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문학 세계 만들어 준 책들 통해
세상을 보는 시야 넓힐 수 있죠
섬세한 감성과 깊은 사유로 가득한 일곱 권의 시집을 출간한 김언 시인의 독서산문집이에요. 단순한 서평집을 넘어, 시인의 독서 여정과 사유가 담겨 있어요.
저자는 “어떤 책은 글쓰기를 동반하면서, 그러니까 기록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거치면서 기꺼이 내 문학의 자양분이 되어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책은 단순히 읽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생각에 깊은 흔적을 남기죠. 저자의 독서 경험도 그러했습니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돼 있어요. 1부에서는 문학, 예술, 인문서에 대한 짧은 인상기를 담은 독서일기 형태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2부에서는 인간의 문제를 담은 독서산문들이 주로 다뤄집니다. 3부는 시인에게 문학적 자양분이 되었던 책들을, 4부에서는 시와 시인들에게서 얻어낸 생각거리를 담은 산문이 포함되어 있어요.
저자의 독서 목록은 매우 다양합니다. 프란츠 카프카, 커트 보니것, E. H. 곰브리치, 김수영, 김언수, 다치바나 다카시 등 시대와 국경, 장르별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썼습니다. 책의 줄거리에만 무작정 기대지 않고, 책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산문이 담겨 있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요.
저자는 첨단생명공학에서 21세기의 미래를 찾고 있는 과학교양서 《21세기 知의 도전》을 읽고 “우리 시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 자연과학적 인식과 감수성”이라고 말해요. 그리고 자연과학적 인식과 감수성은 시뿐만 아니라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는 환경운동,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는 모든 인식에서 이제는 빠질 수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저자는 이과를 기피하거나 포기하는 청소년들, 과학에 무지한 대학생들의 인식 변화를 촉구해요. 국력을 떠받치는 든든한 기둥은 과학기술에서 나오기 때문에 현재의 과학과 기술에 대해서 더 알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또, “누가 만일 시에 관한 입문서를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E. 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추천하겠다고 말합니다. 《서양미술사》는 미술에 대한 역사를 다룬 책이라 시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지만 “시에 빗대어서 엿들을 수 있는 대목”이 책의 곳곳에 나오기 때문이에요. “가령,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라고 역설하는 《서양미술사》의 대목에 ‘미술’ 대신 ‘시’를, ‘미술가’ 대신 ‘시인’을 넣어도 말이 된다는 거죠. 미술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라는 《서양미술사》의 대목은 예술에는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다는 고리타분한 태도에 반기를 드는 주장이에요. 저자는 본질과 전통과 불변하는 서정성을 강요하는 작금의 시단은 문학을 업으로 삼을 세대에게 아무짝에도 소용없다고 말해요. 그래서 오히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통해 시적 자극을 얻을 수 있다며 추천하는 거죠.
이 책에서 언급하는 작품들 중 일부는 ‘오래된 책’이라 절판되거나 품절된 경우도 있어요. ‘오래된 책 읽기’라는 제목은 여기에서 따 온 거예요. 더불어 “많은 독자에게 닿지는 못하더라도 필요한 몇몇 분들에게는 기어이 닿아서 조그만 기억이라도” 오래 남아 오래 읽혔으면 하는 마음이 담긴 제목이기도 합니다.
독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행위임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어요. 저자의 말마따나 누구라도 “책에 손을 대고 눈길을 붙이는 순간부터” 책은 누군가의 정서와 사고방식에 깊이 영향을 미치죠. 저자처럼 책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고, 사유에 깊이를 더하며, 책을 아끼는 마음을 품을 수 있고요. 저자는 “내일 새롭게 생각할 것이 떠오르려면 오늘 무슨 책이라도 새롭게 읽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말해요. 이 책을 통해 저자의 문학적 통찰뿐만 아니라 독서의 즐거움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저자는 책을 온전히 마주하면서도, 어긋날 수 있는 지점을 피하지 않으며 독서가 선사하는 다채로운 감각과 경험을 문장으로 담습니다. 그는 "직전까지 지켜왔던 나의 신념을 한순간에 깨부수기도" 했던 지난 독서의 순간을 '고요하게만 읽을 수 없었던' 스물여덟 권 책들과 함께 담아냈습니다.
이 책은 뜻밖의 발견과 지나간 것에 대한 탐구, 세계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는 자기 속도 탐닉, 폭풍우 속의 길 찾기 등을 다룹니다.
독서를 통한 성장과 변화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책 속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만끽해 보세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4년 8월 5일(월) <조선일보> '재밌다, 이 책!'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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