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돌아보기에 좋은 장소로 학교만한 데가 또 있을까.
학교에 있다 보면 기쁜 일과 슬픈 일이 번갈아 생겨 금방 결혼식에 가서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며칠 뒤엔 또 누군가의 장례식장에 가야 할 일이 생기기도 하니, 우리 삶이란 기쁘고 슬픈 일로 날줄과 씨줄이 교차된 직물이 아닌가 싶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 점점 높아가고 푸르게 물드는 아침.
몇 년 동안 우리 학교에 출장을 나오시던 컴퓨터 업체의 K 부장이 예후가 좋지 않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직 젊고 아이들도 나이가 어린 데다 평소 자기 일에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분이셨기에 마음 한구석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게다가 전이까지 된 상태라니 갑작스러운 절망의 선고를 마주한 그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쓸쓸해졌다.
이른 아침은 물론이고 방금 전에 다녀갔어도 문제가 생기면 늘 웃는 얼굴로 기분 좋게 문제를 해결해 주시던 그리도 성실한 분을, 하늘도 무심하시지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었다. 몇 년간 보아왔지만 그렇게 성실한 분을 만나기 쉽지 않은데 안 좋은 병이라니 이게 무슨 일인가. 또, 아직 어린 자녀들은 어쩌라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슬픈 일이다. 인생의 행. 불행을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그런 면에서 세상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고 평등한 곳도 아니었다.
그런가 하면 조금 후에는 아이를 출산하러 휴직에 들어간 선생님의 득남 소식이 전해졌다. 우울해하던 사람들의 분위기는 새 생명의 소식에 활짝 핀 꽃송이 같아졌다. 갓 태어난 아가들이 어쩜 이리 똘망한 지, 눈을 뜨고 사물을 바라보는 듯한 훤하게 잘생긴 사진을 바라보며 기쁨이 솟아났다. 삶과 죽음의 소식이, 늘 주변에 도사리고 있으면서 양손을 번갈아 내밀며 우리를 조련하고 있는 느낌. 이런 불확실성이 있기에 삶이 또한 아름다운 것 아니겠는가.
아침의 슬픔이 오후의 기쁨으로 상쇄되는 것이 삶인가.
옆에 있던 사람이 떠나고 다시 새로운 사람이 와서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학교에서 항상 일어나는 일이다.
공립학교는 기본적으로 5년마다 자리 이동을 하기에 매년 떠나는 사람과 오는 사람이 있다. 처음에 발령을 받았을 때에는 자리 이동이 물이 고이는 것을 막을 수 있어 새로운 풍토를 조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세월이 흐르며 마음을 나눈 사람과 헤어질 땐 팔을 하나 베어내는 느낌도 들었다. 더구나 시,도를 달리하여 만날 수 없는 먼 곳으로 가는 경우, 더 심했다. 세월이 흐르니 마음이 건조해져서 오고 감의 아픔이 덜해졌으나 나이 먹은 상태로 5년마다 학교를 옮기는 게 부담이 되고 뜨내기 보따리장수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시가 난다는데 한 학교에 몇 년이나 같이 근무했어도 다른 곳으로 옮기면 그뿐, 학교에 더 이상 그의 흔적이 없는 것도 서운했다. 그의 실체가 사라지면 존재도 사라졌다. 아무리 학급 관리를 잘하고, 학교에 족적을 남겨도 떠나면 그뿐, 같은 학교에서 교무실이 다르거나 자리가 달라져도 전의 자리로 가면 이상하게 어색하고 남의 옷을 입은 것 같으니 다른 장소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전임교에서 5년간 근무하고 현재 학교로 발령이 났을 때, 짐을 정리해 트렁크에 넣고 출발하기 전 정겹게 다니던 교정의 여러 곳을 마음에 담아두며 혼자 걸었던 적이 있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걸었던 교문 앞에서 본관 건물까지의 길, 학교 교훈이 새겨진 큰 돌, 행사가 있을 때 그곳에서 사진 찍던 아이들의 재잘대던 모습과 웃음소리가 오버랩되면서 마음이 서늘해졌다. 5년이란 시간이 몇 개의 상자로 정리되고, 하루가 지나면 있던 자리에 새 인물이 오고 그간의 기억이 다 사라져 버리는 현실. 더 이상 내 학교가 아닌 곳을 마지막으로 걷고 나올 때 가슴에 바람이 불었다. 학교를 옮기는 데도 이런데 학교를 완전히 그만두면 마음속 공허는 더 크지 않을까. 미련이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K부장의 자리는 금세 새 직원으로 교체되었다.
오랫동안 그를 알아 왔던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그의 존재는 완전히 잊힐 것이다. 세상사가 다 그럴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그를 기억하고 있다면 그는 잊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일은 쉽지 않다. 그만큼 우리는 쉽게 잊고 잃어버린다. 내가 앉아있는 이 자리는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로 교체될 거고 그 역시 시간이 흐르면 순리에 따르게 된다.
학생들과도 마찬가지. 매년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예전에는 이별이 쉽지 않았다. 석별의 정을 오래 나누고 이후에도 자주 찾아와 주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지금의 아이들은 조금 더 가볍게 이별한다. 헤어져도 내일 다시 만날 사람들처럼.
내가 앉은자리가 이리도 유동적이고 한시적이었다는 사실을 학교에 근무한 시간 동안 나는 잊고 지냈다. 언제나 굳건하게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다는 인간의 생각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 그리하여 우리는 알고 보면 얼마나 아련한 존재들인지.
마시던 커피가 식은 줄도 모르고 한 모금 넘겼다. 미지근하다.
열망이 사라진 삶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