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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 또는 예술가 Jun 16. 2023

옆집, 개를 보다.



옆집 개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에게도 어린 시절 잔망스러운 눈동자를 굴리며 주인을 빤히 바라보고 간식을 얻기 위해 애원의 눈빛을 발사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구슬 같은 까만 눈에 물기가 어려 주인의 마음을 적신 일도 있었을 것이다.

뽀얗고 부드러운 털을 지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한몸에 받은 적도 많았을 것이다.

주인이 오는 기척을 미리 알고 꼬리가 부러질 정도로 반기며 들고뛰던 청춘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유모차에 실려 나온 그 개는, 이제 나이가 열일곱이다.

몸에는 세월의 더께만큼 둥글고 빨간 버짐들이 퍼져 있다.

짧게 깎아 살이 드러난 몸 위로 그만큼의 세월의 무게가 얹혔다.

안 보던 사이, 움직임이 더 느려진 옆집 개.


 


한쪽 귀 옆, 살을 파낸 그곳을 두꺼운 솜뭉치가 막고 있다.

얼마 전 생긴 귀 옆의 혹은, 솟아오르다 터져 진물이 흐른다.

무거워진 머리를 바닥에 기댄 채,

한가로이 노니는 바람결에 주인과 거니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산책길.


 


안락사를 시켜줘요.

개도 힘들지 않을까요?

눈이 보이지 않는 개를 날마다 안고 산책을 나왔던 주인에게 사람들이 권한다.

병원에서도 권해요, 나이가 있어 수술도 안 되고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잠을 자지 못하고 아파하는 개와 날밤을 새는 날이 늘어나

안락사를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내 손으로 할 수는 없어요.


 


옆집 개를 본다.

유모차가 끌리는 사이, 주인과 함께 한 시간을 반추하는 옆집 개.

주인은 일부러 평평한 길을 골라 걷는다.

오월의 꽃향기가 스미는 오후.

추억의 무게로 내려앉는 마지막 산책길.

비릿한 슬픔의 냄새로 가득한 오월, 어느 날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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