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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전시회를 열다

찰떡 직업을 찾는 모험 ep.32

by 일라

얼마 전 첫 전시회를 열었다.

다른 일러스트 작가 분들과 공동으로 준비하긴 했지만, 내 인생의 첫 전시회라 의미가 깊었다.


약 두 달 전, 닛커넥트에서 함께 그림 그리는 루틴도 만들고 전시회도 열 작가들을 모집한다는 '느긋느슨 그림 그리기' 모임 글을 보고 바로 신청했다.

맨날 혼자 그림을 그려서 다른 분들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궁금했고, 내가 과연 전시회에 걸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도전해보고 싶었다.


모임이 시작된 후, 평일에는 낙서라도 그림 한 장씩을 꼭 그려서 인증하는 일을 시작했다.

매일 그림을 그리는 습관이 없었어서 처음에는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녹초가 되었는데도 그림을 그리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하다 보니 부지런하게 그림을 그리게 돼서 좋은 습관이 생긴 것 같아 도움이 되었고, 그림을 많이 그릴수록 실력이 조금씩 늘어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른 분들의 작업물을 보면 실력이 좋으신 분들이 많아 나도 더 열심히 그려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멍순이의 찰떡직업카드

루틴이 내 일상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갈 때, 이제 전시회 그림의 주제를 정해야 했다.

내 인스타툰의 주제는 '찰떡 직업을 찾는 모험'이라, 지금까지 내 캐릭터 멍순이가 도전한 직업들이 그림에 잘 녹여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직업을 한 그림 안에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화처럼 한 퀘스트를 끝내고 나면 그걸 인증하는 카드나 포켓볼처럼 결과물이 남아 그걸 전시하는 컨셉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카드캡터 체리 만화가 떠올랐다.

요즘 친구들은 잘 모르는 만화려나 궁금한데 내가 어렸을 때 한창 유행했던 카드캡터 체리는 주인공 체리가 일상에서 우연히 만나는 마법 물체들을 카드에 봉인하는 내용의 만화였다.


체리가 모았던 카드들은 타로카드처럼 신비하면서도 예쁘게 생겼었는데, 그게 굿즈로 나왔을 때 인기가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멍순이가 도전한 직업들도 멍순이가 모은 직업 타로카드 컨셉으로 그림을 그리면 어떨까? 하는 결론이 나왔다.

타로카드 같이 세밀하게 예쁘게 그려야 하는 작업은 처음이라 어색한 내 실력에 스케치를 몇 번 수정했었다.

몇 번을 수정한 끝에 초안보다는 꽤 마음에 드는 버전이 나와 완성까지 박차를 가했다.


이번에 전시회 그림을 그리면서 느꼈던 점 중 하나는 바로 배경이 생각보다 그리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인스타툰을 그릴 땐 매 컷마다 배경을 세세하게 그리지는 않았는데, 가끔 배경을 그릴 때 조화로운 배경을 그리는 게 참 어렵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용 그림은 인스타툰 그림보다 사이즈가 더 컸고, 인스타툰과 같이 스토리 상 필요한 배경이 명확하게 있는 게 아니라서 창의성이 더 필요했다.

이번 그림들은 당시에 내가 그라데이션 배경에 꽂혀서 두 그림 모두 그라데이션을 배경에 활용해 봤다.


멍순이 피규어 키트

전시회 그림은 최대 5개까지 전시할 수 있었는데, 한 개로는 왠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아 그림을 한 개 더 준비하기로 했다.

사실 첫 번째 그림은 내 캐릭터 주제와 잘 맞기는 하나, 이 카드들이 최종적으로 뭘 의미하는지 표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 카드 6개를 집어넣으니 제목을 넣을 공간이 부족해서 어떻게 주제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마침 요새 인스타그램에서 조립식 장난감 그림들을 봤던 게 생각이 났다.


멍순이도 찰떡 직업 키트 조립식 장난감을 만들면 어떨까?

나는 곧바로 스케치를 그려봤고,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이 그림을 두 번째 그림으로 확정했다.

키트의 부품으로는 멍순이의 보자기 가방, 수첩과 연필, 자기소개서, 딸기케이크가 있다.

참고로 멍순이의 정체성 중 하나가 딸기이기 때문에 멍순이 피규어 키트에서 생크림 딸기 케이크를 빠트릴 수 없었다.

자기소개서에는 뭐든지 도전하려는 멍순이의 염원을 담았다.


5월의 느느조각 전시회장

이번 전시회는 USB를 모니터에 연결하는 디지털 전시였는데, 전시회 그림을 거는 날 가져간 내 USB는 기기와 호환이 잘 맞지 않는지 몇 번을 모니터에 다시 꽂아봐도 인식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전시회장 모니터에 이미 꽂아져 있는 USB가 있었고, 관계자 분도 이 USB들을 사용하는 것을 제안하셔서 내 그림들을 전시회장 USB에 옮겼다.


그렇게 순조롭게 그림이 모니터에 보였다면 좋았을 텐데, 이번에는 그림 두 개 중 한 개가 화면에 보이지 않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작가님들도 대부분 모니터에 그림이 안 보이거나 그림이 회전되어 있어 모니터에 꽉 차게 보이지 않거나, 혹은 모니터에 꽉 차게 그림을 회전시키면 그림들을 자동으로 넘겨주는 기능이 정지되었다.

다시 컴퓨터에서 그림을 다운 받아 우여곡절 끝에 USB 연결에 성공할 수 있게 되었다.

안 그래도 전시회장이 약간 더운 편이었는데 문제가 생기니 왠지 더 덥게 느껴졌다.


그림을 모두 걸고 나서는 전시회장에 명함 등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내 명함과 무료로 나눠드릴 스티커를 배치했다.

이제 전시회가 시작된 지 2주는 지났는데 과연 스티커와 명함을 얼마나 가져가셨을지 기대되면서도 혹시나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 없어졌을까 봐 긴장이 된다.



첫 번째 전시회를 하고 나니 나도 하면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이 느껴졌고, 다른 일에도 도전해 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지금도 아직은 그렇지만 전에는 더 새로운 일에 지레 겁을 먹고는 했다.

이모티콘 제안이라던지 일러스트 페어 참여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반응이 별로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사실 지금도 새로운 도전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해지고는 하지만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 쪽으로 조금 더 기운 것 같다.

이 용기가 바닥나기 전에 다음 할 일을 또 조금씩 도전해 봐야지!





찰떡 직업을 찾아 여행하는 강아지 멍순이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www.instagram.com/illam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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