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설공주 Dec 18. 2022

12 angry men

배심원 제도가 있다면...

한때 그리샴이 날렸다.

타임 투 킬에서 시작해서 그때는 나오는 책마다 입도선매다. 본업이 변호사였기에 대놓고 비꼬고 희화화했다. 자학개그에 대놓고 딴지를 걸 수 없을 테고, 없는 얘기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 업계를 떠올리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수임료가 따라온다. 상당히 성공한 변호사가 자신의 직업적 애환이라고  말이 "의뢰인들에게서 땡큐라는 말을 들어보질" 못했다, 하길래 내심 비분강개했다. 에지간히 긁어가야지... .

한동네에 변호사가 하나만 있으면 파리를 날려도 둘이 있으면 밥 먹고 산다, 하고. 미국의 변호사는 천국과 지옥도 바꿀 것이라는 비아냥과 한탄이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존 그리샴이 처음은 아니겠지만, 그와 함께 미국의 법정 스릴러 작품들이 연타석 홈런에다 끝내기 안타, 무사 만루 장외 홈런급의 히트를 치던 시절도 있었다. 그 덕에 미국 법체계와 그 종사자들 그중에서도 변호사와 검사가 하는 일이 많이 알려졌다.

동서고금 법정의 풍경이란 상이점과 공통점이 있겠지만 우리네와 다른 것 하나가 배심원 제도를 들 수 있겠다.
12명의 배심원 선정을 위해 무작위로 선택된 삼배수의 시민들이 불려 나오고 최소한의 신상명세가 제공된다. 재판을 방청하고 결과를 판정하는 배심원의 성향을 분석하고 가려내는 작업이다. 재판의 결과를 매듭짓는 분들이기에 원고 피고 불문하고 가용한 모든 지식과 정보, 고도의 판단과 트릭이 난무한다. 형편이 되는대로, 안되면 쥐어짜서라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자신들에게 온정적일만한 배심원을 뽑는 열기가 후끈하다. 재판이 이루지어는 법정이 밥상이라면 이들은 밥상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되겠다. 온갖 말잔치와 엄청난 금액이 소요되는 그 과정의 끝, 범죄유무를 가리는 것이 그들의 다.

인간의 보편성과 집단지성의 신뢰 또는 법원의, 특히 판사 한 사람에게 결정을 맡겨서는 안 된다 하는 합의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영화 '12명의 성난 남자들'은 그 배심원들의 이야기이다. 법정에서 공방이 끝나고 이제는  판결을 위한, 안전과 비밀이 보장된 회의실에서 그들만의 입씨름을 한다.

그날의 피의자는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심증을 받고 있는 18세 소년(청년?)이다. 법정의 공기도 그렇지만 배심원실에서도 압도적으로 피의자가 범인이라는 심증을 넘어 범인으로 확정된 분위기였다. 12명의 배심원들이 맨 처음 투표에서는 11명이 유죄로, 단 1명만이 무죄라는 결과였다. 그 단 한 명이, 할리우드의 전설인 배우 헨리 폰다이다. 딸 제인 폰다 여사가 회상하는 그는 대단히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였다고 하는데, 이 영화 속의 배역에서는 지극한 냉철함으로 증인들의 증언의 모순점과 부족한 합리성을 차근차근 설파해 나간다,

요즘 영화를 보면 인종과 남녀가 다양하지만 그때만 해도 죄다 양복차림의 남자 백인이었다. 나이도 직업도 다 제각각이었지만 각각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서 왜곡되거나 단정적인, 증거와 증인들이 보여준 모순에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더라는 공통점이 하나였다.  

실제 재판의 뒷얘기로 배심원의 결정을 기다리는 시간들도 곧잘 보도되고 하는데 이는 만장일치제 덕분이다. 재판이 휴정인 채 때로는 며칠이 걸리기도 하는데, 영화 속의 신사들도 만장일치를 도출하니라고 온갖 말싸움이 오간다. 지리한 갑론을박에다 거수기로 투표를 했다가, 무기명으로 했다가, 또 거수기로 했다가... 그 과정에서 개개인의 치부랄까 숨기고 싶은 개인사랄까 하는 것도 나온다. 분위기가 가열되면 몸싸움도 하고....


결국에 피의자는 무죄 판정을 받는다. 무고(하다고 판정을 받은)한 젊은이가 존속살해범으로 지목되어서 극형에 준하는 형별을 피하게 된 그 결과가 고맙도록 다행이었다. 그럼에도 이 피의자가 유색이었다거나 외국인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와 같은 법정에서 단 한 명의 의문을 가진 배심원이 없었더라면, 그와 같은 세상의 법정이 또한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 끝에 미치는 것은 요즘 우리나라의 재판정에서 일어나는 형평에 맞지 않은 판결이다. 고무줄 판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판사 한 사람 또는 배석판사 포함 세 사람의 판결의 문제이다. 결국은 끝없는 소송전으로 치달아서 판사들은 과로사를 한다 하고, 피의자들은 끝까지 억울한 이런 재판의 도돌이표 악순환을 끝낼 묘수가 없지는 않을 텐데....


혹시라도 미국처럼, 요새 대통령이 미국식을 좋아한다 하니까 말인데, 배심원제도도 왜 문제가 없을까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검사와 판사들도 선출제로 한다면 또 좀 다르려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상한 미국 바라기말고 쓸만한 제도 하나라도 바꿔간다면 ... . 난제는 법을 쥐고 있는 집단들이 죽기를 각오할 것이고, 판사님들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겠다 해도 안통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랭기오라 빵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