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기 얘기가 나왔다.
삼인 삼색, 문제는 내가 꽂혀있던 700불 짜리 스틱 청소기였다. 해결책이란 것이 맥빠졌다. 연말에는 쎄일할테니까 그때 사라,와 계를 들자고 까지 나왔다. 하, 나에 대해 이렇게 모르다니.
청소기만을 위한 현금 700불은 없다. 혹 있다 하더라도 제 값을 다주고 산다고? 네버 에버, 그건 아니다. 나는 새것 같은 중고를 사야 행복한 사람이고, 중고 같은 중고라면 믿을 수 없는 값이라야 신이 나는 사람이다.
우리 엄마 세대는 빗자루와 쓰레받기 였지만, 카펫트가 덮고 있는 실내 바닥에는 청소기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맘에 들지도 않고 성능도 시원찮은 청소기는 인생이 쪼까 더 불행하게 만들고도 남는다.
어깨와 손목의 통증은 말할 것도 없고.
반짝거리는 매장에서 손님 대접 받으면서, 내 마음에 드는 또는 내 된장끼에 부합하는 청소기,는 좋긴하겠지만 형편과 사정의 문제에 더해서 재미가 없다.
이민 초기에는 청소기 성능을 얘기할만큼 한가하질 못했다. 3년이 지나서 남편이 왔는데 낡은 청소기를 말끔히 분해 소제하는 걸로 새 청소기 사자는 말을 대신했다
그즈음이었다. 귀국 세일에서 첫눈에 들어오는 청소기가 있었다. 때깔이며 색깔, 드자인이며 묵직해 보이는 것이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소리부터 달랐다. 자동차 엔진 음으로 치자면, 매니아들이 미친다는 마세라티급 이랄까. 당시에 백 불이면 거금이었음에도 그 정도면 착한 가격일 거라는 감이 왔기에 두말 안했다. 흥정 좋아하고 에누리 없으면 거래를 안 하는 나로서는 통 큰 지출이었다.
남편이 분해소제를 했더니 외양이 근사했다. 그 녀석이 지나간 자리에는 카펫의 색깔과 실내 공기가 달라진 듯 했다. 야호!
이리하여 그 D브랜드 청소기의 사랑과 숭배, 흠모가 시작되었다. 이후 16년 동안 비슷한 경로로 여럿을 사고, 팔고, 바꾸었고, 눈높이의 업그레이드도 쉬지 않았다.
로봇 청소기라는 것도 써봤다. 바닥에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공간이라면 나쁘지 않겠지만 그런 공간을 청소할 이유도 없고 모서리는 언터처블이어서 나 홀로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나만의 생각이 아닌가보다. 요즘 그 광고가 당최 없는 것을 보면. 집안 바닥은 가구와 생활 집기의 장벽이 있는 곳인데, 청소기도 사람 손이 갈 때에야 그나마 제대로 된다는 걸 해본 사람은 다 안다.
그럼에도 청소기라는 물건은 부피와 크기, 길다란 전선줄의 문제가 있다. 즉각즉각 바로바로가 어렵다. 이래서 손에 들고 하는 충전식 청소기가 있지만 그 녀석은 용량과 힘에서 딸린다. 사 놓고 쓰지 않는 집이 태반이라. 그런 내 눈에 또 하나 들어온 브랜드가 있는데 요즘 말로 스틱이라고 부르는 충전식 청소기였다.
이 녀석은 다른 브랜드 E인데 경험상 가정용으로는 앞의 내 청소기와 선두를 다투는 브랜드이다. D가 비료적 최근에 떳고 E는 오랜 역사가 있다. 이것도 중고로 몇 번 사기도 하고 주워오기도 했는데 경험상 남편이 사지도 주워오지도 말라는 품목이 되었다.
그럼에도 E는 경험상 최애 브랜드인데 올해 초, 개라지 세일에서 버리는 걸 주워서 들고 왔다. 왜 쓰레기를 갖고 오냐고 남편은 지청구를 했지만 이럴때는 모르쇠 모드 . 몇 시간을 충전했더니 파란 불이 와서 켰더니 일단 소리가 좋았다. 예전의 앵앵거리는 모기음이 아니었다. 마세라티급은 아니었지만 포니급 정도였다. 와... 함성을 지르고 있는데 애개... 40초 만에 꺼졌다. 주워온 걸 갖고 뭘 바라노 하면서도 실망과 함께 선망이 무럭무럭 자랐다. 포니급의 모터음을 갖고도 머리카락과 먼지 정도는 싹 치워주는 그 스틱 청소기의 매력이 강렬했다.
그 녀석을 갖고 화장실과 현관 입구는 잘 사용했다. 맘속으로는 2분만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이루어질리가 없는 희망을 품어가면서... .
각설하고, 충전식의 편리함에 훅 갔다. 더 열심히 뒤적거리는 수밖에. 내 기준에 맞는 녀석을 찾다 보니, 오호라... 있는 것은 투지이고 없는 것은 그것이니 잃을 것이 없음이 내편이라. 현실과 희망 사이에서 하늘의 별을 따기보다 하늘에 별을 달기가 더 어렵고나. 쩝...
심봤다! 드디어,
개라지 세일은 흙 속에서 있을법한 뭔가를 찾는 일이다. 그 날도 기웃거리고 있으려니 한쪽 구석에서 거래가 시작된 보물이 눈에 들어왔다. 아차, 심을 보긴 했는데 한발 늦었다. 표정 관리 하면서 다른 걸 살피는 척하고 있는데 뭔가 조건이 안 맞았던지 거래불발. 이때다! 하고 살피는 시늉을 하고 있자니까 70불이라고 했다. 약간의 모험이 필요한 가격이었고 남편을 설득할 일이 난감했다. 충전식은 이전의 경험까지 꺼내서 반대할 것이고, 나도 좀 불안해서 물러섰다.
그래도 그렇게 떠나려니 누구 말마따나 '내 애를 놔두고 가는 것' 같았다. 돌아서서 이번에는 다른 사람과 얘기를 시작했다. 딱봐도 메인 헤드 노즐이 지저분했는데, 파는 쪽에서도 자신이 없었든지 30불을 불렀다. 그 값이라면 Why not? 빛의 속도로 지갑을 꺼냈다.
집에 와서, 정신을 좀 가다듬고 살펴보니까 3단계 성능에 충전량과 사용 가능 시간이 표시되는, 말 그대로 신가다였다. 밤새 충전했더니 사용 가능 41분 13초, 이거야말로 심봤다,였다.
이 모델 신상은 1100불 이라우, 3년 쓴 중고도 500불이고.
2, 3년까지 썼으면 사면 안 되지. 충전기가 생명인데.
요것이 사양 11인데 요새는 17까지 나왔대, 1700불이라네.
그렇게 비싸?
그렇다니깐요.
이제는 충전기 하나만 새로 사면 되겠네.
눈에 보이는 자잘한 지저분함을 참고 살았던 세월에 복수하는 기분을 아시는가. 한번 충전하면 대여섯번 정도, 실내바닥을 가볍게 정리할 수 있다.
머리카락들아 물럿거라, 먼지와 티끌들은 썩 물럿거라. 스틱 청소기가 나가신다아... .
거실 한귀퉁이, 커튼 뒤쪽에 세워 놓은, 믿을 수 없는 가격으로 우리 집에 데려온 귀염둥이 덕에 허락된 작은 즐거움이었다. 이만하면 형편이 되는대로 업그레이드를 멈추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기다려라, 내가 나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