌌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나님 왜 저를 좋은 땅으로 옮기시지 않고, 그저 저와 머무시나요? 전 이게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참을 꺼이꺼이 울다가 성경을 폈다. 더 말해봤자, 원망뿐일 것 같았다.
20일 전쯤 읽다 멈춘 민수기의 말씀이 나왔다. 민수기의 하나님은 너무 냉정해 보였다. 자기 백성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죄를 지은 자는 속죄를 위해 번거로운 번제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자에겐 징벌이 가해진다. 울다 편 성경 속 이야기가 전부 정의와 심판, 인간이 지켜야 할 율법뿐이다. 여름 공기보다 숨이 막힌다.
그러다 발락과 발람의 스토리가 나왔다.
십볼의 아들 모압 왕 발락은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자손을 멸망시키려 한다.
발락은 이름이 비슷한 '발람'을 부른다. 발람은 브올의 아들, 이방인 예언자다.
발락은 예언자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발람에게 이스라엘 백성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 절대 저주하지 말라고 이르신다.
하지만, 발람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발락왕의 요청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떠난다.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의 길을 막고 선다. 하지만 발람은 이미 영이 어두워져 여호와의 사자가 서있는 걸 보지 못한다. 대신 발람의 반려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발견하고, 그의 발길을 막는다. 발람은 그것도 모른 채, 이놈의 나귀 새끼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호된 채찍질을 한다.
그때 하나님이 나귀의 입을 열어 발람에게 말을 하게 한다.
"주인님, 당신이 오늘까지 탄 나귀인 내가 왜 당신의 앞길을 막겠습니까? "
하나님은 발람의 눈을 여시고, 발람은 그제야 자기 앞에 선 여호와의 사자를 본다. 눈이 열리지 않았다면 발람은 길가에서 비명횡사했을 게 분명하다.
하나님은 눈이 열린 발람에게 말씀하신다. "발락에게 가서 내 말을 전해라."
발람은 발락과 함께 번제를 드리고 이렇게 예언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내가 축복할 것을 받았으니 그가 주신 복을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중에 있도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의 힘이 들소와 같도다. " 민수기 23장 19-22절 말씀
여호와의 축복이 돌이킬 수 없는 사실임을 깨달은 발락이 발악을 한다. 제발 부탁이니 저주도 말고 축복도 하지 말라고 간청한다. 하지만 발람은 축복의 말을 거둬들이지 않는다.
예언자 발람 : "왕이시여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은 내가 그대로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발락왕은 포기하지 않고, 발람이 다른 예언을 받길 기대하며 번제를 또 드린다.
하지만 발람이 발락왕에게 전할 말은 하나뿐이다.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하나님이 그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그의 적국을 삼키고 그들의 뼈를 꺾으며 화살로 쏘아 꿰뚫으리로다. 꿇어앉고 누움이 수사자와 가고 암사자와도 같으니 일으킬 자 누구이랴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 " 민수기 24장 5절-9절까지 중략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발람을 불렀지만, 발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을 세 번 축복한다.
이 말씀을 읽는데 눈물이 그치고, 마음에 단단한 것이 느껴졌다.
무섭고, 깐깐하고, 빡빡한 완벽주의자 같은 하나님의 진심이 다가왔다.
"너는 내 백성이다. 나 외에는 누구도 내 백성을 심판할 수 없다."
정의, 율법, 심판의 칼을 드신 하나님의 진심은 하나였다. 모든 순간에 그의 진심은 이 말씀 하나였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었느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 민수기 15장 41절
'너희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권위로 인간을 찍어 누르시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권위로 자기 백성을 대적으로부터 지키겠다는 약속의 말씀이었다.
자기 백성을 보호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나는 현재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분의 진심만은 너무 진하게 다가왔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사람이 아니니 거짓말도 아니하고 후회도 없다.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내 백성 이스라엘 백성의 불충에도 불구하고, 내 백성 이스라엘의 원망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한다. 그들을 내 백성으로 부른 선택에 후회가 없다."
너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의 원망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나를 미워하는 너희라도 내가 사랑한다.
그는 사랑하기로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 졌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나를 무장해제 한다.
소아시아 도시 서머나의 주교였던 폴리갑의 말이 떠올랐다. 황제 숭배를 거부해 십자가에서 화형을 당하게 된 폴리갑에게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지금이라도 네가 믿는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황제를 주님으로 인정하면 살려주겠다."
폴리갑이 말했다.
"내가 86년 동안 살면서 예수님은 한 번도 나를 배반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참 왕이신 그 분을 부인하겠습니까?" 그는 이 말을 남기고 뜨거운 화형장으로 향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