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작가의 책을 들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잘 아는 작가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들고 글을 읽으려면 필요한 것이 많지 않은가. 한 권의 책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서문과 작가의 변이 있다. 독자에게 보내는 구애 편지(?)라고 불러도 되겠다.
그 속에는 저자의 공력이랄까 실력이랄까 하는 것이 있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그림자도 있기에 그 글에서 통과되면 낭비도 후회도 없더라, 이다.
오랜만에 마음을 끄는 서문이 있어서 그대로 옮겼다. 시대와 환경에 불화한 아웃사이더답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롄커
한국어판 서문
사랑 ' 존엄' 문학 - 한국 독자들께 보내는 편지
존경하는 한국 독자 여러분,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한국에서 출판된다는 것은 저로서는 무척 반갑고 위안이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위안 속에서도 저는 담담한 서글픔과 어쩔 수 없는 막막함을 느낍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아주 작은 분량의 책으로, 한자 분량으로 따지면 10만 자도 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면 10만 자도 채 안 되는 이 책이 인간의 인류사회 전체의 발전에서 가장 근본적인 두 요소인 '사랑과 존엄'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존엄을 필요로 하고 존엄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은 기꺼이 희생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한국, 아시아와 유럽, 라틴아메리카 등 지구상의 모든 나라와 지역에서 일어났던 전쟁과 혁명, 폭력과 권력을 위한 투쟁, 그것들에 반대하기 위한 투쟁,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격렬하고 조용한 투쟁과 뼈에 사무치도록 처절하기도 하고 닭털처럼 사소하기도 한 싸움, 행동으로 나타나는 투쟁과 마음속으로 은밀하게 진행되는 암투, 그리고 감정과 영혼에 상처를 입히는 모든 가해행위 가운데 인간의 사랑이나 존엄과 무관한 것이 있을까요? 이 모든 유형의 싸움과 투쟁 가운데 사랑과 존엄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 아닌 게 있을까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중국의 특수한 시대와 배경에서 일어났던 사랑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는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영혼의 감옥이었지만 이런 감옥이 단지 중국인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렇겠지만 인간이 존재하는 한 권력은 존재할 수밖에 없고, 정치와 국가가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혼의 감옥은 필연적으로 견고한 담장을 갖추게 됩니다. 이 보이지 않는 감옥의 담장 안이 바로 인간 정신과 문화의 또 다른 아우슈비츠가 되는 것이지요.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이 연역해 내는 진실하면서도 황당한 이야기는 사실 갇힌 사랑이 하늘을 향해 외치는 절규이자 십자가에 매달린 인간의 존엄이 모든 사람을 향해 호소하는 구원일 것입니다. 소설에 담긴 모든 망설임과 타협과 배반도 자신이 처한 사회 환경에 대한 우리 인간들의 어쩔 수 없는 흐느낌이자 반성일 것입니다.
소설은 결코 칼도 아니고 총이나 수류탄도 아닙니다. 오히려 노래이거나 인간 정신의 교향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술에는 적이 없는 셈이지요. 노래나 교향곡에 적이 없는 것은, 햇볕이 한여름 따가운 햇살이 되고 땅을 마르게 하며 인간을 혹독한 기근에 빠지게 하지만 인간의 적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문학은 영원히 우리의 삶 속 햇빛이자 달빛이고 가뭄에 내리는 단비이자 장마 끝에 비치는 햇살입니다. 우리는 문학의 존재를 위해 노래합니다. 문학은 우리에게 영원한 삶이자 노래입니다. 문학의 유일한 적은 시간입니다. 시간은 문학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며 장수하게도 하고 단명하게도 합니다. 따라서 문학의 호흡을 멈추게 하려는 모든 행위는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궤도를 바꾸고 물 항아리나 우물 안에 달빛을 가둬두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저는 문학을 위해 노래합니다. 생명을 위해 노래하고 사랑과 존엄을 위해 노래합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어느 날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작품이나 대대로 전승되는 명작을 쓰고 말겠다는 사치스러운 희망을 갖지 않습니다. 문학으로 인해 위대해지거나 이름을 빛내야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하지만 문학이 제 속마음과 영혼을 보다 구체적이고 깊이 있게 표현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최대한 사실적으로, 가급적 더 아름답게 제 영혼의 고통과 환희를 드러내주기를 바랍니다. 텍스트는 그 자체가 일종의 아름다움입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저의 창작물 가운데 그렇게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운명 때문에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큰 유감이면서도 동시에 큰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세계 각국의 독자들에게 쓴 글의 끝에 저는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모든 사람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소설은 단지 인류의 운명과 역사에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은 인간의 존엄에 대해 영원한 존중과 사랑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한 통의 편지다."
이것이 존경하는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제 폐부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음의 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