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요일 또는 예술가 Nov 04. 2024

햄, 주파수  그리고 관계

중학교 때이던가? 나는 이것 저것 잡스런 책들을 읽기 좋아했던 것 같다.

그 중에서 내가 잠깐 접한 책은 아마추어 무선에 관한 것이었는데 무지하게 흥미를 끌어 장비를 사서 아마추어 무선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아마추어 무선사를 햄이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부호가 모르스부호인데 멋진 셜록홈즈도 간간히 모르스부호를 애용하는 햄이었다는 것을 알고나자 더 관심이 갔다. 


햄이 나에게 그토록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은 그들이 국적이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르스부호라는 언어를 통해 독자적인 소통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기집에서 무선설비를 갖추어 놓고 세계각국의 다른 이들과 부호로 소통하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해외로 나가는 일이 제한되어 있던 그 시절. 햄은 내게 세계를 보는 또 다른 창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다른 이유는 그 당시의 내가 진정한 소통에 목말라있었다는 점이다. 누군가와 교통하고 싶은 내 욕망이 햄에 관심을 갖게 했다. 

잘 듣기 위해서 우리는 그와 동일한 주파수를 맞춰야 하고  그와 같은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당시의 나는 세상과 주파수가 안 맞았고 그로 인해 내면의 혼란이 많았다. 겉보기에 나는 착실하고 비교적 성실한 편이어서 학교와 집에서 또는 친구들과 그리 모가 나는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지극히 일반적이며 지극히 상식적인 선에서 나의 삶은 시작되고 마무리되곤 했는데 어린 시절에도 나는 그것을 때로 못견뎌했던 것 같다.  나는 누군가와 진정으로 소통하고 싶었고 주파수를 맞춰 진지한 무언가를 나누고 싶어했다. 그런 점에서 햄은 내게 돌파구이자 가장 적합한 통로였는데 어찌어찌하다보니 흐지부지되었던 것이다. 햄 장비에 대해 내가 이것 저것 관심을 보였을텐데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어린왕자의 어른들처럼 어른들은 복잡하거나 새로운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얘야, 우리가 쓰는 언어가 있는데 그 부호가 무슨 의미가 있니?" 라거나

"혹시 그러다 간첩으로 걸리는 것 아니니?"라는 별 우스운 상황에 까지 발전하여 나의 아마추어 무선에 대한 꿈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어른들뿐 아니라 내 친구들도 햄에 대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거 할 시간이면 하나라도 문제를 더 풀어야지..하는 식이어서 어느 순간 나도 이방인이 되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었던 것이다. 


지금도 햄은 내 추억의 페이지에 저장되어 있다. 나는 언젠가 모르스부호를 배워 정식으로 햄이 되어보겠다는 생각도 여전히 갖고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모두 관계를 맺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관계에 대한 갈증이 더 심해진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열심히 포스트를 올리며 이웃들과 안부를 나누는 것도 어쩌면 누군가와 주파수를 맞춰보겠노라는 나의 욕망의 발현이 아니겠는가. 



날 부르는 자여, 어지러운 꿈마다 희뿌연한

빛 속에서 만나는 자여

나와 씨름할 때가 되었는가

네 나를 꼭 이겨야겠거든 신호를 하여다오

눈물 담긴 얼굴을 보여다오

내 조용히 쓰러져 주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