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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수 Jul 16. 2020

선생님의 돈가스

꿈꾸는 개다리소반 Ⅱ


  그 돈가스를 이야기하자면 기억을 한참 되짚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니까. 돼지고기라더니 사랑스러운 튀김의 모습에, 불고기나 삼겹살에 비할 바 아닌 넉넉한 두께와 바삭한 식감, 거기에 소스 맛은 또 어땠는가.



 내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은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시골이다. 지금은 꽤나 알려져 많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지만, 당시는 바다가 있는 작은 마을일 뿐이었다.


 “너 거기 가 봤어? 진아는 가 봤대. ”


 시골 마을에 최초로 생긴 레스토랑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선 가게 이름이 남달랐다. 풍년 제과, 을지 서점, 우리 문방구… 죄다 한글이나 한자를 사용한 촌발 날리는 이름들 속에서 ‘로맨스 레스토랑’이라니… ‘로맨스’도 멋있고 ‘레스토랑’도 멋있다. 상당히 뭔가 ‘있어’ 보였다. 거기에 반짝이는 조명과 분홍색 간판까지….


 오므라이스, 돈가스, 하이라이스… 그곳에서 파는 메뉴 또한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 아니, 들어본 적 조차도 없는 것들이었다. ‘어떻게 생겼을까?’, ‘무슨 맛일까?’, ‘엄청나게 비싸겠지?’ 아이들은 그곳을 지나며 어제도 엊그제도 한 말을 하고 또 했다.


 “오므라이스는 밥으로 만들었고, 돈가스는 돼지고기로 만들었는데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주말마다 가족들과 가서 먹는다고 하는 부잣집 딸 진아를 아이들은 우러러봤다. 부러웠다.


 어느 날 내게도 기회가 왔다.

 삼 남매인 우리 집에 담임 선생님 세 분이 함께 가정 방문을 오신다는 거다. 엄마와 아빠는 로맨스 레스토랑의 돈가스를 대접하기로 했고, 내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 저녁 시간이 됐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밥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오늘 돈가스 먹는 날 아니야?”

 “배고플 텐데 우리는 먼저 먹자”

 절규하듯 숨기지 않고 울었다. 최대한 슬프고 최대한 크게. 그러나 바늘 하나 들어갈 것 같지 않은 엄마의 단호함에 결국은 밥을 쑤셔 넣었다. 돈가스를 기다리고 있던 입 안을 흰 밥이 까실하게 비벼댔다.

 ‘며칠 전부터 기다렸는데….’, ‘내일 아이들에게 자랑하려 했는데….’ 눈물이 자꾸 나왔지만, 이미 끝난 게임… 밥을 삼키며 눈물도 힘겹게 넘겼다.


  한 시간 뒤 선생님들이 오셨고 곧이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돈가스가 배달됐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다. 부침개를 부칠 때의 기름 냄새와는 또 다른 맛난 기름내, 함께 풍겨오는 새콤달콤한 소스의 향기. 밥, 국, 반찬 그릇으로 돼 있는 보통의 상차림과 달리, 한 개의 큰 접시에 모든 것을 담은 모양새도 신기하고 새로웠다. 접시에는 소스를 뿌린 돈가스와 샐러드, 단무지가 있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감탄한 것은 칼과 포크였다. 젓가락 숟가락이 아닌 작달만한 칼로 잘라 영화에서 보던 그 포크로 찍어 먹는 방식, 그 세련됨이라니….


   엄마는 방에 가 있으라는 눈짓을 계속 보냈지만 나는 가서 보고 또 보고 했다. 선생님들은 맥주와 돈가스를 드시며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셨다. 선생님이 잘라 드시는 돈가스가 한 점, 한 점, 없어질 때마다  내 가슴이 타들어갔다.


  “얘들아! 이리 와 봐라!”

  상을 치우시던 엄마가 우리를 부르셨다. 상 위에는 반쯤 남은 돈가스가 세 개 놓여 있었다. 너무 놀랐지만 이건 꿈이 아니다. 냉큼 앉아 돈가스를 받아 들었다. 이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인가. 비록 온전한 돈가스는 아니었지만 내 감동의 정점을 찍은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오빠와 동생은 포크로 찍어 순식간에 먹어 버렸지만 난 여주인공 흉내를 내며 서툰 칼질로 그 맛을 음미하고 또 음미했다. 아까워서 덥석 먹어버릴 수가 없었다. 나를 보면서 엄마는 조용히 웃으셨다. 지금 돌아보면 그 웃음은 실은 눈물이었을 듯하다.




  돈가스가 일본에서 시작된 음식이라는 것을 안 것은 학생 신분을 벗고 나서다. 일본에 오니 돈가스의 본고장답게 맛난 가게가 지천이다. 맛은 물론 가격도 저렴하고 종류도 다양하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 돈가스와 일본 돈가스가 좀 다르다는 사실이다.


  일본식 돈가스는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먹기 좋게 잘라 나오는 게 대부분이다. 한국에 비해 고기가 두껍고 채 썬 양배추, 일본의 된장국 격인 미소시루와 함께 먹는다. ‘바사삭’한 튀김옷을 지나면  묵직하면서도 보드라운 고기가 소스와 어우러져 입 안은 행복하다.


  하지만 그 어떤 돈가스를 먹은들 그때 먹었던 반쪽짜리 돈가스의 감동에 비할까. 문밖에 서 있는 제자를 생각하는 선생님의 따스한 마음이 버무려져 로맨스 레스토랑의 돈가스는 세월이 흐를수록 풍미를 더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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