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요일 또는 예술가 Sep 23. 2024

기억의 힘

전에는 일부러 학교나 학생에 관한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옆에서, 네가 있는 현장이 거긴데 그곳의 일을 기록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니, 라고 말했다. 그래도 꾸준히 버티고 다른 데서 열심히 글감을 찾았다. 학교나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은 특별한 것만 기록하고 나머지는 마음에 담아 두었다. 기록보다 몸에 새겨진 기억을 믿었던 탓이다. 

그러나 사람의 기억이란 얼마나 불확실한가. 시간이 가며 몇 개의 이미지만 파편처럼 남고 사건의 내용이나 이야기는 사라지고 말았다. 기록의 힘을 믿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기억이 모래성 무너지듯 사라지고 나니 이제라도 써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학교의 구성원은 학생과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이다. 그중 가장 밀접한 것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매일 부대끼며 살아가는 학생과 선생님이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했던 고등학교 시절, 우리의 입학과 함께 발령받은 선생님이 몇 분 계셨다. 그중에 생물 과목을 가르쳤던 여자 선생님은 여고인 우리 학교에서도 1학년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으셨다. 젊은 데다 패션 센스가 장난이 아니었던 선생님이 인기가 없을 리 없었다. 선생님과 눈이라도 마주치기 위해 노오력을 했던 시간이 생각난다. 가을에 한껏 날이 선 버버리 코드 깃에 살짝 드러난 스카프가 바람에 날리면 그 멋짐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우리는 선생님의 정예부대가 되어 수업시간엔 오직 그녀만 바라보았고 그녀의 눈에 들기 위해 시험공부도 얼마나 열심히 했던가. 그런데 선생님이 유학을 가신다고 한 학기도 채 마치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나갔을 때, 얼마나 큰 상실감에 시달렸는지 모른다. 창가를 바라보며 우수에 젖던 선생님의 눈매, 하늘거리고 낭창한 허리에서 흘러내리는 주름 스커트의 물결, 보폭을 옮길 때마다 살짝 풍겨 나오는 풀 내음. 그 모든 것이 사라진 교실은 얼마나 빈집 같았는가. 허리를 곧추세우고 또각거리는 구두를 신고 교문을 빠져나가던 선생님의 뒷모습. 그 아름다운 뒷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마지막 시간 교실 뒤편에서 선생님이 불러준 양희은의 ‘들길 따라서’는 내 애창곡이 되었다. 맑고 청아하게 푸른 돛단배처럼 노 저어 가던 그 목소리. 나도 교사가 된 뒤에 선생님 흉내를 내어 교실 뒤편에서 ‘들길 따라서’를 부른 적이 있다. 선생님이 떠오르고 둘이서 노래를 부르는 듯한 환상에 젖기도 했던 순간이었다.


     

어떤 기억은 때로는 힘이 되기도 한다. 깊은 뿌리를 지닌 기억은 누군가의 삶에 뿌리만큼의 나무를 키운다. 그러므로 사람은 기억의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형성되는데 어떤 부분을 만드신 분들을 생각해 보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 기억의 파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숙연해진다. 어떤 파편으로 남을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모나지 않아 상처를 만들지 않고 어둡지 않은 밝은 빛의 기억이면 좋겠다. 

         뭉크의 <키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