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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작가 Jun 08. 2024

이런 휴가도 괜찮아...

충남 태안 여행기

2024년 6월 6일 현충일부터 2박 3일동안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아버지를 모시고 바람을 쏘여 드리는 목적도 있었다. 무릎이 많이 불편하신 아버지는 마음껏 돌아다니실 수 없으니 집에만 계셔서 얼마나 갑갑하실까. 우리 숙소는 충남 태안, 한적하고 외진 바닷가에 위치한 펜션이었다. 도착하니 주변에는 한 두개의 펜션이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한 마트조차 눈에 보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Tmap이란 길 안내 앱으로 안내한 길을 따라 가다가 두 번이나 막다른 길을 만났을 정도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갈아입을 옷을 몇 벌만 챙기고 먹을 것은 거의 준비하지 않았다. 두 끼 밥을 할 수 있는 쌀과 김치 한 통이 전부이다. 그러다보니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끼니 걱정을 해야만 했다. 첫 날 저녁부터 밥과 김치만으로 식사를 하기에는 너무 초라했고, 무엇보다 마실 술과 음료가 전혀 없었다. “주변에는 마트고 뭐고 아무것도 없어요. 뭘 사려면 차를 타고 농협에 가야 해요.”라는 마트 주인의 말을 듣고 어쩔 수 었이 차를 타고 20분가량 달려서 마트에 갔다. 술, 쌈장, 음료, 과자 등 이것저것 먹거리를 사고 나서, 채석포라는 곳에 가서 광어와 우럭을 섞어서 회를 떴다. 사장님은 “다음에 꼭 다시 들러요.”라고 말씀하시면서 멍게와 이런저런 먹거리를 챙겨 주셨다. 마늘과 상추는 펜션 사장님이 주셨다. 밭에서 직접 재배해서 채취하자마자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라서 싱싱함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당연히 맛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마늘은 한 개를 통째로 먹어도 매운 맛이 전혀 없었다. 방에서 멋진 일몰을 보며 회를 먹는 모습은 천하 일품이다.


 둘째날에는 펜션에서 차로 25분 거리에 있는 만리포 해수욕장에 갔다. 약 26년 전에 막내고모부는 이곳에서 개척교회를 여셨다. 막내고모부, 막내고모, 그리고 우리는 창밖으로 바다가 훤히 보이는 횟집에 가서 싱싱한 생물 우럭으로 만든 우럭 지리탕을 주문했다. 막내고모부가 잘 아는 음식점이라서 그런지 주인 아주머니는 서비스를 푸짐하게 내어 주셨다. 그중 산 낙지와 우럭 조림은 우리가 주문한 우럭 매운탕만큼이나 맛있었다. 고모부와 고모가 이곳에서 오랜 시간 교회를 운영하시다 보니 아시는 분도 많았고, 인심마저 풍요로웠나 보다.     

점심을 배부르게 먹은 후 만리포 전망대에 올라갔다. 식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 산책삼아 걷다 보니 전망대 입구에 다다랐다. 전망대는 아파트 13층 정도 되는 높이에 있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가야만 했다. 다행히 올라가려는 사람이 적어서 기다리지 않고 금방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전망대 앞에 멈췄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만리포 해수욕장 전경은 "와~"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멋졌다. 우리도 그랬지만 전망대에 올라오는 모든 사람들의 첫마디는 우리와 같은 탄성이었다. 놀라운 건 이 전망대 이용이 공짜였다. 돈을 받더라도 사람들이 몰릴 것 같았는데 무료인게 더 좋았다.

전망대에 내려와 유류피해 극복기념관에 갔다. 2007년 12월 7일, 바로 이곳에 거대한 유류오염 피해가 있었다. 만리포해수욕장 북서방 5마일 해상에서 허베이 스피리트 유조선의 기름이 누출된 사고였다. 유류오염을 극복하기 위해 무려 120만명 이상의 자원봉사자가 이곳을 다녀갔다. 그 덕분에 기적같은 일이 발생했다. 까맣게 기름으로 범벅이 된 이 곳이 지금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이곳에서 유류피해를 극복한 역사의 참 증인이야.”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고모의 현장체험기와 상세한 설명으로 기념관을 즐겁게 쭈욱 둘러볼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인간과 자연의 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당시에 고모무와 고모는 자원봉사자들의 교육과 간식을 챙겨주는 등 바로 이 현장에서 매일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고모부는 2023년에 ‘태안 유류피해 극복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때 위원으로 직접 참여하셨다고 한다. 기념관 여기저기에 자원봉사자 120만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그 중 벽 한 켠에 큼지막하게 가장 먼저 적힌 고모부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펜션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신두리 사구센터에 들렀다. 신두리 사구는 우리나라 최대의 모래언덕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정된 탐방로로만 다녀야 했다. 탐방로는 A코스, B코스, C코스의 3개가 있는데, 우리는 아이들의 짜증이 도를 넘어갈 즈음이라 코스 탐방은 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아이들 없이 와서 탐방로를 걸어보겠어.”라는 다짐을 하고 펜션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독서를 참 많이 했다. 이른 새벽에 가족들이 모두 자는 시간을 이용해서 소설책을 읽었다. 《폭풍의 언덕》이라는 세계 영문학 3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히는 소설이다. 책의 분량이 600페이지가 넘었으나 반 이상을 읽었다. 새벽에 그 짧은 시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독서에 빠진 것 같다. 특히, 둘째날 아침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창문 밖으로 바다가 보이고, 빗소리가 들리는 소파에서 책을 읽는 건 또 하나의 힐링이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순식간에 글을 써서 브런치라는 앱에 올렸다. 그 글을 수정하고 있는 지금, 그때를 회상하노라면 행복한 기분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런 여행도 좋다. 좋은 경치를 보고, 감동적인 얘기를 들으며, 여유롭게 독서와 글쓰기를 하는 여행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여행의 풍미를 더 해준 것 하나가 더 있었다. 친구가 직접 내려서 선물해 준 럼주 맛의 커피이다. 여행 중에 틈틈이 먹으니 맛과 향이 더없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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