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근무하던 학교에 매 주일 새로운 꽃으로 주변을 장식하던 선생님이 계셨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참 모서리에 작고 둥근 테이블을 놓고 매주 월요일마다 꽃을 바꿔 놓았다.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으로 여름이면 수국과 나리꽃으로 겨울이면 마른 가지를 장식하고 그 위에 작은 국화나 열매를 꽂았고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솔방울과 포인세티아를 적절하게 배치하고 알전구를 꽃처럼 뭉쳐 놓아 성탄 분위기를 냈다. 한 주를 시작하는 날 삭막하고 규격화된 공간에 새롭게 나타난 꽃은 아름다움과 별개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돈을 주고 산 꽃이 아니라 학교 주변이나 근처 산에서 볼 수 있는 야생화,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꽃들이 그 테이블의 주인이었다.
그 학교에 부임한 첫해엔, 내가 담임하던 교실로 가는 통로 귀퉁이에 테이블이 있었다. 매일 아침 조종례를 위해 긴 복도를 걸어가는 나에게 중간에 놓인 테이블은 잠깐의 휴식과 여유를 주었다. 매주 새롭게 배달되는 신간 잡지 같은 여유를 느끼며 하늘을 쳐다보면 유난히 맑고 파란 하늘이 거기서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채도가 낮은 노란색과 진한 회색이 위아래로 칠해져 단조롭기 짝이 없는 복도는 기역 자로 꺾인 형태였다. 꺾인 곳을 돌면 대리석 바닥으로 된 긴 복도가 이어지고 거기에 1반부터 4반까지 4개 학급이 있었다. 본관을 먼저 짓고 증축한 신관 건물이 이어져 있는 곳이다. 교무실이 본관 중앙에 있기에 신관 교실의 담임들은 본관을 지나쳐 신관으로 긴 거리를 걸어온다. 신관의 담임들은 남보다 먼저 조회에 가기 위해 움직여야 했고 특히 맨 끝 교실인 1반의 경우 같은 시간 조회에 들어가기 위해선 교무실 바로 옆에 있는 반의 담임 보다 서둘러야 했다. 그 긴 거리를 걷는 도중에 만난 테이블은 작은 행복이자 산 밑에 솟아나는 옹달샘 맛이었다. 애들이 바글거리는 쉬는 시간에 비해 유난히 정적이 흐르는 수업 시간에 일부러 그곳에 가서 꽃을 본 적도 여러 번이다.
다발의 꽃을 꽂아야 아름답고, 화려하고 멋진 꽃이 있어야 돋보인다는 이전의 고정 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봄에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풀꽃 한두 송이를 꽂는 순간, 자연이 들어와 소박하고 수수한 아름다움이 생긴다, 그 길을 걸으며 사시사철 피는 꽃의 다름과 눈여겨보지 않았던 작은 꽃의 색과 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꽃도 자세히 보니 촘촘한 꽃잎 사이로 있을 게 다 있고 큰 것과 견주어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자연은 그 자체로 이미 모든 것을 보여주는 대상이다. 월요일에 꽃을 꽂고 주중에 두어 번 물을 갈고 시든 것을 골라내는 작업을 긴 시간 동안 변함없이 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하면 꽃은 싱싱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한 주간 유지했다.
꽃꽂이하는 선생님은 나랑 나이가 같아 사물을 보는 시각이 비슷했다. 공강 시간에 둘이 교정을 거닐며 화단 주변의 꽃들을 감상하곤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둘 다 공통으로 큰 것보다 작은 것, 애잔한 것에 더 마음이 쓰인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사람들은 겉보다 내실을 중시하게 마련이다. 살아보니 생각보다 외형이 차지하는 부분이 삶 속에서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일까. 겉이 내세운 실체가 보이는 것보다 대단치 않다고 여겨서인지 오히려 크기보다 내용물, 그 내용물의 알참을 따지게 된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면 내 주변의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알게 된다. 크고 화려한 것들이 차지한 세상에서, 작지만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작지만 나름의 가치를 가진 것, 아름답지만 큰 것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한 것을 알아보고 그것에 열광한다는 점. 그것을 발견하고 최대한 장점을 살려 부각하는 것이 나이가 들며 점차 가지게 된 장점이다.
두 번째는 ‘소소한 것의 소중함’을 알고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기보다 거창하고 남들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너나없이 좀 더 그럴듯해 보이고, 비싸 보이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 소소한, 주변에서 흔히 보는, 평범하고 소박한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마음. 그리고 그 가치를 지켜가려는 태도. 이것이 내가 사는 현실에서 매 순간 행복과 직결되는 행동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 두 가지가 교사가 지녀야 할 자세와 비슷하다. 교사는 아니 학교는 바로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구성원 중에 특출하고 걸출한 이도 있겠지만 흔한 주변의 이름 모를 꽃에 애정을 기울이고 그 꽃이 한 잎 한 잎 피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물을 주고 최대한 햇빛을 볼 수 있도록 자리를 옮겨주고 상한 잎과 가지를 정리하여 그 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도록 애쓰는 사람.
이게 교사가 아니겠는가.
권력도 없고 돈도 없는 나 같이 평범한 교사에게 힘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교사가 가진 힘을 구태여 찾는다면 발견하는 힘과 소중한 가치를 지켜나가는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귀퉁이나 모서리에 피어 드러나지 않는 꽃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고 자기 위치에서 가장 적합하고 아름답게 피우도록 돕는 일.
작지만 그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