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는 한 분야에 미칠 정도로 빠진 사람을 의미하는 일본말 ‘오타쿠’를 한국식 발음으로 바꿔 부른 ‘오덕후’의 줄임말이다.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대상을 발견해 몰두하며 전문성을 쌓는 덕후는 자신과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정보를 교류한다. 과거 덕후는 비호감의 상징이었다. 취미 생활에 빠져서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고 사교성도 부족할 것이라는 편견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가’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발전했다.
학교에서도 덕후는 늘 존재했다. 90년대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는 일본 애니메이션 관련 덕후가 압도적으로 많아 일본어를 배우고 덕후들만의 모임을 준비하는 아이들도 꽤 있었다. 덕후가 아닌 아이들은 그들을 이해하기보다 특이한 취미를 가진 애, 정도로 인식하였으나 요즘은 덕후의 종류가 과거와는 몰라보게 다양해졌다. 이른바 덕후의 저변화 시대이다.
딸은 뮤지컬 덕후이다. 일명 ‘뮤덕’이라고 하는데 좋아하는 뮤지컬과 좋아하는 배우가 있어서 그 배우가 나오는 뮤지컬은 캐스팅을 골라가며 여러 번 보거나 좋아하는 뮤지컬인 경우 시즌에 올라왔을 때 꽤 자주 관람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나의 책임도 크다.
어렸을 때부터 오페라와 콘서트를 데리고 다녔는데 그 중 어느 것이 적성에 맞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시간이 가며 오페라나 연주회보다 중학교 때 본 뮤지컬 ‘맘마미아’에 큰 관심을 보였다. 아바의 노래를 찾아 듣더니 급기야는 맘마미아를 또 보고, 인터넷에서 얻은 음악 파일을 소중하게 간직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철없는 엄마는 야자를 빼달라고 담임선생님에게 부탁하고 <미스 사이공>을 보러 갔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담임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당시의 나는 중학교에 근무했기 때문에 고등학교 입시의 엄혹함을 몰랐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가고 싶진 않았기에 솔직하게 얘기했으니 담임 입장에서 얼마나 난감했겠는가. 고등학교에 와서 야간 자율학습의 엄숙함을 경험한 이후, 나의 그 ‘솔직’이 당시 학교 분위기로 보아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이었나 깨닫게 되었다. 지금이라면 동종 업계에 있는 사람이 더 심하군, 아니 알 만한 사람이 야자를 빼달라니, 그것도 뮤지컬을 보러 가겠다고 말이야. 쯧쯧, 하는 뒷이야기를 충분히 들을만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입시와는 거리가 먼 중학교 교사였다. 같은 교사라도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관심사가 다르기에 생활의 내용도 다를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에 있어도 학년마다 편차가 있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어쨌든 공짜로 생긴 표를 날릴 수는 없기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밤늦도록 뮤지컬을 보았는데 <미스 사이공>은 고등학생과 같이 관람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딸은 뮤지컬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대학에 입학하자 본격적으로 뮤지컬의 세계에 입문했다. 덕분에 나도 <레베카>, <캣츠>, <맨 오브 라만차>, <레미제라블>, <위키드>, <지킬 앤 하이드>, <비틀쥬스>, <엘리자벳>, <라이언 킹>, <마타하리>, <팬레터>, <스위니 토드>, <모짜르트> <오페라의 유령> 등을 얻어 볼 수 있었다. 문제는 한번 보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첫공, 막공, 좋아하는 출연진 순으로 한 공연을 여러 번 보는 것이 예사니 덕후의 삶이란 그 깊이에 비례해 경제적인 손실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책임이 처음의 공연을 시작한 나에게 있다면 따져 무엇하겠는가. 돈을 먹고 자라난 문화적 자양분이 체화되어 문화 시민으로 거듭나기를 바랄 수밖에.
내가 너무 많이 보는 게 아니냐, 같은 걸 왜 자꾸 보느냐며 눈치를 주니 딸이 말한다.
엄마, 모든 일은 때가 정해져 있어. 지금 아니면 열정적으로 할 수 없다는 얘기지. 그렇다면 나중에 후회하느니 지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왜냐하면 뮤지컬이나 콘서트는 다른 분야와 다르게 라이브라는 특성이 있어. 라이브의 특성이 뭐야. 한번 지나간 공연은 돌아오지 않아. 아무리 똑같은 곳에서 같은 캐스팅으로 해도 그 공연은 그때뿐이야. 그걸 놓친다는 건 삶을 놓치는 거야.
덕질을 하는 사람들이 나이가 다 같은 건 아니잖아. 나보다 어린 애랑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가 전에 한 전설 같은 공연 몇 개를 못 본 것이 너무 아쉽다고 하길래 나는 그 공연을 봤거든. 내가 본 공연의 캐스팅 보드를 보여주니 나의 기억을 사고 싶다고 말하더라고. 처음 공연을 좋아하게 된 시기는 다르지만, 전설처럼 전해오는 공연은 그때가 아니면 못 보는 것이니 지금, 나에게 기회가 왔을 때 봐야 하는 거. 그게 맞다고 봐.
아아, 성경 말씀과 같은 금과옥조를 딸의 입에서 듣다니. 구구절절 옳은 말이 아닌가. 그날 이후로 엄마는 입을 다물었다. 모든 일은 정해진 때가 있으니 알아서 하겠지 하고.
수업이 일찍 끝난 후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본인이 덕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의외로 눈치 보지 않고 8명의 아이가 손을 들었다. 요즘 고등학교는 평균 학급 인원수가 25명 내외이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여서 종류를 물어보았다. 애니메이션이 많았지만, 음악, 영화, 뮤지컬, 서양 역사, 심지어는 권총 조립까지 다양했다.
딸 말대로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당당하게 밝히며 실행하는 사회가 열린 것이다.
그것이 비록 남의 눈에 하찮게 보일지라도.
좋아하는 것을 밝히지 못하고 가슴 속에 품고만 살았던 세대에 비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솔직히 드러내고 살 수 있는 시대를 만난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그 행복은 거창한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실행해 나갈 때 얻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