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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Jun 11. 2023

감정은 지나간다.

그래서 말대신 글을 쓰기 위해 브런치를 열었다.

토요일에는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학교에서 하루종일 수업을 한다.

토요일이면 남편은 하루종일 두 아이를 본다.

저녁 7시 30분에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씻고 아이들을 재웠다.

오늘 안에 독서모임 책 '고래'를 꼭 다 읽겠다고 마음먹은 터라

정확히 자정까지 폼롤러를 하며 독서를 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제 12시다.

몸이 피곤하지만 초토화된 집을 그냥 두고 잘 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초토화된 집을 뒤로하고 꿀잠을 자는 편안한 성정을 지니지 못했다.

12시에 팔을 걷고 설거지와 정리를 시작해 본다.


한 편에서는 식기세척기가 돌아가고 다른 한편에서 설거지를 하는데

오전 1시간 15분이 넘어가도 싱크대에 정리할 게 한참 남았다.

중간중간 바닥도 쓸어낸다.



조리도구와 그릇을 다양하게 꺼내어 쓰는 것은

신혼 초부터 남편이 해왔던 일이다.

굳이 그릇을 꺼내지 않아도 되는 일에도 그릇을 꺼내어 쓰기도 한다.

결혼생활 8년이 다되어가니 나도 그러고 있긴 하지만

하루동안 삼시세끼 오롯이 쓴 그릇을 모아서 설거지하자니 죽을 맛이다.

그릇 위 다양한 쓰레기들.. 예를 들면 뼛조각과 비닐들은 따로 버리고

음식물도 비워주며 설거지하자니 한참 걸린다.


하지만 곧 욱하는 얄미움의 감정을 내려놓는다.

잔소리모드를 장착해 놓고 잠들기 전에

설거지로 퉁퉁 불은 손으로 타자를 쳐본다.

따뜻한 물에 설거지해서 그런지 손등의 살이 탱탱해졌다.

글을 써 내려간다.

불은 손도 가라앉고 내 마음도 가라앉는다.


내일 남편이 깨끗해진 집을 보며

기분 좋게 일어나기를...

.

.

감정이 가라앉으면 조금 더 객관적인 사실이 보인다.


6월 10일 토요일은 남편에게 고마운 날이다.

사실 토요일마다 남편에게 고맙다.

남편은 아주 피곤할 때를 제외하고는 아이를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어떻게 아이들과 놀지를 고민하며 돌본다.

오늘은 두 아이를 데리고 동네를 탐방하고 왔다.

바깥에서 자전거를 타며 오랜 시간 몸으로 놀게 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일찍 꿀잠에 들었다.


그리고 손수 요리를 해서 밥을 먹인다.

피곤하다고 국밥이라도 한 끼 사 먹으라 해도 집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 요리를 한다.

학기 초에야 반찬에 간식에 모두 준비해 두고 나갔지만

학기 말이 될수록 떨어지는 체력에 내 몸 하나 챙겨 나가기 바쁘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을 땐 아이들 밥을 다 먹이고 저녁상을 차려놓았다.

마음 깊은 고마움에 집안이 어지러운 것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

.

즐겁게 대화하며 밥을 다 먹었다.

집에 왔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는데 남편이 싱크대에 고봉밥처럼 쌓인 설거지를 가리키며

"한 번도 안 했더니 엄청 쌓였네. 나중에 내가 영상 보면서 금방 하지 뭐"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이들 재울 때 머리를 대자마자 잠든다.

(회사에서 아무리 늦게 와도 자지 않는데 육아한 날은 어김없이 곯아떨어지는 남편이다.

  이것으로 바깥일이 힘든지 육아가 힘든지가 명백히 증명되는 셈이다)

피곤했겠다고 생각하며 바깥으로 나왔었다.

그리고 자정까지 독서를 했다.


감정이 가라앉으면 지나간 감정은 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11시간 반동안 아이를 봐줬는데

1시간 반 설거지와 청소가 문제랴.

또 자신이 고생한 것만 생각하는 우를 범할 뻔했다.


내일은 깨끗한 집에서 일요일을 시작해야지 :)

집이 깨끗해서 가장 좋은 건 사실 나 일지도 모른다.


--

새벽에 이 글을 쓰다가 첫째가 깨서

함께 누우러 들어가며 잠들었다.

이 글은 결국 일요일 아침에 완성되었고,

남편은 오전 11시가 다 되도록 자고 있다.

깜박했다.

남편은 토요일에 아이들을 이렇게 보고 나면

일요일 오전까지 아이들과 분리되어

꿀잠을 잔다는 것을^^


집집마다 다른 듯 비슷한 일상이야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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