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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May 18. 2023

마를린은 초록색을 먹지 않아요.

소아과에서 우연히 만난 그림책


그림책에서 느낀 점이나 그림책을 계기로 한 대화에서 나온 이야기는 그 사람의 내면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투영'이라는 현상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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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표현되지 않은 행간에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 가치관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자신에게 끌어들여 읽어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책 세러피가 뭐길래 -오카다 다쓰노부 지음/ 김보나 옮김->



글 린 리카드 / 그림 마가렛 체임벌린


그림책을 읽으면 그때그때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데 도움이 된다.

오카다 다쓰노부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림책은 행간의 빈자리에 자신의 내면을 투영하는데

투영에도 그 시기에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을 담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유 설명이 길어요! 그림책이 궁금하신 분은 사진 뒷 쪽으로 넘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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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첫째가 아파 병원에 다녀왔다.

갑작스럽게 주사도 맞고 엑스레이도 찍고 코로나검사, 독감검사도 하고 링거도 맞았다.

첫째는 겁이 아주 많은 편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입원을 아주 어릴 때 하고 지금까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링거를 맞은 기억도 없고 주사를 맞는 일도 자주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사를 맞기 전 겁을 많이 먹었다.

엉엉 울며 두려워하는 첫째에게 간호사가 바쁜 마음이었는지 강압적으로 명령했다.

첫째의 어깨를 잡고 자리에 앉히며 "네가 그렇게 울면 다른 아이도 겁먹잖아!"하고 말했다.

순간 간호사의 대응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간호사가 전문직이기에 기대한 태도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격렬하게 저항해서 간호사나 물건에 해를 가한 것도 아니고 무섭다고 크게 운다고 해서 이렇게 혼날 일일까? 아이의 어깨를 잡고 성질을 부리는 간호사의 태도에 대해 항의하고 병원을 나가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첫째를 내 앞으로 돌려서 안정을 시켰다. 아이의 회복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주사를 맞기 전까지 아이가 저항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놀라며 그러면 크게 다친다고 말했다.

간호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겁에 질린 아이에게 아프겠지만 빠르게 끝날 거고,

움직이면 더 다칠 거라고 알려주었다.

엄마가 같이 있으니까 잠시만 참고해 보자라고 하고 계속 엄마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첫째의 주사 맞기가 끝나자 간호사도 진정된 듯 보였다. 오랜 시간도 아니었는데 문 앞에 대기자가 보여서

그랬는지 아이의 어깨를 잡고 큰 소리로 흥분하는 간호사 모습에 나도 평정심을 잃을뻔했다.

물론 더 심각한 상황을 많이 본 간호사에게는 엄살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이 상황은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겁이 많은 아이들에게도 반복적으로 천천히 설명을 해주면 나중에는 곧 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간호사분이 조금 더 여유로운 어른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지하로 갔다.

첫째가 엑스레이 찍기도 걱정하길래 엄마가 포켓몬카드를 사주겠다고 내기를 걸었다.

엑스레이에 스탬프 하나, 코로나와 독감검사에 스탬프 하나, 링거에 스탬프 하나!

총스탬프를 세 개 모으면 갖고 싶어 했던 포켓몬 카드를 사주기로 했다.

병원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첫째는 그렇게 엉엉 울면서 두 번째 스탬프까지 득템 했다.

대망의 세 번째 스탬프. 첫째가 가장 겁을 먹었던 순간이다.

첫째의 허벅지를 살짝 찔러 보이며 이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포켓몬 카드를 갖는다고 알려주었다.

아프겠지만 그 시간은 지나갈 거고 끝나고 함께 포켓몬카드를 가지고 카페에 가는 상상을 해보자고 했다.

바늘을 꽂고 피를 두 번 뽑는 동안 첫째는 울면서 링거를 빼달라고 말한다.

그럼 다시 해야 한다고 간호사선생님이 말하고 나는 이제 괜찮아질 거라고 알려주며

우여곡절 끝에 링거를 꽂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간호사 선생님이 주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놓으신다.

아프다고 빼달라고 말하는 첫째와 링거가 떨어지는 방울과 손목 쪽 링거를 번갈아 보았다.

링거도 정상적으로 떨어지고 피도 역류하지 않는다.

혹시나 간호사님께 "아프다고 하는데 잘못 꽂힌 건 아닐까요?" 하고 여쭤보니

"정상적으로 되었어요! 잘못된 건 없어요!" 하신다.


첫째에게 “간호사선생님이 잘못된 것이 없다고 하셔. 엄마가 확인했어.”라고 말해주었다.

"아마 그 느낌이 낯설어서 아프게 느껴질 수도 있어. 아픈 게 아니라 불편하고 낯선 느낌일 수도 있어

조금 버텨보고 아프면 다시 말해보자"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침대로 가서 누워서 대기했다.

링거를 맞자 컨디션이 돌아왔다. 열이 나서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던 첫째가 배가 고프다고 했다.

그럼 우리 나가서 뭐 좀 사 먹을까?라고 말하자 좋다고 한다.

기분을 끌어올리며 첫째에게 "와 신난다. 우리 데이트한다. 너 먹고 싶은 거 다 말해!!"라고 말했다.

첫째도 표정이 밝아지고 점점 신나는 것 같더니 먹고 싶은 걸 말한다.

맛있는 걸 먹자 첫째도 신이 난 모양이다. 와플도 먹고 핫도그도 먹고 카페에서 생딸기우유도 샀다.

오늘의 기억은 겁 많은 첫째에게 오래도록 남을 테니

즐거운 감정으로 오늘을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 엄마의 목표다.


그때 첫째가 말한다. "오늘은 진짜 행복한 날이야. 안행복한 날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라고.

그리고 오늘 좋은 날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엄마의 기분도 구름을 걷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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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가진 후 휴식실에 있는 이 책을 발견했고 아이와 함께 읽어보았다.

오늘의 경험 덕분에 이 책의 이야기가 남다르게 나에게 다가왔다.

마를린은 초록색을 먹지 않아요 라는 책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책 전체가 아닌 부분의 사진입니다)




초록색을 싫어하는 마를린과 초록색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졌다.



마를린은 초록색을 정말 싫어한다.

초록색을 좋아하는 맥스가 이해되지 않는다.



어느 날 마를린은 백작부인에게 초대된다.

그리고 결국 백작부인네 집에서 초록색을 만난다.



마를린은 백작부인 앞에서 예의 없는 아이가 될 수 없어서 초록색음식을 먹기로 한다.

마를린에게 어떤 상황이 나타날까?

모두가 예상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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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를린의 모습에서 첫째의 모습을 보았다.

주사는 절대 안 맞아! 싫어하고 울면서 저항하던 모습 말이다.

물론 싫어하는 것과 무서워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지만

오늘의 경험을 통해  '생각보다 할만하다' '생각만큼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된 부분에서 첫째의 모습이 떠올랐나보다.

그리고 오늘만큼은 내가 백작부인이 된 것 같았다.

"주사는 아프지만 무섭지만은 않은 거야" "생각보다 맞을 만해"

"주사를 맞아서 힘든 것 같은 날에도 좋은 일은 일어날 수 있어"라고 말이다.

백작부인이 마를린이 초록색을 싫어하는지 아는지 몰랐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마를린이 초록색을 새롭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건 확실하다.

이 책 속에 첫째와 병원을 다녀온 하루가 고스란히 들어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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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를린 같은 모습이 있다.

"여우 같은 사람은 싫어" "말이 느린 사람은 싫어" "물에서 노는 건 싫어" 등

아직 충분히 겪어보지 못한 사람과 상황에 대해 판단하고 피해 다니는 일 말이다.

나 또한 그런 순간들이 떠올랐다.

우리의 삶에도 마를린의 초록색과 같은 것이 있는지 잘 살펴볼 일이다.

싫어하고 피했던 것이 반전처럼 내 삶에 큰 보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에게 남편이 그랬다. 이 남자와는 절대 결혼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내 삶에 소중한 보석이었다) 결국 사람도, 문화도, 습관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겪어보지 않고는 그 진가를 아무도 모른다.


마를린을 통해 자신만의 '초록색'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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