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사다니는 쌍둥이 엄맙니다.
앞으로 ‘완전하게’ 행복한 하루라는 게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땅, 불, 바람, 물, 마음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날이 점점 귀해지는 거다.
고등학교 때부터 오랜 시간 같이 지내온 친구 6명이 있는데 언제부턴가 ‘마음이 어려운 시기’가 돌아가면서 온다. 누군가의 엄청 행복한 사건이 그 존재만으로 다른 누군가에겐 기억에 남는 상처가 되는걸 몇 번 보고 나서 우리의 카톡 단체방은 엄청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대화가 오고 간다.
일이 바빴던 시기에 친구와 3박 4일로 홍콩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앞으로 우리 아이도 생길 거고 그러면 누가 봐도 여행을 갈만한 좋은 날이란 찾기 어려울 것이다’라는 이유였다. 휴가를 빼기가 어려운 일정이라 비행기와 숙소 위약금을 물어가면서도 취소하지 않고 다음 일정을 잡았던 게 기억에 남는다.
여행에서 돌아온 친구는 정말 임신을 했다. 같은 해에 나는. 나에게 엄마 같은 존재였던 할머니가 아프시다는 얘길 들었다. 장난 같은 말로 할머니는 내 새끼가 새끼 낳는 것까지 보고 돌아가실 거라고 했지만 나는 몇 달 뒤에 난임진단을 받았고, 치료를 받는 중에 남편은 과로로 쓰러졌다.
그 무리하게 추진한 3박 4일의 여행이 그 해에 나에게 주어진 가장 편안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났더니, 입원하면서 퇴원 일자를 예상할 수 있는 치료는 감사하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통증인 생리통이 있지만 앞으로 출산할 일이 없으니 다행이고, ‘남편과 함께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 ‘ 것은 가끔 나에게 일어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다.
당장은 울어도 ‘내일은 좀 소강상태가 되겠다 ‘ 싶으면 무섭지는 않고, 아가들이 감기로 열이 오를 때는 마음 아파도 바이러스 항체 모으고 있다고 생각하면 대견하다. 일이 꼬여도 수중에 있는 돈으로 해결 가능하면 밤에 잘 잘 수 있고, 어쩔 땐 오늘 잘 자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상한 깡이 생기는 날도 있다.
말하자면 장도연의 ‘조빱 마인드’처럼.
쎈 척 하지만. 나는 불안도가 높아서 안정제를 소화제처럼 먹는 날도 있고 작년에는 부정맥 진단도 받았다. 반면에 나를 괴롭히는 환경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탐구하고 있고, 관리 가능하도록 환경 설정을 하고 나름대로의 생활을 잘 꾸려가는 점은 스스로 칭찬할만하다고. 일이 잘 풀리기만 하던 어느 때보다 지금 훨씬 더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요즘 생각하는 행복은 ‘안전하다 ‘는 느낌과 맞닿아있다. 똥 싸는 것도 예쁜 나의 아가들이 벌써 수술한 지 두 달 지난 맹장수술 상처를 보고 ‘엄마 이제 배 안 아파?‘라고 물어봐줄 때, 나보다 더 사랑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봐줄 때 나는 안전하다고 느낀다.
내가 이른 출근을 하면, 아가들 침대에 들어가 함께 구겨져 자다가 ‘한참 손 많이 가는 여자아이 둘’을 선크림도 챙겨 바르고 머리도 묶여서 매일 제시간에 등원시키는 남편 역시 나의 안전을 유지시키는
사람이다.
일이 잘 안 풀려서 마음이 복어처럼 심술궂게 부풀어 있는 날. ‘우리 회사에서 이거 떨어졌다고 너 일 못한다고 할 사람 있을 것 같냐’는 선배의 말이나
‘불안은, 좀 더 잘하고 싶은 사람에게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상사의 해석이나. 안될 것 같은 일에도 ‘매번 됐잖아요’라고 말하며 악착같이 달려드는 우리 변태 같은 팀원들도 나의 안전한 환경을 구성하는 사람들이다.
‘행복은, 자려고 누웠을 때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건 어쩌면 ‘걱정거리가 1도 없는 상태‘에 달린 게 아닌 것 같다.
그건 내 ‘안전’과 교환할 만한 무게의 사건이 없는 상태다. 이 역시 내가 교환하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으면 거래는 성립하지 않지. 라는 융통성 없는 표정을 짓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