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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설공주 May 01. 2024

Pack Horse Hut

도깨비에 홀리지 않고서야...

며칠 전 하루는 내 생애 제일 긴 하루였다. 오버가 좀 있지만 사실이다.

이른 아침..., 아니 새벽... , 그것도 아니면 밤? 2시 반에 잠이 깨었다.

 '아잉, 이러면 안 되는데. 더 자야 되는데, 오늘 산에 가는데... 어짜노' 어찌하든 눈을 좀 더 붙이겠다고 공을 들였지만 별무소득. 3시 10분에는 떨치고 일어났다, 내 손을 기다리는 곳 부엌에서 정리도 하고 도시락에다 반찬 준비 등등으로 7시가 되었다.

잠시라도 눈 좀 붙인다 하고 감았다가 떴더니 30분, 금쪽같은 깔딱 잠을 보탰다.


9시 25분에 집을 나서서 저녁 8시 반에 집에 왔다.  11시간을 바깥에서 보냈다. 자동차 이동거리가 왕복 2시간, 산에서 브런치(?) 하고 라면 끓여 먹고 앉았느라고 2시간 했으니까 꼬박 7시간을 넘게 걸었다,



목적지는 Pack Horse Hut, 우습게도 그 오두막을 못 찾아서 헛걸음을 했다. 저쪽 두 봉우리 사이에 가느다란 줄과 같은 빨강 지붕은 보이지만 이리가도 막히고 저리가도 길이 끊겼다.

10년 전쯤에 갔던 곳이라서 다들 천하태평으로 걸었는데 점심때를 살풋 넘길 정도로까지 헤매다가 중간에서 라면을 끓였다. 먹고 보니 배도 부르고 내려갈 길도 멀다 싶어서 꼭대기의 가느다란 지붕선을 본 걸로 만족하고 하산하기로 했다.


거참, 올라올 때는 한길이었는데 내려갈려니 무신 길이 이리도 세 갈래 네 갈래인지. 길을 죄다 왔다 갔다 했지만, 마지막 남은 길 즉 각도로 봐서는 전혀 아닐 것 같은 길이 내려가는 길이었다.

이렇게 헤매다가 나무를 싣고 올라가던 트럭을 만났다. 이 산길에서 만난 귀인이 어찌나  반갑던지. 이 양반 완존 부산사람처럼 말했다.

사오백 미터를 내려가서 우회전하면 지름길이 나온다고. 그 옆에 큰길이 있지만 그리로 가면 너무 멀 것이라고. 산에서, 그 좁은 길을 트럭에 나무까지 실은 사람이라면 이 동네 길이란 길을 다 트고 살았을 테니 이제는 그대로만 하자고 간만에 의견일치를 봤다.

그즈음에는 발도 아프고 물도 떨어져 가고 목적지도 못 찾고 내려가는 길이 지겨워지고 있었지만 멀지 않았다는 마음에 걸음이 잠깐 가벼워졌다.  

 

그 산에 난 길은 참 이상했다, 길의 초입에는 자동차가 다닌 흔적에다 사람과 개의 발자국까지 있었기에 속아 넘어가기 딱 좋았다. 한참을 가다 보면 라운드 어바웃처럼 동그랗게 자동차를 돌리기 좋은 곳이고 길을 끝. 죄다 이렇게 번번이 허탕이었다

그 길들이 하 야속해서 온갖 구시렁이 줄을 이었다.  저번에는 어떻게 한 길로 갔다가 한 길로 왔을까, 도대체 올라왔던 길은 어데 갔니, 요새 길을 새로 많이 만들었다, 어쩌라고 사인보드가 하나 없냐, 도대체 이런 길을 와 만들어갖고.... 그중에도 '도깨비한테 홀렸나?' 하는 말에는 폭소가 터졌다.


그 아저씨가 왜 부산 사람 같았냐면, 그 오른쪽 길이란 것도, 한참을 내려와 만난 세 갈래 길에서 두 길을 허탕을 쳤다. 그러고도 한참을 가서야 두 갈랫길을 만났다. 문제의 오른쪽 길은 완만하게 경사가 져서 걷기도 좋았고, 이제야말로 진짜 길을 찾았다는 마음에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내려갔는데 또 외통수. 힘이 쭉 빠졌다. 시간은 4시 55분, 짧은 가을해가 자취를 감추려 하고 있는데 이를 어쩔. 아까 보이던 갈림길로 되돌아가서 그 큰길로 가야 한다고? 노 초이스, 되돌아섰다. 내려올 때 완만한 경사길이, 올라갈려니 숨이 턱에 찼다. 흘린 땀이 잠바를 벗어나서 백팩의 어깨 부분이 다 젖었다.  


그 사이 해가 졌다. 달빛과 휴대폰 빛을 갖고 정신없이 걷다 보니 아까의 갈림길이 나타났다. 발목이 휘욱신거리고, 물도 간당간당.

왼쪽이 서쪽이었든지 넘어간 태양의 잔광이 만든 빨갛게 예쁜 빛그림자가 두 언덕 사이에 걸렸고, 달빛이 밝아지고 별이 총총했다. 오른쪽에서는 리틀턴 항구의 불빛과 그 주변의 야경이 언뜻언뜻 띄었다. 평화시 맨 정신이라면 예쁘다고 한참을  쳐다봤을 텐데...

왼쪽 멀리 있던 안테나가 가까워지면서 이제는 다 와 가나 싶은데 그것도 사라지고, 그러다가 눈앞에 도로와 자동차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젠 정말 멀지 않았구나 하는데.

 '아, 우리 차다, 그리운 우리 차가 저기 있네. 우리가 왔다!' 함성이 터졌다. 7시였다.


계획으로는 저녁을 묵고 헤어진다, 였는데 점심에 배가 불러서 저녁은 안 묵어도 되겠다, 로 바뀌었는데 길이 자꾸 늘어나고 시간이 늦어지니까, 이러다가  저녁묵고 헤어져야겠다, 로 왔다 갔다. 끝으로는  커피라도 하고 흩어지자 했지만, 이제 한번 앉으면 못 일어날 것'은 자명한 일. 차에서 내려 배낭을 메려는데 몸이 말을 안 들었다. 뒤에서 누가 당기는지 앞에서 미는지.... 목이 마르다, 물만 한잔 하자는 말도 있었지만 초가을 늦은 밤이 어찌나 추운지, 각자 차로 돌아가서 냅다 집으로 달렸다. 집에 와서 다음날까지는 끝없이 물이 고팠다.


부족했던 잠과 쌩고생을 생각하면 바로 뻗을 것 같았는데 10시 반이 넘도록 정신이 말똥말똥. 이런 걸 아드레날린이 치솟았다고 부르는겐지. 겨우 잠이 들었어도 몇 번은 깼던 것 같다.

 

그 길을 헤매면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러다 깜깜해지면 어떡허나, 헬리콥터를 부르면  4천 불이라는데 서로 나누면 되지 머. 이 골짜기에 동물은 없겠지. 노숙을 하면 추울 건데, 물도 없고....


이런 얘기를 했더니 키위들이 그런다. 다시 가고 싶겠다, 고. 사실이다. 다음날은 엉덩이부터 발바닥까지  결리고 아프고. 첫걸음 떼기가 어려웠지만 그것도 사흘이었고, 다시 그리워지는 건 웬 심정인지.

이민 와서 21년, 처음으로 달빛을 믿고 별빛을 보면서 쫄대로 쫄며 걸었던 그 산길이 벌써 그립다. 그나저나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탈이 나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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