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취미 중 하나가 골목탐방이다. 한국에서든 해외여행을 가서든 안 가본 길을 탐험하는 것을 즐긴다. 워낙 길치인지라 지도를 봐도 잘 찾지 못하는데 이러한 약점이 오히려 소소한 취미가 된 것이다. 이전부터 잘 알고 있다 생각했던 동네라 할지라도 발길 가는 데로 골목 곳곳을 누비다 보면 새로운 풍경들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골목 깊숙이 숨겨진 숍들을 발견하게 되면 뭔가 꼭꼭 감춰놨던 보물을 찾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보물 장소들 중 시간이 안되거나 혼자 들어가기엔 다소 뻘쭘한 곳은 사진을 찍어 놓고 후에 다시 방문하곤 한다. 가끔 웃긴 건 이렇게 찾아 나 혼자만 알고 싶었던 곳이 검색해 보니 이미 유명 카페나 맛집인 경우도 더러 있다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의 골목탐방은 온라인에서도 이어진다. 인스타그램이나 브랜드 관련 뉴스레터에서 추천을 통해 알게 된 브랜드 숍을 방문해 보거나 개인사업자나 디자이너 브랜드와 같이 스몰 브랜드들이 많이 입점되어 있는 W컨셉, 아이디어스, 오늘의 집 등의 버티컬 쇼핑 플랫폼을 틈틈이 탐닉하곤 한다. 또, 내 특이 성격 중 하나가 하나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먹거나 깊게 파는 것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먹거리나 아이템이 생기면 관련 브랜드 제품들을 모두 찾아보곤 한다. 작년 가을부터는 그래놀라에 푹 빠져 검색해서 나오는 모든 브랜드 제품들을 다 맛보고 비교해 보기도 했었는데, 내 기준에 가장 아이러니한 제품이 청담동 그래놀라로 유명한 '그라놀라지'였다. 타제품보다 비싼 가격 대비 맛도 영양성분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는데도 소위 '명품 그래놀라'라는 키워드를 잘 잡은 덕인지 유명 백화점과 온라인 숍에 모두 입점되어 있는 걸 보면 신기하다.
이렇게 온 오프라인에서 브랜드 탐색을 하다 보면 트렌드를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잘 되는 브랜드들의 특성도 캐치할 수 있게 된다. 직업병이자 워낙 브랜드에 관심이 많아 단순히 보고 끝나지 않고 브랜드마다 장단점을 비교해 보는 습관도 브랜딩 인사이트를 얻게 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리고 잘나가는 브랜드들이 가진 공통점 세 가지를 꼽자면 아래와 같다.
첫째, 시그니처 심볼이 있다. 브랜드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상징 키워드가 명확히 있다. 컨셉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컬러가 될 수 있도 있고 캐릭터나 로고, 시그니처 아이템이 될 수도 있다. F&B 중 이것을 가장 잘하는 곳이 얼마 전 300억 원 투자 유치를 받은 GFFG이다. 노티드, 다운타우너 등 9개 외식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데 각 브랜드를 살펴보면 명확한 상징 키워드를 갖고 있다. 노티드하면 떠오르는 노란색과 스마일, 다운타우너의 블랙 앤 화이트 스트라이프와 아보카도 버거 등과 같이 말이다. 최근 오픈한 GFFG의 '베이커리 블레어' 역시 스카이 블루 컬러와 스누피 가족이 연상되는 캐릭터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GFFG에서 운영중인 노티드/ 다운타우너/베이커리 블레어 (출처: GFFG 홈페이지)
특히, 작은 신생 브랜드일수록 컬러나 로고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예로 패션 브랜드 '인스턴트펑크'를 들 수 있다. 이제는 너무 유명한 트랜디 패션 브랜드가 되었지만 이렇게 빠르게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컬러 커뮤니케이션을 잘 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인펑하면 떠오르는 컬러는 민트 컬러이다. 이렇게 즉각적으로 상기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 키 컬러 로고를 모든 제품에 두드러지게 부착했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로고 컬러를 소매나 셔츠 밑단에 박아 본래 제품 컬러와 대비되어 더 부각되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심지어 방송에서도 인펑은 로고를 가리기 위한 스티커가 부착되지 않고 그대로 노출되어 간접 PPL 효과를 누리기도 한다. 간혹 브랜드들 중 심볼 컬러를 중간에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큰 브랜드 자산을 버리는 일이라 본다.
둘째, 인간미 넘치는 감성 커뮤니케이션이다. 공감 가치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는 작은 브랜드일수록 유리하다. 제품 배송 시 손 편지 카드를 써서 같이 보내거나 CS 응대 시에도 메시지의 톤 앤 매너를 마치 동네 언니 오빠처럼 친근하고 다정하게 세팅해 소비자의 감성을 건드린다. 온 드 미디어라 할 수 있는 브랜드 소셜 채널에서도 브랜드 소식 외 대표의 일상을 간간이 녹여내 친근감을 더해 준다. 예로 패션 브랜드 SATURday를 운영하고 있는 손호철 대표는 본인의 인스타 계정( @play_saturday) 을 활용해 브랜드 소식과 함께 사업일지를 기록하며 브랜드 공감대를 높여나가고 있다.
끼리끼리 문화라 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작년부터 커뮤니티가 마케팅과 브랜딩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는데 이는 소비자 커뮤니티를 통해 브랜드 팬덤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와 같은 결인 고객들을 모아 그들끼리의 놀이공간을 만들고, 슬쩍 흘리듯 브랜드 제품을 알리며 커뮤니티 멤버들이 자발적으로 브랜드와 제품을 홍보하게끔 유도한다. 커뮤니티가 잘 형성된, 팬덤이 잘 구축된 브랜드인지 아닌지는 제품에 대한 후기와 브랜드 채널에 달린 댓글, 그리고 대댓글을 보면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글들을 보면 브랜드와 소비자들 간 티키 타가가 잘 형성되어 있음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직관적인 네이밍'이다. 입과 머릿속에 착 달라붙는 네이밍을 갖고 있다. 블루보틀, 파타고니아, 애플을 떠올려 보자. 분명 특정 아이콘이 바로 떠오를 것이다. 식당 중에는 유용욱 바베큐연구소, 더 이탈리안 클럽, 꿉당 등도 있겠다. 너무 유명한 브랜드만 예로 들었을까. 하지만 이들 역시 처음엔 작은 브랜드로 시작했음을 잊지 말자. 특히 푸드와 외식 브랜드는 무엇을 파는 곳인지를 바로 알 수 있게끔 더 직관적일수록 좋다. 굳이 고급스럽게 보이려고 어려운 단어들을 나열해 네이밍을 만들지 않길 바란다. 지인들과의 약속 장소를 논할 때 '거기 있잖아, 거기, 이름이 생각 안 나네'가 되면 망하는 것이고, 네이밍에 바베큐든 이탈리안이든 하나의 키워드라도 떠올리게 되면 반은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나 역시 네이밍 제작을 의뢰받을 때 흔한 요청 내용 중 '고급스럽게', '트렌드 하게'등 다소 애매모호한 요청사항을 주시는 경우 만약 대상이 F&B 브랜드 일 때는 의뢰자분을 잘 설득해 최대한 입에 달라붙는 직관적인 네이밍을 제안 드리곤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작은 브랜드들이 더 강력해지는 시대가 되고 있다. 그만큼 수많은 브랜드가 생겨나고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잘나가는 브랜드의 3가지 특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본질이라 생각한다. 콘셉트를 잘 잡고 소통을 잘하고 네이밍이 착 달라붙는다 한들 본질인 맛, 제품력 등이 뒤받쳐 주지 않는다면 번쩍 반짝이고 끝나는 불꽃놀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질 좋은 나무 장작으로 핀 장작불처럼 따스하게, 좋은 향기를 내뿜으며 은은히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은 브랜드들이 하나둘 더 생겨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