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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 또는 예술가 Sep 16. 2024

교사의 말

옆 반 담임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많았다. 학기 초부터 아이들의 진로를 위해 프로그램을 고안해내고 생활기록부에 쓸 만한 내용을 중심으로 진로계획을 짜서 다른 반 아이들이 자기 담임에게 가서 옆 반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고 불평하는 정도가 되었다. 밤늦게까지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남아 자기 반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꼼꼼히 살피기도 해서 그 반 아이들은 담임을 좋아하면서도 어려워했다.  

   

Y는 그 반에서 공부를 어느 정도 하는 학생이었다. 머리도 좋아서 수학 문제를 푸는 걸 보면 머리에서 계산이 저절로 되는 것 같이 보인다고 주변 아이들이 얘기할 정도다. 항상 어느 정도의 성적이 나오고 유지하는데 결정적으로 Y는 2% 부족한 학생이었다. 말하자면 모범생이고 성적도 우수한데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최고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그 ‘조금만’에 대해 느슨한 아이였다. 최고를 찍을 수 있는데 고만고만한 상태에서 만족하니 담임이 학기 초부터 그 부분에 대해 상담을 하고 애를 써도 Y의 성향은 고쳐지지 않았다. 속상한 그녀가 2% 부족한 Y에 대해 나에게 가끔 하소연하곤 했다.


Y의 목표는 의약계열이었고 그녀의 성적으로는 약간 못 미치는, 안정권에 들 수 없는 상태였다. Y는 담임과 상담을 하며 자신의 진로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담임으로서는 도저히 원서를 쓰기 힘들어서 솔직히 이야기했다고 한다.     

“지금 이 성적으로 의대는 갈 수 없어. 최상위의 학생끼리 경쟁하는 건데 너는 주요과목 등급이 너의 컨디션에 따라 들쭉날쭉하니 의대나 약대보다는 공대 좋은 학과를 지원하는 게 어떻겠니?” 네가 의대를 갈 수 있다는 생각을 빨리 바꾸는 게 좋겠어. “라는 담임의 말에 Y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상담 이후 기분이 좋지 않은 Y를 보고 담임 입장에서 마음이 쓰이기는 했으나 학기 초부터 자신이 그렇게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한 부분을 신경 쓰지 않다가 본인 성적보다 훨씬 높은 학과에 지원한다고 하니 적절한 조언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해 입시에서 Y는 원하는 의약계열에 합격하지 못했다. 대신 서울 유명 대학의 생명공학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원하는 진로는 아니었지만, 평소의 성적으로 보아 그만하면 선방했다고 생각한 담임이 Y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자 활짝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입시지도를 하다 보면 학생과 학부모의 희망과 학생의 성적에 편차가 있어 그 조정이 힘들다. 담임은 그 학생을 오랜 기간 보아왔기에 그의 성향과 학습 태도, 취약점과 강점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서 학생에게 적정한 수준의 대학과 학과에 관해 이야기하면 처음에는 씨도 먹히지 않는다. 우리 애를 뭐로 보고 이러느냐는 학부모의 민원도 민원이지만 자기 위치는 생각지 않고 더 높은 곳을 향하려는 학생의 시선 조정이 무엇보다 어렵다. 그래서 입시 상담을 하는 동안 감정이 서로 상하기도 하고 담임의 의견은 무시하고 학원이나 컨설팅 업체에 가서 상담을 받고 원서를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담임이 그 학생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은 아니기에 가능하면 학생이 원하는 진로를 수긍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실패가 뻔히 보이는데 학생이 원한다고 허용할 수는 없다. 대부분 학기 초에는 눈이 하늘에 있던 아이들도 시간이 갈수록 오르지 않는 성적에 마음을 접고 담임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Y가 대학에 입학하고 휴학을 했다는 말을 건너 들었다. 왜 그러지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주관이 뚜렷한 학생이었기에 필시 무슨 이유가 있으리라고 짐작했다.     

Y가 졸업한 지 일 년이 지난 시점에 Y를 담임했던 선생님이 나를 찾아왔다. 그녀와 나는 이제는 학년이 달라져 서로 다른 교무실에 있었고 가끔 복도에서 얼굴을 스치는 정도였기에 나를 찾아온 이유가 궁금했다.

“선생님, Y 아시죠?”

“알죠. 선생님 반에서 공부도 꽤 잘하던 아이잖아요? 생명공학과 갔다고 하더니 휴학했다는 말을 듣긴 했어요. Y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

“며칠 전 Y가 저를 찾아왔어요. 졸업생이 일부러 옛날 담임을 찾아왔기도 해서 근처 중국집에 가서 밥을 사주기로 했어요. 짜장면과 탕수육을 앞에 놓고 Y가 저한테 그러더군요. 선생님이 의대에 못 간다고 해서 그 이후로 마음에 한이 맺혔다고요. 그래서 학교 들어간 이후 휴학하고 정말, 이 악물고 공부를 했다네요. 저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 꼭 잘돼서 담임을 찾아가겠다는 마음으로요. 이번에 의대 합격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다 선생님의 말 덕분이라고 하는데 손이 덜덜 떨려서 젓가락질할 수가 없었어요.”

그녀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선생님이 의대에 갈 수 없다고 얘기해서 죽어라 공부했다는 아이를 앞에 두고 할 말이 없더라고요. Y는 그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다가 이번에 의대에 들어가자 저를 찾아온 거고요. 저한테 뭐라 했는지 하세요? 선생님이 의대에 갈 수 없다고 했는데 제가 의대에 들어간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더라고요. 선생님의 판단이 잘못된 거 아니냐고 하면서요. 아, 이제부터 학생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어떻게 모든 아이의 입시 문제에 다 만족할 만한 답을 줄 수 있느냐, 우리가 보고 알고 있는 아이의 성적 데이터에 맞추어 최선의 진로지도를 하는 건데 그것에 불만을 품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까지 책임을 질 수는 없는 거 아니냐며 그녀를 위로했지만, 그 사건은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았다.


교사의 말은 중요하다. 어떤 아나운서는 고등학교시절 국어 교사의 너는 목소리가 좋으니 아나운서 해도 좋겠다는 말에 결국 아나운서가 되었다는 고백을 했다. 미래에 대해 백지와도 같았던 그 시기에 선생님의 말이 자기 인생에 큰 지침이 되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선생의 말 한마디로 상처를 받고 좌절하는 아이가 더 많다고 한다.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C는 착하고 평범한 학생이었다. 학급에서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주고 챙겨주는 마음씨가 따뜻한 아이였고 나를 살갑게 도와줘 내심 C를 의지하고 있었다.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을 고민하다가 상담을 요청하기도 하고 장차 멋진 영화를 제작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그래서 영국으로 유학을 하고 싶어하며 영어 공부에 열심을 냈는데 현실적인 문제가 걸렸다. 자영업을 하시는 C의 아버지는 최근 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져서 어머니가 생활 전선에 나서게 되었다. 대학을 다니는 형의 학비도 부담스러운 부모를 위해 형은 최근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이는 나에게 자기 꿈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그 꿈을 얼마나 이루고 싶어 하는지, 꿈을 이룰 수 있는 제일 나은 방법은 무엇인지에 관해 자주 물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외국으로 유학을 가서 거기서 공부하며 원하는 스튜디오에서 경력을 쌓고 싶다고 하는데 C의 현실적인 형편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바람이었다. 그러나 눈을 빛내며 자기의 꿈에 관해 이야기하는 C에게 현실적인 형편을 고려하라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성적도 오르지 않고 집안 형편은 꿈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그에게 현실을 직시하고 국내에서 대학을 가야 한다고 말을 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C는 자주 내게 상담을 요청했고 시간이 갈수록 의기소침해져 갔다. 나는 그에게 힘내라고 응원을 했으나 그건 공허한 울림이란 걸 알고 있었다. 현실적인 대안이 없는 말뿐인 응원과 격려는 사실 그리 큰 힘이 되지 않는다. 나도 말밖에는 할 수 없는 현실이 아쉬웠으나 그의 마음을 다칠까 하는 염려가 더 컸다.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집안 살림으로 인해 고개를 숙이고 갈 길을 가늠하는 C에게 지금 형편에 유학이 가당키나 하냐, 현실적으로 내신을 올려 국내에 영상학과가 있는 대학에 가서 영화를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는 말을 해줬어야 옳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상처를 받는 게 싫어서 최대한 미루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힘을 내라는 토닥임으로 대신했다.

결국, C는 유학을 가지 못했다. 집안 사정이 미래를 위한 그의 계획을 받쳐주지 못했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서 영상 공부를 하고 있다. 또래 동창들이 다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한 시점에도 그는 영상물 제작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취업은커녕 열정페이를 강조하는 현장에서 언제 자리를 잡을지는 요원한 실정이다.      

요즈음 나는 힘든 길을 가고 있는 C에게 좀 더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말을 듣는 당시에는 상처가 될지라도 그 상처가 기반이 되어 일어설 새 힘을 얻는다면 그래야 마땅하지 않았을까. 그가 힘든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을 안타까이 바라보면서 그저 격려만 하고 토닥였던 지난날이 아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Y의 담임이 Y의 말에 충격을 받고 나를 찾아온 일조차 그녀의 현명함이 학생에게 자극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앞날에 대해 조언을 하는 일은 어렵다. 특히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에게 하는 교사의 말은 중요하다. 나는 C와 오랜 시간 상담을 했지만, 그에게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걸 안다. 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면 나는 현실적인 냉정한 조언을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교사의 학생에 대한 적절한 조언과 상담이 그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확실하다면 보다 정확한 관찰과 판단에서 나온 말이 필요하다. 격려와 직설적이고 현실적인 조언. 그 둘 중 어느 것이 더 유효한 것일까.     


나는 Y와 C를 보며 누군가의 인생에 개입하는 말의 위험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나의 말로 누군가의 인생이 바뀌거나 바뀔 수 있다면 말을 쉽게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도 미래의 고민을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쉽게 얘기하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한 말이 쌓이고 쌓여 공허한 울림으로 터널을 만드는 모양을 보며 나는 가끔 두려워진다. 


지금도 말을 할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머뭇거린다. 누군가 나의 조언을 바랄 때, 어떤 말이 더 의미가 있을까. 토닥이고 격려하는 말일까, 현실을 바로 보게 하는 말일까.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하는 이의 입장에서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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