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계에이방인 May 07. 2024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이어지다. 소멸의 세상에서 살아 남는법

2024. 05.04~06 연휴

전력을 다한 연휴

3일이 마치 30일 같은 밀도가 높았던 연휴

감기에 매일 시름시름 알아야 했다. 왜 그래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가고 있다.


1. 선택의 이유

매 순간 선택으로 지나온 시간들. 그 선택의 이유들을 깨닫고 있다. 한가지를 선택하면 다른것은 포기해야한다. 기회비용 이다. 무엇을 포기할지는 오로지 자신의 가치관에 달려있다. 선택을 하지 못하는것은 자신의 가치관이 명확하지 않다, 즉 자신만의 철학이 없다.

내 선택의 기준을 명확하고 싶다.



2. 열역학 법칙(feat. 철학자와 달리기)

제1법칙 에너지는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단순히 전환할 뿐 생성도 소멸도 할수 없다. 제 2법칙 폐쇄 체계는 시간이 기면서 최대한으로 무질서 해진다. 우리라는 폐쇄 체계는 최대의 무질서를 지향할것 이고 존재하기를 멈출것 이다. 우리는 하나의 복잡한 구조이고 그 복잡한 구조는 질서를 가지고 있다. 질서가 없다면 복잡성도 없다. 최대한 무질서한 체계는 구성 입자로 나눌수 있다. 즉,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고 볼수 있겠다. 영혼의 존재는 모르겠지만 내 육체는 언젠가 벌레와 미생물들의 먹이가되 뼈만 남은채 사라질 운명니란 말이다. 질서가 없는 무질서가 죽음인 것이다.


엔트로피는 과학자들이 무질서에 붙인 이름이다. 엔트로피, 즉 무질서의 피괴 행위를 피하기 위해선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는 무에서 창조할수가 없다. 다른 대상에서 끌아와야 한다. 나 또한 다른 모든 생명체와 같은 에너지 전환자일 뿐이다. 에너지를 빼앗으며 살고 빼앗기며 소멸해간다.


달리기를 한 후 나는 다시 할일이 있다. 57개월 아들이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 에너지를 다시 내보낸다. 마크 롤랜즈의 따르면 삶의 근본적 설계 원칙인 열역학 제1,2 법칙의 결과를 보여주는 처절한 증거이다. 그리고 앞로도 그럴것이다.

열역학 제1,2 법칙에 가장 명백한 결과는 삶은 정해진 에너지의 총량을 뺏고 빼앗기는 제로섬 경쟁이다. 그 정반대의 일을 우리는 또 하고있다. 희생이다.


희생의 본질은 사랑이다. 첫 아이가 태어난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처음으로 안고 집으로 온날 그 충격은 뇌의 깊숙한 곳에 각인이 되었다. 첫번째는 두려움이다. 이 작고 소중한 생명채는 금방이라도 부서질듯 가냘팠다. 그리고 시도때도 없이 무언가를 요구했다. 시간이란게 없었다. 잔인하게도 조금도 나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매시간 매분 매초  두려움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것이 계산된것 인지 혹은 본능인지는 모르겠다. 자신의 아빠라는걸 알아보는 눈빛으로, 아니면 나를 알아보는듯 활짝핀 웃음을 보였을때 나는 알았다. 너를 위해 내 심장도 대신 꺼낼수 있다는 것을.


에너지를 뺏고 뺏았기는 삶속에 이런 사랑이 양립할수있다는게 말이나 될까. 에너지를 뻬앗기지 않기위해 즉 살아 남기 위해 우리 영장류를 포함한 포유류들은 집단을 선택했다. 진화 되어 오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쌓여온 DNA일지도 모른다. 집단이 더욱 강하게 결속 되기 위해선 희생이 필요하다. 그 희생의 본질에는 사랑이 있었다.



3. 호밀밭의 파수꾼

단지 그것뿐이라면 거짓말이지만 나는 그렇게 되고 싶었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내가 내 아들을 사랑하는것은 내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서 일까. 그럼 내 아들을 사랑하는것이 아니라

내 유전자를 사랑하는 것일까. 그렇든 아니든 내 아들임에는 변함이 없다. 내 사랑의 내용과 근원이 무엇이 되었든 대상은 변함없이 내 아들이다.

내 유전자가 얼마니 기여를 하든 그것은 내 아내의 유전자도 함께 기여를 한것이다. 그다음은 좀더 줄어들것이고 점차 나의 유전자는 사라질것이다. 나도 소멸하듯 내 유전자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아들에 대한 사랑은 유전자가 아니었다. 이 사랑은 막

피어난 상호적인 신뢰였다. 소멸이라는 삶속에 헛된 희망이 아니라 도전과 모험의 희망을 보았다. 나는 세상이 어떤지 알기에 우리의 신뢰는 가슴이 아팠다.

애착과 동정, 그리고 너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단지 독립적인 한명의 어른으로 자랄때까지 지켜주고 싶다.



나를 믿지 말거라. 나는 내 중요한 보호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너를 실망시킬 것이다. 그러나 아빠는 최선을 다 할것이다.




#육아 #사랑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삶에서 믿음이 중요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