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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수 Aug 30. 2021

코로나 확진 사흘째... 보건소 연락無

감염자 폭발하는 Tokyo  “기다리세요! 방법이 없습니다”

8월 3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코로나19(이하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걸리면 죽다 살아난다더니 전신 근육통과 두통이 범벅된 고통 속, 온몸을 적셔대는 식은땀과 미적지근한 열이 정신 차릴 틈을 주지 않았다. 처음 겪어 보는 고통이었지만 그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환자와 가족을 위해 나라에서 해주는 것은 없다’라는 자각이었다. 


코로나로 자택 격리 중 상태 악화, 구급차로 8시간, 병원 100군데를 헤맨 끝에 겨우 입원한 환자 이야기, 입원을 거부당한 코로나 감염 산모가 집에서 출산한 아기가 결국 사망한 사건.

뉴스에 연일 보도되는 그들의 이야기가 여차하면 내 얘기가 될 수도 있다는 현실, 손도 한 번 못 써보고 제대로 된 케어도 없이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오슬오슬 소름이 돋았다.   



■ 뭐라고요? 보건소가 휴일이라고요? 


일 때문에 일주일에 세 번씩 스크램블 교차로로 유명한 시부야에 들른다. 저녁 8시로 제한한 단축 영업과 일부 회사들의 재택근무 전환으로 전철 안 사람들의 이동은 다소 준 느낌이 있지만, 시부야의 밤은 2~3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시부야 역 앞 하치코 광장의 불을 꺼놨음에도 유튜브 생중계하는 사람들, 술이 올라 흥청이는 젊은이들, 삼삼오오 모여 달뜬 밤을 향유하고 있는 대학생들, 수많은 이들이 코로나 시대를 외면하고 있다.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



현재 도쿄에는 네 번째 긴급사태 선언이 선포됐지만 거듭되는 횟수와 달리 긴장감은 더해지지 않고 있다. 도쿄 올림픽 이후 매일 최고 환자 수를 경신하고 있고, 전국 70%에 달하는 47개 지역이 긴급사태 선언, 중점 조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이렇다 할 효과 없이 자택 격리를 하다가 증세가 악화된 사람들의 사망 사고만 끊이지 않고 있을 뿐이다.






8월 1일, 한낮의 신주쿠는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사람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넘쳐나는 사람들로 긴 줄을 서서 기다린 백화점 식당가에서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과 회포를 풀고 돌아왔다.


“자기! 나 이불 좀 덮어줘! 그거 말고, 더 두꺼운 거. 추워! 추워!”

자던 중 갑작스러운 두통과 오한이 엄습해왔다. 덜덜거리며 이가 부딪쳤다. 에어컨을 틀었다고는 하지만 33도가 넘는 한여름 밤이었다. 잊을 만하면 편두통이 찾아왔지만 날카로운 송곳으로 머리 전체를 잘게 쪼개는 듯한 고통은 처음 경험해 보는 통증이었다. 날이 밝아옴과 동시에 관절을 중심으로 한 근육통이 온몸을 쥐어짰다. 견뎌보려 나도 모르게 헐떡거렸다. 하루를 쉬어도 차도가 없어 천근만근 하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일반적인 도쿄의 병원보다 규모가 크고 시설도 좋은 병원이었는데 ‘코로나가 의심돼서 검사를 받고 싶다’는 이야기를 사전에 전했음에도 일반인들과 함께 접수하는 시스템에 좀 놀랐다. 이후 발열 증상이 있는 사람, 코로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만 모아 놓은 구역으로 옮겨져 거기서 두 사람씩(?? 커플 검사??) 검사를 받았다.

코로나 검사를 받은 집 근처 병원

 PCR 검사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항체 검사를 실시했고 손가락에 검사기를 장치, 산소 포화도를 측정했다.  무슨 일을 보든지 많은 시간을 각오해야 하는 일본답지 않게 20여 분 뒤 결과가 나왔는데 나는 물론 함께 검사받은 여성도 양성이었다. 그녀도 나와 같은 날 신주쿠에 외출했었다고 했다.


“산소 포화도의 수치가 정상이기 때문에 입원은 불가능하고 자세한 사항에 관해서는 보건소에서 연락이 갈 것입니다. 보건소의 상황에 따라 연락이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양성 판정을 받은 것도 걱정이었지만, 가족들 감염이 걱정돼 병원 입원과 격리 시설에 대한 문의를 하니 병원에서는 보건소의 연락을 기다려달라 했다.


남편은 재택근무, 딸들과 나는 방학으로 모두 집에 있는 상황이었다. 애가 탔지만 일단 돌아가서 방 하나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자가 격리 준비를 했다. 읽을 책과 노트북 등을 준비하고 화장실은 같이 쓸 수밖에 없으니 쓰고 난 뒤 변기와 손잡이를 소독하고 나왔다. 그날 만났던 선생님께 연락을 했고 회사에도 상황을 알렸다.


애타게 기다린 보건소 전화는 저녁 8시가 넘어서도 오지 않았다. 늦을 수 있다고 했지만 그런 얘기야 만일을 대비해 늘 하는 소리이고, 감염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이런 비상시에는 늦더라도 당연히 연락이 올 줄 알았다. 

   

‘휴일인데….’ 다음 날 토요일 아침, 설마, 설마 하는 불안감을 안고 보건소에 전화하니 쉬는 날이라는 안내 멘트가 반복됐다. 비상시국 아닌가, 이런 상황에 당직자는 없는 건가? 코로나 감염 시 행동 요령이야 귀가 닳도록 들어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가족 간 감염이 걱정돼 격리 시설에 관한 상담을 하루라도 빨리 받고 싶었다. 


보건소 연락을 포기하고 ‘도쿄도 코로나 상담센터’로 연락을 하고 상황을 설명했다. 가족들이 걱정되니 격리 시설을 비롯한 자세한 안내를 받고 싶다고.

“코로나 환자 관리와 상담은 담당 보건소에서 전담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연락을 기다리실 수밖에 없습니다. 격리 시설도 보건소가 아니면 모르니 보건소와 상담해 주세요.”

“네? 보건소에서 연락이 없는 데다 오늘 걸어 보니 휴일이라는 멘트뿐, 보건소와 연락 자체가 안돼요.”

“주말은 보건소 휴일이에요. 내일도 연락이 안 될 거예요. 안정을 취하면서 연락을 기다리세요.”

귀를 의심했다. 네 번째 긴급사태 선언을 하고 있는 마당에 도쿄도는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하지 못했고 지역 보건소는 안일했다.   



■ 격리할 수 있는 시설은요? 가족들은요? 갑자기 악화되면요?


남편과 큰 딸은 폐점 직전 시간을 이용해 장을 봤다

보건소에서 전화가 온 것은 코로나 확정일로부터 나흘 째 되던 월요일 저녁 6시 30분이었다.  진단 전 상황과 현재의 상태에 대해 묻고 집에서의 격리 기간을 설명한 뒤 가족들도 밀접 접촉자이므로 격리가 필요하다는 안내를 했다. 동선 파악, 구호 물품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고 격리 시설은 자리가 없다고 했다.


“가족들의 경우 대중교통이 아닌 자전거 이용이나 집 근처 산책 정도는 괜찮습니다. 슈퍼에 가서 장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


슈퍼야말로 사람들이 잔뜩 모이는 감염의 온상이 아니던가.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결정이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아무리 장보기가 대화 없이 가능한 일이라 해도 석연치 않았다. 격리가 끝나는 14일 다시 한번 검사를 받아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싶다는 나의 희망에 보건소 측에서는

“그즈음 되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이 약해진 바이러스가 남아 있어서 다시 양성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검사는 안 받으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라는 회답을 했다.


10여 분에 걸친 안내 이외에 격리 마지막 날인 14일 다시 전화해서 내 상황을 파악되면 예전 생활로 돌아가도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이 열이 나거나 긴급 상황이 생기면 전화하라고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덧붙인 말이

“이용자가 많아서 연락이 안될 수도 있지만 계속해서 전화해 보세요”


과연 그랬다. 배가 자꾸 아프다는 아이가 걱정돼 업무가 시작되는 9시부터 9시 10분까지 9시 30분부터 10시까지 두 차례에 걸쳐 60여 통의 전화를 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주변의 병원에 하나하나 전화해 아동 검사를 허가하는 병원을 찾아 PCR 검사를 예약했다. 


상황이 특별한 만큼 좀 더 전문적이고 안심할 수 있는 상담과 조치를 원했다. 하늘의 별따기라는 병상이나 격리 시설을 원한 것이 아니라 그저 안심할 수 있는 상담을 원했을 뿐이다. 그러나 전화 연결조차 할 수 없다니. 

코로나 환자의 급증으로 의료 시스템 붕괴 이야기까지 나오는 이 시점에, 헤매던 환자들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다행히 가족들에게 전염되는 일 없이 무사히 넘겼지만 지병이 있거나 병약자, 노약자에게는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임에 틀림없었다.



 

처음 도쿄에서 신혼 생활을 꾸렸을 때 날강날강한 느낌은 있었지만 어디를 가도 청결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서울에서 놀러 온 친구는 집에 있는 조지루시(코끼리표) 밥통과 히타치 청소기를 보며 많이 부러워했다. 얼음이 만들어지는 냉장고를 신기해했고, 목욕탕과 화장실을 분리해 놓은 구조에 '역시 일본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깨끗하다'며 감탄했다. 한국으로 갈 때는 팸퍼스 기저귀와 미소시루, SKⅡ 화장품을 가득 쟁여 돌아갔다.

'메이드 인 재팬'이 주는 의미는 그런 것들이었다. 세월은 흘렀고 한국과 일본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외국에 살면 애국자가 된다고들 하지만, 불안한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느끼는 바가 크다.


코로나와 관련돼 오늘 겪은 황당 경험!!!! 보험료 청구를 위해 보건소에 코로나 관련 서류를 문의했다. “보험사에 제출하는 서류인데요, 코로나 확진 증명서와 자택 요양 기간이 명시된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나요?”

“네 가능합니다. 하지만 서류 발급까지 시간이 좀 걸립니다. 두 달 안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염 환자가 미친 듯이 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날로그적인 일본의 시스템도 늘 체감하며 덤덤히 살고 있다. 그래도 그렇지. 서류 2장 발급... 2천 장도 아니고, 2만 장도 아니고 2장의 확인 서류 발급이 두 달...


2021년 8월, 도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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