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복작가 Feb 15. 2024

셔틀콕에 반하다.

어느 새벽, 한 손에 셔틀콕을 쥔 채로 나는 사각의 코트에 서 있다. 내 뒤에는 나와 같은 편이 있고, 네트 너머의 맞은편 코트에는 상대편 2명이 셔틀콕을 기다리며 서 있다. 내 서브로 게임은 시작되고, 코트 위에 4명은 이내 땀으로 범벅이 된다. 이 순간, 나는 셔틀콕에 반하게 된다.      


셔틀콕, 그것은 16개의 거위 깃털로 만들어진 배드민턴 공이다. 그래서인지 무게가 약 5g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의 우정과 즐거움의 상징이 된다. 셔틀콕을 치면서 우리는 시간을 잊고 스트레스에서 멀어져 간다. 우리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기도 한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인생의 페이지들을 공유한다. 때로는 삶의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기도 하다. 셔틀콕은 우리에게 승리와 실패의 맛을 경험하게 하지만, 그것을 통해 우리는 성숙한다.     


벌써, 16년이 지났다. 2006년 봄, 나는 출근 전에 하는 유산소 운동으로 배드민턴을 시작했다. 가장 쉽고 저렴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일 거라 생각했다. 실내운동이니 혹한이거나 폭염이어도, 눈이 오거나 비가 와도 4계절 내내 운동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배드민턴은 동호회가 활성화되어 있어 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동호회에 가입하여 지금은 형, 누나, 친구, 동생들이 오랜 시간 가족처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2023년 3월, 어느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셔틀콕을 치기 위해 우리는 삼삼오오 체육관에 모였다. 운동하려던 찰나에 누군가 OO형이 죽었다고 한다. 믿기지 않았다. 불과 며칠전만 해도 함께 땀을 흘리며 운동하던 형이었다. 속이 좀 안 좋아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듣긴 했으나 곧 퇴원해서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그 형의 사망 소식을 들으니 그동안 함께 했던 추억들이 떠 올랐다. 퇴근 무렵에 형이 운영하는 가게에는 동호회 회원 몇 명이 항상 모여 있곤 했다. 겨울이면 과메기를 먹고, 여름이면 삶은 옥수수와 수박 화채를 먹었다. 때론 옥상에 모여서 옻을 잔뜩 넣은 닭백숙을 직접 만들어 먹으며, 동호회 활성화에 대해 얘기했다. 형이 죽고, 3개월쯤 지났을 때에는 형의 막내인 둘째 딸이 결혼했다. 우리는 결혼식에도 찾아가 그 형을 대신하여 축하해 주었다. ‘조금만 더 살고 가시지’하는 아쉬움을 삼키면서.      


또 다른 날, 우리는 여지없이 새벽 해를 맞이하며 코트에 모였다. 그 날은 조금 특별한 날이었다. 우리 중 한 명이 결혼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셔틀콕을 치면서 그 친구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고, 함께 더 많은 즐거운 순간을 만들기로 다짐했다.      


이제, 나는 동호회 회장이 되었다. 나는 더 많은 우리들이 셔틀콕을 통해 삶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나는 셔틀콕에 반하였고, 함께 한 셔틀콕의 여정은 나에게 무한한 기쁨과 의미를 선사해 주었다. 또한, 나를 더욱 강하고 성숙하게 만들어 주었다. 16년 이상 매일 새벽에 운동할 수 있는 건 셔틀콕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글을 쓴다는 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