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이런 사랑도 있는 법

빙빙빙빙 맴도는 영화 대사들 01

by 콩작가

가끔 머릿속에서 빙빙빙빙 맴도는 영화나 드라마 대사들이 있다. 그런 대사들을 한번 정리 겸 써보려고 한다. 서사를 알아야 그 대사의 진가가 발휘되는 영화도 있고, 어떤 영화는 그 대사 하나가 그 영화의 다 일 때도 있다. 서사를 빼고 대사만 보고 느낀 것들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영화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읽지 않는 것을 권한다. :-)









1. 드라이브 마이카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2021)


미사키: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동시에 많은 남자들을 필요로 하는 것, 그대로 믿어줄 수는 없나요? 거기에는 어떠한 거짓도 모순도 없어 보이는데요.


살아남은 사람들의 상처를 극복해 가는 스토리의 영화다. 3시간의 긴 영화지만 영화가 주는 여운은 깊다. 때로 인생에는 양립될 수 없는 두 가지가 함께 존재한다. 상식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영화의 미사키가 이 대사를 하기 전, 가후쿠는 죽은 배우자와 잠자리를 같이 했을 남자 배우, 다카츠키와 자신의 차를 같이 탄다. 가후쿠의 죽은 와이프 오토는 아이가 죽은 뒤로 잠자리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습관이 생겼다. 마치 공허한 속에서 무엇인가를 끄집어내고, 창작을 통해 무엇인가를 다시 낳듯이 그녀는 무의식 상태에서 이야기를 중얼거리고 일어나면 다 잊어버린다. 남편 가후쿠는 그녀의 이야기를 적어 다음날 그녀에게 다시 들려준다. 이날 같이 차를 탄 다카츠키는 오토가 죽으면서 미완성으로 끝난 어떤 이야기의 결말을 안다고 말해온다. 남편만이 알았던 이야기의 끝을 그가 알려준다.


그리고 다카츠키는 아주 깊고 진지하게 가후쿠에게 말한다. 오토는 정말 멋진 여성이었고, 그것은 진실이었다고. 하지만 때로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상대도, 그 상대의 마음 그대로를 보는 것은 무리일 것이라고. “진실로 타인이 보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깊이 똑바로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 “라고 말한다. 남자 배우는 내리고 이제까지 한 번도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았던 운전사 미사키가 하는 대사다. 다카츠키의 이야기에는 어떠한 거짓도 모순도 없어 보인다고. 때로 인생에서 어떤 진실은 모순 그대로를 가지고 있다. 또, 모순을 가진 그대로가 어떤 거짓도 없는 진실일 때도 있다. 이것을 가르쳐 주는 명대사.


가후쿠: 나는.. 제대로 상처받았어야 했어. 진실을 지나치고 말았어, 실은 깊은 상처를 받았지. 곧 미쳐 버릴 정도로.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못 본 척했어. 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일 수 없었어.


가후쿠와 미사키는 그대로 미사키의 고향 홋카이도로 떠난다. 그곳에는 미사키의 상처가 있다. 서로에게 말이 없던 둘은 홋카이도로 가는 긴긴 여행 동안 상처를 공유한다. 미사키는 다시 묻는다. 오토의 그 모든 것을 그냥 받아들이기가 정말 어렵냐고. 가후쿠는 다카츠키가 했던 말처럼, 타인인 오토를 이해하기 위해 외면해 왔던 상처를 다시 본다. 사실 가후쿠는 오토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여러 남자와 잠자리를 한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에 상처받았다는 그 진실을 지나쳐 버린 것. 때로 상처를 보듬는 길은 진실 그대로를 보는 것부터다. 자신 안에 있던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상처받고 아파하는 것. 그제야 멈추어있던 시간은 흐르고, 연극 바냐아저씨의 대사처럼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또 살아가야 한다.








2. 헤어질 결심 (감독: 박찬욱, 2022)


해준: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이 있다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나오지 않아도 사랑인 줄 아는 영화. 살인 사건이 사랑에 얽혀 있지만 로맨스라고 느끼게 하는 박찬욱 감독의 마술 같은 영화. 2022년 에에올, 드라이브 마이카, 헤어질 결심은 내 인생에서 만난 최고의 영화들이었다.


어떻게 남편이 죽었는데 저렇게 태연하냐는 동료 형사의 말에 해준(박해일)이 하는 말.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도 있고,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 꼭 해준과 서래(탕웨이)의 사랑 같았다.


세상에는 이런 종류의 사랑도 있는 법이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내려놓고, 당신이 나를 붕괴시켰다 말하는 남자. 서래는 본능적으로 안다. 언제나 자신의 직업에 진지하고 반듯하기만 한 해준이 서래를 위해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자신은 붕괴되었다고 말한다. 서래에게 이 말은 사랑한다는 고백이다.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서래의 말에 해준은 묻는다. 내가 사랑한다고 말했던가? 하고. 서래는 웃는다.


그리고 한 남자에게 잊히고 싶지 않은 여자는 함께 살아가는 것 대신 바다에 웅덩이를 파고 자신의 몸을 담근다. 밀물에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고 해준은 그녀가 어디에 묻혔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여자는 남자의 가슴에 영원토록 묻힌다.


‘헤어질 결심’ 헤어지겠다 결심하는 것부터가 사랑한다는 말은 아닐까. 헤어지겠다는 옹골찬(?) 결심을 해야만 가능한 것이므로. 색다른 사랑의 표현과 내밀한 감정 묘사와 섬세한 연출까지, 박찬욱 감독의 로맨스 영화는 역시나 남다르다. 두 배우의 연기 또한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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