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떡 직업을 찾는 모험 ep.39
요즘 주말에 고립 혹은 은둔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한 자조모임을 지원하고 있다.
한 번 세션이 시작할 때마다 약 20명 내외 분들이 오시는데, 내가 하는 역할은 오시는 분들을 안내하고 자조모임에 함께 참여해서 참여자 분들이 대화를 잘하실 수 있도록 돕는 퍼실리테이터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내가 진로 변경을 하면서 집에 잠시 고립된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들을 이겨내고 나와보니 집에 있을 때보다 훨씬 살만했다.
내가 집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처럼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퍼실을 신청하게 되었다.
청년 자녀를 대상으로 모집했지만, 청소년이나 중년의 자녀를 두신 부모님도 계셔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은둔/고립되었다고 해서 집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밖에 나가서 약간의 경제활동과 친구를 만나기는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방에 들어가 부모님과 말을 하지 않는 경우, 부모님과의 소통을 피하기 위해 밖으로만 다니다가 잠만 자러 집에 오는 경우 등 다양한 경우가 있었다.
자조모임 첫 번째 세션에서는 각자 긴장을 풀 수 있는 아이스 브레이킹 시간을 가진 후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 부모님들의 진실된 마음과 그간 고생하신 게 느껴져서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참느라 혼났던 기억이 난다.
자녀도 자녀대로의 아픔이 있지만, 부모에게도 부모만의 아픔이 있구나를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외에도 동화책 테라피, 예술치료 등 다양한 세션들이 준비되어 있어서, 나도 함께 워크샵에 참여한 느낌이 들어서 흥미가 절로 생긴다.
여느 날과 같이 자조모임이 끝난 후 다른 스태프들과 피드백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다음 모임에서는 나와 같이 퍼실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분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부모님들께 공유하고 워크샵을 진행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퍼실로서 보조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주도적으로 워크샵을 진행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아서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발표를 준비하면서 걱정이 하나 생겼다.
최소 몇 년 동안은 자녀의 은둔 혹은 고립으로 인해 맘고생하신 부모님들 앞에서 고립기간이 1년도 되지 않는 내 이야기가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례들보다 부모님과의 갈등도 원만히 해결한 편이라 절박하신 마음을 가지고 참여해 주신 부모님들을 기만하는 게 아닐지 걱정되었다.
그래도 고립의 경우가 다양했던 경우를 떠올리며, 나 같은 사례도 자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준비를 이어갔다.
내가 집중한건 회사를 다니며 겪은 사람 스트레스와, 퇴사 후 진로를 확실하게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면서 생긴 부모님과의 갈등이었다.
부모님 눈에는 잘 다니고 있던 정규직을 그만두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내가 걱정도 되고 답답하셨을 거다.
나는 내 나름대로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느라 고군분투 중이었기에, 나름 힘을 내서 열심히 살아보려는 내 일상과 가치관을 부정하는 부모님께 서운함이 밀려왔었다.
그리고 왠지 성인이 되고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부모님께 힘들었던 얘기는 잘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셨던 부모님과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발표 당일, 부모님이 내게 하셨던 말들과 내가 그 말들로 인해 들었던 생각들을 공유했는데, 많은 부모님들이 본인도 비슷한 말을 하신 적이 있다며 공감해 주셨다.
내가 부모님들께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자조모임에 참여하신 부모님들이 집중해서 들어주셨고 끝나고 나서 질문도 해주셔서 감사함이 들었다.
또, 나와 같이 일하는 퍼실 분의 발표가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을 때 많은 부모님들이 본인의 자녀의 이야기를 해주신 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시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답하기가 어려워서 당황했었다.
왜냐하면 가정마다 모두 특성과 상황이 다르고, 내 경우에 도움이 되었던 해결책이 다른 가정에서는 오히려 악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답을 할 때 최대한 나의 경우에서 예를 들어 설명을 드리고, 자녀 분의 케이스와 맞지 않을 수 있음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발표가 끝나고 나니 후련하기도 하고, 좀 더 이랬다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도 함께 느껴졌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들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온 세상에 방송을 하는 기분이랄까?
그 솔직함에 격려를 받을 수도 있지만 손가락질도 받을 수 있는 무대의 무게를 느껴볼 수 있었다.
앞으로도 올해까지는 은둔/고립 자녀 부모님 자조모임은 진행될 예정이다.
한 가정이라도 가족 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도움을 드리고 싶다.
찰떡 직업을 찾아 모험하는 강아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