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떡 직업을 찾는 모험 ep.4
해고를 당한 후, 마지막 달 월급과 퇴직금을 받기 전까지는 늘 마음속에 불안이 안개처럼 껴있었다.
법적 기한까지는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생각을 분산시킬 겸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최소 한 달은 넘게 쉴 계획이었기 때문에 회사를 다닐 땐 쉽게 가볼 수 없었던 유럽을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원래의 나는 여행을 하기 전에 가고 싶은 곳과 맛집을 샅샅이 검색하여 러프한 계획을 짜는 편이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회사에서 해고 때문에 머리를 많이 쓰고 있었기 때문에 여행 계획을 짤 여유가 없었다.
고민 끝에 오랜만에 패키지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패키지 여행의 빡빡한 일정이 내 마음속 불안 안개를 애써 모른척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던 와중에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려니 여행 중간에 감기 몸살에 걸려 약기운에 여행을 다녀야 했지만, 불안 속에 휩싸이느니 몽롱한 정신으로 있는 게 훨씬 나았다.
또,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릴 때쯤 여행을 가서, 예쁜 크리스마스 장식들, 사람들의 행복한 얼굴을 보니 잠시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문제는 여행을 다녀온 후였다.
패키지 여행에 비하면 퇴사한 후의 내 일상은 고요했다.
고요함이 나를 내 마음속에 안개처럼 퍼져있는 불안에게 데려갔고, 그럴 때마다 숨이 막혀 1분도 쉴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때는 닥치는 대로 뭔가를 배웠던 것 같다.
끈기 있게 하나를 오래 배웠던 게 아니라, 불안을 잠시 잊을 수만 있다면 그게 타로카드든 도자기 굽기든 신경 쓰지 않고 배웠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집에 돌아와 잘 시간이 되어도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새벽까지 유튜브를 보다가 지쳐 겨우 잠에 들었다.
퇴직금과 남은 월급을 정산 받은 후에는 그렇게 몰아내려고 애썼던 불안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곰이 겨울잠을 자듯 그동안 밀린 잠이 쏟아지듯 몰려와 일찍 잠에 들어도 늦게 일어나곤 했다.
마음은 한결 편해졌으나 외출은 자제했다.
정산 받은 남은 월급이 얼마 안 되기도 했고, 결혼 자금을 모아야 해서 왠지 퇴직금이나 그동안 모아뒀던 돈을 쓰기가 아까웠다.
이때는 집에서만 있어도 내 맘대로 살 수 있으니 회사 다닐 때보다 편하고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날들이 길어지자 점점 나 자신을 소리 없이 집 안에 가두고 있었다.
돈이 부족하다고 밥 먹을 돈도 아껴서 먹고 친구도 만나지 않고 집에만 있으니 첫 일주일 정도는 천국이었지만, 점점 내가 쓸모 없어진 느낌이 들었다.
겨우 케이크 한 조각 사는 것도 벌벌 떠는 내가 앞으로 큰일을 할 수 있을까?는 걱정이 들었다.
이렇게 살다간 우울함이 더 커져서 정말 집 밖에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나, 용기를 내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맛있는 것도 먹고 예쁜 카페도 갔다.
바깥공기를 쐬니 그때만큼은 쓸모 없어진 느낌이 조금 덜 느껴졌다.
집에서 칩거하던 한 달이 지난 후, 해고를 당했기 때문에 실업급여가 들어왔다.
회사를 다닐 때 받던 월급보단 적은 금액이었지만, 지난달보다 배달도 몇 번 더 시켜 먹을 수 있었고 케이크 가끔 한 조각씩 사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성실함과 부지런함이 또렷하게 박힌 K-직장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지, 실업 급여를 받더라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나 자신에 대한 쓸모없음 의혹을 지울 수 없었다.
퇴사한 직후보다 수익이 더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점 우울과 불안에 털려 바싹 말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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