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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 또는 예술가 Oct 07. 2024

마지막 춤은 부드럽게


내년이 정년이다 보니 모든 일을 내려놓는 한 해가 되었다. 아니 좀 편하게 학교에 다니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했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가 아니라 마지막 업무는 조금 가벼운 것이었으면 했지만 요즘 학교가 어디 그리 만만한가, 그렇다고 놀고먹을 수는 없으니 연구부에서 연수계를 맡게 되었다. 


학교의 업무분장은 크게 담임과 비담임, 부장 교사로 이루어진다. 부장 교사는 각 부서 업무를 총괄하여 모든 기획과 실무에 관여하고 있고 12명이 있다. 담임은 한 학급을 맡아 거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도맡아 책임지는 업무, 비담임은 담임 업무 외의 모든 행정 업무를 분담하여 책임지고 있다.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재, 기존 업무량은 줄지 않고 새로운 것들이 늘어나다 보니 비담임이 맡은 일도 양적 측면에서 만만치 않다. 


다른 거 하지 않고 수업만 하고 싶어요, 라고 교사들은 가끔 푸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온갖 공문처리는 물론, 돈 쓰는 것도 기안해야 하는 판이니 수업을 위한 교재 연구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날이 갈수록 교사의 일거리가 늘어만 가는 현실에서 나온 한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학교평가나 교육실습생 관리나 교사 연수 계획과 연수 추진업무, 장학 같은 것은 누구에게 맡기기도 애매하고 결국은 교사가 다 해야 한다. 


내가 맡은 올해 업무는 연구부 연수계이다. 교과는 1학년 4개 학급을 맡고 3학년 1개 학급 진로 과목을 가르친다. 연수계는 말 그대로 학교의 모든 연수를 담당한다. 업무분장에 있는 나의 업무는 교원직무연수 계획 수립 및 추진, 전문적 학습공동체 계획 수립 및 운영, 학교평가 업무 및 공문 시행, 각종 설문조사, 혁신 공감 학교 및 대토론회 업무, 부서별 교육활동 평가, 교육실습생 관리, 수행평가 전표 검토(1, 2학년)이다. 그래도 교무부의 성적 계나 기획 업무에 비하면 많은 것이라 볼 수 없지만, 학년 부장을 오래 하여 주로 몸으로 하는 업무에 익숙한 나에게 자잘하게 머리를 써야 하는 공문 수발 업무로 3월 한 달은 헉헉댔다. 공문 결재만 하다가 공문을 만들어 결재를 올리는 처지로 바뀐 데다 빠릿빠릿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능력이 어느샌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바쁜 3월을 마무리하자 바로 교생 실습 철이 다가왔다. 


올해 교생은 5명으로 내 업무는 한 달 동안 교생의 담임을 하며 그들이 ‘대학에서 배운 교육이론을 현장에서 적용 ․ 검증하는 기회를 제공하여 교직에 대한 종합적이고 실제적인 이해에 도움을 주고, 미래 교육자의 자질을 길러주는’ 역할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4주 동안 교육실습생들은 ‘수업 참관 및 교수-학습 과정안 작성, 수업 과정 전반에 대한 관찰(계획, 지도, 평가 등),) 수업자료 준비 및 제작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일체화), 각종 활동 및 학교 행사 참관, 수업 공개 및 교수-학습 과정안 작성, 실습 일지 기록, 교무분장에 관한 내용 연수, 각종 장부 정리 요령 및 공문서 취급 요령 연수, 학급 경영에 관한 연수, 자기 주도 학습(자율학습) 지도, 학생 생활 지도-아침 등교 맞이 및 교통 지도, 급식 질서 지도’를 하고 실질적인 담임 업무를 포함한 학생 지도를 맡는다. 


나는 한 달간 교생들의 담임이 되어 조, 종례를 포함해 그들의 실습을 돕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고 교생들을 보내고 그동안의 실습내용을 평가하여 각 대학에 결과 보고서를 보냈다. 내년에 학교를 떠나는 내가 새로이 교직에 입문하고자 하는 실습생들을 맡는다는 게 뭔가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와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마음으로 임하고 그들을 보냈다. 



그걸로 ‘다 이루었다’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다음 날부터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저, 그 학교 졸업생인데요. 내년에 교육실습생으로 가려고 전화를 드렸어요.”


아아, 내년 그러니까 2023년 교육실습 예정 학생들의 전화였다.


전화가 오고 또 전화가 오고 가고 9월 초까지 총 8명의 학생이 등록했다. 


사이사이 본교 졸업생이 아닌 희망자들도 전화했지만, 본교 졸업생만 대상이 되는지라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 관문은 10월 초 면접이다. 전화로 연락한 학생들을 채팅방에 모아 면접 일정을 알려주고 자기소개서와 3가지 항목에 대한 자기 생각을 일주일 기한을 주고 메일로 보내라고 했다.




면접이 있는 날 오후,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나가 있는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학교로 왔다. 참가하지 못하는 학생은 줌으로 면접을 보기로 했으니 참, 좋은 세상이다. 이것 또한 코로나가 준 혜택이 아닐 수 없다. 


단 한 명의 학생만 약속 시간과 동시에 왔고 나머지는 모두 이십 분 전에 도착했다. 복장도 나무랄 데가 없다. 8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면접을 보는데 모두 교직에 대한 준비가 철저해 면접관이 오히려 감동하는 처지. 교육 봉사도 미리 준비하고 있고 교사가 되려고 하는 이유도 선명하고 무엇보다 반듯하고 착실했다. 단 한 명의 학생을 제외하고는.



그녀는 서류를 제출하기로 정한 시간까지 완벽한 결과물을 제출하지 못했고 두 번 세 번 오류가 나는 과정을 거쳐 꼴찌로 제출한 학생이다. 게다가 면접 시간도 거의 여분 없이 도착해서 준비성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풍겼는데 복장도 허리와 가슴이 강조된 글래머 룩을 입고 손톱에는 젤 네일 위에 큼지막한 보석들을 주렁주렁 달고 와 다른 면접자와 확연히 달랐다. 면접 내용도 부실하고 준비가 덜 된 듯했다. 면접 후 다른 사람들은 무난하게 통과가 확실한데 젤 네일만 마음에 걸렸다. 




옷과 손톱 어쩌지? 

저러고 학교에 오면 애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게 뻔한데. 

내 속의 꼰대 마인드가 발동하며 라떼 교사의 걱정이 한창이다. 



집에 와 고민을 딸에게 말해 본다. 다시 면접을 봐야 하나? 

아님, 복장과 손톱에 대해서만 강하게 얘기해야 하나.


딸이 질색하며 말린다. 

그거 개인의 취향이라고. 다 알아서 잘할 건데 왜 미리 걱정이냐고. 

제발,    걱정은 그만하시라고.


나는 딸의 말을 잘 듣는 편이다. 명실공히 MZ세대인 딸의 조언이 라떼 교사의 문제점을 보완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강하게 나가려던 것을 접고 마지막 문자를 보낸다.



“어제 면접 보느라 고생했어요. 내년에 00고에서 만나요~”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그녀의 문자가 도착했다.


“지난 면접에서 생각보다 다들 교직에 대한 열망도 가득하고 경험도 많아 보여서 스스로도 면접 결과에 대해 기대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합격 소식을 듣게 되어 면접관님께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ㅠㅠ 내년까지 잘 준비해서 더 좋은 모습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너무 감사합니다(하트 하트)”



아, 딸 말 듣기를 백번 잘했구나. 다 생각이 있었구나. 탈락시키거나 상처가 되는 말을 했으면 어쩔 뻔했나.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는 너무 쉽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대놓고 폭격을 가할 뻔했으니 말이다. 

그래, 마지막 춤은 부드럽게 가는 거지. 상대가 누구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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