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날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사를 했다. 아이의 유치원에서 더 이상 집까지 하원차량을 보낼 수 없단다. 그래서 유치원 근처로 이사를 하기로 했다. 작년 10월 즈음에 이사를 결심했고 11월에 우리 집에 월세를 내고 이사 가는 집에 월세로 계약을 했고 1월 13일에 이사를 했다.
이사하는 날은 13일의 금요일이었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비가 내리더니 이삿짐을 싸는 오전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비가 오는 날에 이사를 가면 잘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비를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물은 재물을 뜻한다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사주를 잘 아는 편이 아니다. 흙이 재물이라고 한 것 같기도 하고 금이 재물이라고 한 것 같기도 하고 물이 재물을 뜻한다고 한 것 같기도 하지만 오늘만은 물이 재물을 뜻하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새벽부터 도와주러 오신 친정아버지와 어머니도 비가 오면 잘 산다며 덕담을 보태주신다.
이삿짐 아저씨도 “아이고 비가 와서 어째요~”하신다. “오히려 좋아요! 잘 살겠지요” 하고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삿짐 옮기실 때 힘드셔서 걱정이네요” 했더니 “저희는 오히려 더 좋습니다! 비오니 잘 사시겠어요!”하고 말씀해 주신다. 오히려 좋은 게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다. 아저씨 말과 마음이 좋을 뿐이라는 생각만 든다. 오전 내내 이삿짐 아저씨들은 웃으며 작업을 해주셨고 폭우처럼 쏟아지는 비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이사를 하는 동안 소파 뒤 책장 뒤에 숨어있던 장난감과 교구들의 파편을 줍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정신 차리고 외투를 입으러 갔는데 이미 모든 외투가 포장되고 난 뒤였다. 놀란 내 눈을 보더니 이삿짐 아저씨가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고 하신다. 눈앞에 있는 여러 개의 박스들을 보니 감당이 되지 않아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계약금을 치르러 부동산에 가는 길에 우산 쓸 여유도 없어 남편과 나는 차에 타며 쫄딱 젖어 내렸다.
“외투 젖는 것보다 맨투맨티셔츠 젖는 게 낫지”라며 남편과 웃어본다. 그렇게 부동산에 도착했다.
부동산 사장님은 미리 우산을 들고 대기하고 계신다. “아이고 우산도 없이 비를 다 맞고” 라며 우산을 씌워주시지만 이미 늦었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하고 고마운 마음을 받는다. 계약을 치르는데 저쪽 부동산 사장님이 세입자 분께 “아이고 비가 와서 어째요” 하셨단다. 나이가 지긋하신 세입자 분은 “요즘 땅이 가물어서 비가 와야죠. 우리 좋자고 비가 안 오면 쓰나”라고 하셨단다.
이렇게 완벽한 이사가 있을까?
잠시 이삿짐을 내는 작업과 입주청소가 겹쳐 집이 복잡했다. 보통 이삿짐을 쌀 때 청소하려고 하면 싫어한다는데 다행히도 누구도 찌푸리지 않고 각자의 일을 해낸다.
이사 갈 집에 도착했다. 머릿속으로 계속 떠올려보았던 공간보다 훨씬 마음에 든다. 창문 밖에 나무가 가득 보이는 집을 꿈꿨는데 이전에 보러 왔을 때도 이렇게 나무가 많이 보였나? 의아하기만 하다 키가 큰 소나무가 우리 집까지 뻗어있다. 창문이 많은 집을 원했고 바깥에 초록색이 많이 보이는 집이 잠시나마 우리 집이 된다니 설레었다.
오후에는 비가 잦아든다. 오후에는 오전보다 조금 더 바빴다. 이삿짐 아저씨들이 필요하다고 하는 물건을 다이소와 철물점 가서 알아보고 사 오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번에 이삿짐을 담당해 주신 분들은 예전에도 우리 집 이사를 담당해 주셨던 분들이다. 편하게 작업해 주셔서 감사했다.
이삿짐을 모두 정리하고 친정아버지와 친정어머니와 나만 남았다. 회사로 간 남편은 빼고 친정아버지와 어머니와 새로운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친구가 전화 와서 이사 잘했냐고 물어본다. 오전에 비가 많이 와서 걱정했단다. 그리고 비가 와고 걱정했다는 말보다 더 큰소리로 “비가 오면 잘 산다더라! 진짜 잘 사려나보다” 말한다. 친구의 전화를 받으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식사를 하며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이삿짐 싸시는 분이 ‘이 집 부부는 안 싸우지요?’라고 물어보더라. 너희 싸우는 거 본 적 없으니 얘들 싸우는 거 본 적 없다고 했지”라고 하신다. 내가 “뭘 보고 안 싸우는 거 알았지?”라고 하니 엄마가 “이 분들은 집들 많이 보니까” 하신다. 연애시절 죽도록 싸운 건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뭐든지 실컷 해보면 다신 하지 않는가 보다 생각이 든다.
밤에는 남편과 새벽까지 이삿짐을 치웠다. 시어머님이 아이들 있으면 이삿짐을 치우기 힘들다고 두 아이들을 봐주기로 하셨다. 아직 멋모르고 낯 안 가리는 둘째와 낯선 환경을 불편해하는 첫째 모두 하루를 잘 버텨주어 남편과 나는 새벽까지 이삿짐을 치울 수 있었다.
몸은 쑤시고 당기고 눅진해졌지만 마음이 보송보송한 날이었다. 앞으로 좋은 일들이 가득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