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때그대 Dec 04. 2020

#11. 그 선택, 확실합니까

 제주에서 살아보기로 결정하는 과정은 자연스러웠다. 분명 도전이고 익숙한 것들을 내려놓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앞으로 이렇게 살자, 하는 삶의 태도랄지 방향에 대해 남편과 나눈 이야기들이 쌓여 생각보다 쉽게 '흘러갔다'. 결심에서 행동까지는 딱 한 달 반이 걸렸다. 돌아보니 가족들에게 마저 거의 통보하기에 바쁜 시간이다.


 실은 일년 가까운 시간동안 남편과 툭 던지고 주고 받은 답들이 모여 나는 지금 아이들과 제주에 있다.

 젊을 때 바짝 벌어 더 좋은 집에 한번 살아보자. 차도 바꾸고 한강 보이는 집에서 살다가 애들 크면 우리는 다 팔고 시골가자고 했었지. 생각만 해도 좋아서 낄낄 대다가 금새 실실 헛웃음으로 바뀌었다. 그러려면 우리가 한 달을 어떻게 살고 하루에 무엇을 접어야하는지 이야기하다 웃어버렸다.

 지금 내가 가진 것, 지금 우리의 시간을 귀하게 바라보자.

 땀을 뻘뻘 흘리고 놀다가 씻지도 않고 잠든 아이들이 천천히 크길 바라고, 잠 자리든 밥 자리든 엄마 옆자리를 차지하려고 싸우는 날들이 너무 길지 않았으면 한다.(나는 칫솔도 자기들 사이 칸에 꽂아야 한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사는 목표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놀아도 괜찮은 나이, 놀기 좋은 환경, 놀게 내버려 둘 자신. 답은 못 찾았고 자신은 더 없지만 이번 만큼은 망설이지 않았다.

 살면서 두번째로 용감한 선택이다. (첫번째는 이 남자와 결혼)


 선택은 스스로 하는 것이고 따라오는 결과도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배웠다. 숙제를 안하면 학교에서 벌을 받든 마음이 불편하든 내 책임이다. 엄마는 학원 하나를 보내도 내가 걸어 다닐 수 있는 두 세 곳을 같이 답사 해보고 선택은 내가 하게 했다. 멀어서 힘들다거나 선생님이 별로라는 이유는 바로 뱉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엄마는 늘 내 선택을 존중했다. 선택 다음에는 무한 믿음과 응원의 눈빛으로 지켜보신 분. 엄마는 너를 믿어. 나는 엄마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정직하게 애쓰면서 살았다. 힘들다고 투정부리고 고민을 털어놓아도 대답은 한가지다. 엄마 생각은 어떤지 요리조리 돌려 물어봐도 '너는 잘 할 수 있어.' 그 뿐이다. 이 부분이 나는 힘들고 섭섭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나를 어떤 마음으로 믿고 지켜보는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잘 한다고 생각하는지, 힘들지만 왜 잘 될 거라 장담하는지 구구절절 듣고 싶었다. 말 없는 믿음에 힘이 빠져갈 때 나는 엄마의 관심을 절절하게 원했다.

 엄마가 되어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엄마의 생각이나 의견은 금새 잔소리가 되기 쉽다는 것을. 엄마는 내가 힘들어 할 때 나보다 더 잠을 설쳤고, 내가 흔들리지 않도록 평안한 분위기를 지키는데 힘을 쏟았다. 엄마는 나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고 이불 속에서 펑펑 울던 그 날에도 말이다.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 모두 스스로 해 내는데 아주 익숙하다. 다르게 말하면 뭐든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뜻도 되겠다. 어찌 되든 감당하면 되니까. 지금 생각해 보고 하는 말인데 정말 나 하고싶은대로 다 하고 살껄 그랬다. 어린 나는 책임이 무겁다 못해 무서웠다. 그 시절의 책임이라봐야 시험을 망친다거나 어떤 경우 쪽팔리는 정도였을텐데. 내가 선택한 것이 옳다고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지않나 싶다. 냉정하게 상황을 보고 정리하는 것은 지금도 서툴지만 그 때는 복잡한 내 감정을 소화해 내기가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 늘 안전한 쪽이었나보다. 하고 싶지만 하면 안되는 것, 할 수 있지만 잘 하지 못하는 것, 잘 하지만 하고 싶지는 않은 것. 오만가지 시나리오 속의 내가 혹시 실패하더라도 가장 덜 상처받는 방향을 택해 온 거다. 제일 하고 싶고 기쁜 일을 선택했더라면 나는 지금과 달랐을까. 맛있는 사과를 아끼느라 못생긴 사과를 골라 먹은 것 처럼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차오른다. 소심한 선택으로 이어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아니다. 충분히 하고싶은 대로 살았고,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왔기 때문이다. 다만 가장 용감한 선택이 10이라면 6쯤 되는 길을 갈 것이 아니라 더 큰 용기를 내고 스스로를 믿었더라면 그마저도 나는 감당을 해 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8 정도 만큼 용감해진 내가 작고 어린 나에게 하는 공허한 말일 뿐.

 엄마에 대한 아쉬움도 아니라고 분명히 말해 두어야겠다. 덕분에 나는 안전한 선택과 뻔한 결과를 수십수백번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도전을 하고 단단하게 다져왔다. 엄마는 속사정을 잘 몰랐을 것이고 어설픈 충고를 했다간 내가 더 뾰족하게 굴었을 게 뻔하다.


 스물일곱살 여름, 5년 다닌 첫 직장에 사표를 내고 유럽여행을 떠났다. 40일 동안의 여행을 계획하면서 작은 선물도 챙겼다. 전통 조각보 문양의 냉장고 자석 6개. 여행을 하는 동안 만나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줄 참이다. 고마운 순간 자석을 쉽게 꺼낼 수 있도록 가방 앞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무엇이냐 물어보면 설명해주려고 영어멘트도 준비해 외우고 있었다.

 첫번째 도시는 파리였는데 지도 보는 게 익숙치 않아 같은 골목을 두 번 헤매다가 어느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영어로 물어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주워 들어서 혼자 해결하려다 큰 용기를 낸 것이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숏커트를 한 금발의 아주머니는 민트색 티셔츠가 밝은 표정과 잘 어울렸다. 처음으로 여행 중에 도움을 받아 정말 기뻤다. 남은 여행도 순탄할 것 같은 예감마저 들었다. 가방 앞주머니를 만지작 거리다 자석 선물을 건네지 못했다. 유럽여행 첫 도시인데 벌써 하나 드리면 어쩌나.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텐데.

 파리 아주머니 다음에도 나는 정말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소매치기가 가까이 있다고 알려준 사람. 고맙지만 이 아저씨 줄 거였으면 파리 아주머니가 훨씬 고마워서 못주겠더라. 길을 알려준 사람들은 당연히 패스고. 고마운 일은 없지만 귀여운 꼬마는 안되겠지. 열차를 잘 못 탔는데 이 티켓으로 원래 목적지까지 가게 해주라는 메모를 써 준 독일 차장 아저씨. 너무 감사해서 6개 모두 드리려다가 참았다. 나는 아직 여정이 남았으니까.

 조각보 자석은 지금 엄마집 냉장고에 붙어있다. 어이없게 나는 아무에게도 선물하지 못하고 도로 가지고 온 멍청이다. 13년이 넘은 일인데 한번씩 생각난다. 열심히 좋은 방향으로 선택했다지만 원래 뜻과는 다른 곳에 와 있는 나 자신같기 때문이다.


 계획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다른 선택을 해도 괜찮다. 언제나 옳을 수 없고 옳다가도 틀린 것이 되는 세상이다. 머리로 아는 것 처럼 생각도 유연해지면 좋으련만.

 커피냐 녹차냐 고민하다가 내일모레 컨디션까지 생각이 가는 나를 '지금'은 생과일쥬스가 좋겠다고 권한 남자를 선택했다. 불안한 생각의 늪에서 나를 '지금 좋은 것'으로 끌어오는 이 남자 곁에 내가 있어야겠다고, 생에 가장 용감한 결정을 한 이유랄까. 선택은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즐기면 된다고 말해주는사람 같았다.


 제주살이 힘들면 다시 돌아가도 좋다. 숨구멍을 열어두고 지금의 감사와 기쁨을 느끼며 사는 것이 답.

 

 두 아이들의 삶도 결국은 각자의 선택으로 결정되면서 나아갈텐데 내가 지혜로운 나침반이 되어주어야지 생각하면 벌써 자신이 없다. 다만 이제 나는 용기를 내어 뭐든 경험해보라고 말해 줄 수는 있는 엄마가 아닌가.

매거진의 이전글 #10. 서울이랑 안맞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