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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 또는 예술가 Nov 30. 2022

나보다 10살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나이

서른 살이 될 무렵 전혜린에게 빠져 있었다. 서른이라는 나이를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 세>를 읽고 공감하고 절망하며 서른의 나이를 겨우 넘겼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나이를 더 먹어도 서른 살의 무게만큼 힘들지 않았다. 세월이야 흐르는 거고 그에 맞게 나도 맞춰가면 된다는 달관의 마음이 생긴 것일까.


학교 서열 꼴찌에서 출발하여 중견 교사를 거쳐 이제 왕언니 세대가 된 현재의 나는 오십 대 후반부터 나이를 헤아리지 않았다. 그 나이가 되니 가장 부러운 것은 젊은 교사들과 아이들의 관계였다. 내가 무한 노력을 해서 겨우 얻을 수 있는 것을 그들은 나이로 쉽게 얻는 것 같이 보였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드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아이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 문제는 견디기 힘들었다. 아무리 수면 밑에서 발버둥을 쳐도 백조처럼 우아하게 헤엄칠 수 없었다. 



나중에 알았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사고의 경직성과 꼰대 마인드라는 것을.

이후로 인위적인 노력보다 현실을 인정하고 내 나이에 맞는 장점을 살리기로 했다.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이해하기, 그들의 말을 경청하기, 장점을 인정하기.

단점을 비난하지 않기, 무엇보다 아이들을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로 인식하기.

그리고 조건 없이 사랑하기.



나보다 젊은 교사의 빠른 일 처리와 젊음을 부러워하다가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내가 10년만 젊었으면’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데 그 10년 전은 나보다 10살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부러워하는 소리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나보다 10살 많은 사람이 돌아가기를 소망하는 나이가 아닌가.


아아, 나는 도를 깨달았다. 

박지원이 하룻밤에 물을 열 번 건넌 후 알게 된 것처럼.


지금의 나는, 나보다 10살 많은 사람이 가장 부러워하는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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