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완(서울대학교병원 의공학과 및 융합의학과 교수)
서울대학교병원 의공학과 및 융합의학과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의사인 듯 의사 같은 의사 아닌' '유쾌한 과학자'다. 2010년 3월 공학자의 꿈의 직장인 미국항공우주국(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NASA)을 뒤로 하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및 서울대학교병원 의공학과로 옮겨올 때 주변에서는 의아하게 여겼다. 우주선을 만들던 항공우주 전문가가 의학 분야로 방향을 선회한 이유가 궁금했을 것이다. 하지만 의학은 내게 그리 낮선 분야는 아니었다. 1988년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 전, 약 4년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대학원생으로 서울대학교병원 의공학과에서 인공심장 관련 연구 등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나의 주요한 연구분야는 전자공학의 한 분야인 자동제어로, 주어진 시스템과 환경 안에서 목적에 맞춰 필요한 조정 역할을 자동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주어진 시스템이 인체 및 심장일 때는 인공심장을, NASA에서처럼 비행체 및 우주선 시스템일 때는 이를 제어하기 위한 기술을 연구했다. 자동제어 분야 전문가로서 이를 의학에 적용하면 의공학자로, 비행체 및 우주선에 적용하면 항공우주공학자로 불렸던 것이다.
실제로 비행체나 우주선과 수술로봇이 움직이는 원리는 매우 유사하다. 이런 유사성에 근거해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요즘 나는 수술 및 재활 로봇 등의 의료 로봇, 내시경 장비 및 관련 영상, 우주환경 모사 장치 등의 시스템들에 자동제어 이론 및 기법을 적용하여 의료 발전에 기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자동제어'를 중심으로 항공우주공학자에서 의공학자가 되는 사이, 내게 일은 어떤 의미였을까?
나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은 삶을 영위하면서 가족과 친구 및 동료들과 어우러지게 되고 어느 시점부터 노동 즉 일을 하게 된다. 일이라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 혹은 친근한 물건과 같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일을 하지 말라고 하여도 능동적으로 일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나의 경우 1988년 미국 UCLA로 유학을 가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93년 직장생활을 했다. 처음에는 가슴이 뛰었고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하지만 일의 규모가 커지고 프로젝트 마감일이라는 것이 주어지고 개인이 아닌 팀으로 일을 하게 되면서 '업무'라는 것이 서서히 힘들게 여겨졌다. 그 당시 화장실에서 만난 회사 부사장님으로부터 "Are you working with fun? (당신은 즐겁게 일을 하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Yes, but I am kind of tired! (예, 그렇지만 점점 지쳐 갑니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일상적인 질문에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드러냈던 셈인데, 부사장님은 "Oh, no, you have to work with fun always. Otherwise, you have to find something else. (헉, 안됩니다. 항상 즐겁게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면 다른 일을 찾아보세요)"라는 뜻밖의 말을 했다. 나는 지금도 그 한 마디가 내 삶을 바꿨다고 생각한다. 이전까지는 '어차피 할 일이니까, 위에서 시키니까, 월급 받고 하는 일이니까'라는 생각으로 일을 했다면 그 대화 이후에는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일이 더 재미있어졌고 일로 인한 피로감도 사라졌다. 거짓말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각자의 일이 가진 의미를 찾고 부여하는 시도를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무엇보다 이후 나는 일을 '생활의 일부'로 여기기 시작했고 즐기면서 일을 하게 됐다. '워라밸(워크 & 라이프 밸런스, Work & Life Balance)'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된 지 오래됐지만, 나는 '블워라(블렌디드 워크 라이프, Blended Work Life)'를 추구하는 셈이다.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주어진 일과 즐겁게 노는 것을 포함한 생활이 모두 섞여 있는(블렌디드된) 상태로 '노는 듯 일하고 일하는 듯 노는 삶'을 살고 있다. 내가 내 스스로를 '유쾌한 과학자'라고 소개하는 것도 이러한 생활태도 덕분이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일하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NASA에서 10여 년간 경혐한 최첨단 항공우주분야 핵심 기술을 의학에 적용하는 데 몰두하고 있으니 당연히 일의 무게가 가볍지는 않다. 하지만 블워라에 힘입어 얻은 성과들은 다음을 향한 원동력이 된다. 항공우주분야의 핵심 기술 몇 가지를 수술로봇에 적용하는 아이디어로 미국 특허 2개를 등록한 것이나, 수슬로봇 대표 기업인 미국 ISI 회사로부터 아시아 최초, 세계에서 4번째로 연구용 수술로봇 1대를 무상으로 기증 받은 것은 특히 보람된 일이다. 서울대학교 및 서울대학교병원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동시에 연구용 수술로봇을 기반으로 활발히 연구 개발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수주한 국산내시경 연구개발 사업을 통해 자력으로 한국형 내시경을 개발하고 이를 의료현장에 보급할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뛴다.
또한 의학과 항공우주분야를 잘 알고 있다는 장점을 살려,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우주여행 시대에 대비해 우주의학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우주의학과 관련해서는 2011년부터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는 만큼, 그 결과를 국제우주정거장 실험실에 적용한 후 실제 우주공간에서 검증해 보고 싶은 바람이 있다. 물론 이 모든 일은 나 혼자 해온 것들이 아니기에, 나는 매 순간 후학들에게 '보스가 아닌 리더'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함께하는 이들에게 좋은 업무 환경을 제공해 그들이 꿈을 가지고 삶을 영위하도록 돕는 것이 내 역할이기 때문이다. 연구 개발을 포함한 모든 일에서 꿈을 이루려면 최소 10년, 가능하면 20년 정도의 시간은 필수다. 하지만 나는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반드시 꿈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는다. 의공학과와 융합의학과 등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 역시, 더 많은 이들에게 편익을 주는 의공학기술 나아가 우주의학 실현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김성완 서울대학교병원 의공학과 및 융합의학과 과장
1988년부터 2010년까지는 미국 UCLA에서 공학박사 학위 취득 후 Boeing 항공우주연구소 및 미국 항공우주연구소(NASA)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차세대 우주왕복선 및 유인 달/화성 탐사선 개발에 참여하였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한국연구재단에서 ICT·융합 학문단장으로 봉사를 하였다. 현재 차세대 수술로봇, 국산내시경, 차세대 내시경, 인공지능 기반 용종 검출, 우주의학 등의 분야 연구 개발을 이끌고 있다. 저서로는 『1% 호기심 꿈을 쏘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