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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70 살

ㅎㅈㄱ의 전성시대!

by 백설공주

남편이 70살이 되었다.
1950년대 중반에 출생해서 인생 70년을 꽉꽉 채웠다. 결혼하고 40년 가까이 생일이 있었지만 그간은 별 일 안했다. 대충 뭉개고 지냈는데 일부러 그랬던 것은 아니다.

우리 엄마는 으레 내 생일이 하루 이틀 지나고 나서야 "아이고 밀아, 니 생일이 지나 가뿟다" 그랬다. 그 양반 탓할 형편이 아니다. 평소에도 "저거 아배하고 우리 광조(큰아들) 생일만 안다"고 했으니 당신 생일도 잊어버리고 사셨을 거다. 일본강점기와 6.25를 겪고, 여섯 소생을 입히고 먹이고 공부시키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뭘 더 바라랴.

결혼해서 놀랐던 일 중의 하나도 생일과 연관이 있다. 어머니는 새해 달력이 들어오는 대로 날짜 밑에 가족들 생일을 적으셨다. 보통 내 생일이 첫 달에 적혔는데 음력 섣달이 양력으로는 정월 즉 1월이었다.
결혼할 즈음 시댁은 가세가 기울대로 다 기운 월남가족이었기에 며느리 생일이라고 해서 별건 없었지만 기억이라도 꼭 하셨다.
시부모님은 그 시대로서는 지식인 언저리쯤에 계셨기에 세 자녀의 생일을 양력으로 쓰셨다. 그걸 보면 우리 엄마 참 용했다. 해마다 바뀌던 음력 날짜를 하나도 빠짐없이 아홉 식구들을 어찌 다 기억했는지 의문이다. 꼭 며칠이 지나서야....

그 엄마의 딸인 내가 다를 것은 만무했다. 평생 내 생일 포함 누구의 생일에도 별무관심이었다.
그럼에도 언제부턴가 바뀌었다. 젊지 않은 나이가 되고, 덜 바빠진 데다 뭣보다 다른 사람들 덕분이라면 덕분이다. 남들은 다(?) 가진, 축하하고 축하받는, 그런 소소한 즐거움과 추억이 없음에 아쉬움과 후회가 들곤 했다. 생일이라고 떠들썩하고 요란한 행사를 하는 것에 가졌던 경멸 비슷한 묘한 감정도 부러움 또는 질투였을거다.

지난 일이야 어쩔 수가 없기에 지금이라도 해보자고 맘을 먹었어도 뭐 본 게 있어야지, 편한 대로 흐지부지 해지곤 했다.
식구들? 남편도 이런 엄마의 아들들도 별 수가 없음은 불문가지. 뭐라도 할래도 협조가 전무해서 혼자서 맘만 상하고는 했다. 사실은 내가 식구들에게 미안해야 할 문제이다. 이거이 다 내 죄여!

작년부터 준비를 했다. 호주 사는 애들에게 1년 전부터 광고를 하고 작은애에게도 자주 들먹였다.
선물을 뭘로 할까, 생각은 많았지만 그거야 디테일이고, 어찌 되었건 '뭐든 한다'로 징하게 맘을 묵었다. 미적거리다가 내일로, 다음으로 미루던 습관은 이제 종을 치자고.

애들에게는 일찌감치 뱅기표 금액 정도의 돈을 보냈다. 사돈댁에도 연락드리고, 애들에게는 라디오 모델 포함해서 선물 목록을 일러줬다. 작은애가 나갔다 오면서 금박 딱지 술을 갖고 왔고 나는 나대로 선글라스 등등. 이 대목에서 뭐든 써프라이즈 한 건 하자고 며느리에게 신신당부도 잊지 않았는데 기중 하나로 애들이 오는 시간을 비밀로 했다.
도착해서 첫날은 처갓집에서 잤는데, 작은애가 우리끼리 점심 먹자고 해서 나갔다가 식당에서 만났다. 남편에게서 잠깐은 헷갈린다는 표정이 나왔다.

때마침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는데 전후로 보름정도 축하연이 계속한다지 않는가. 와이 낫? 생일 보름 전부터 껀껀이 축하 타령을 했다. 커피 한잔을 하면서도.

애들이 예약했던 식당에서 모였는데, 며느리가 띄운 풍선과 이색적인 음식들에, 사돈댁 식구들하고... 참 재미있었다.

선물 타임에는 상자마다 남편이 완존 깜놀했다. 일 년간 고민했던 보람이 있었다.
애들이 뭔 상자의 입구를 땡기라 해서 땡겼더니 줄줄이 지폐가 쏟아졌다. 지 아빠가 돈 좋아하는 걸 알기는 알았다. 안사돈의 '리얼 머니'라는 말도 재미있었지만 어젯밤에 온 식구가 지폐 맞춰 넣었다는 말에는 폭소가 터졌다.

식당에 꽉 찬 키위들 속에서 유일한 아시안 가족이 왁자지껄하니 맘껏 웃고 떠들었다. 70살이 아무나 되나?
모임을 마치려는데 며느라가 몇 번이나 그런다.
"어머니가 제일 애쓰셨다"고, 내가 뭘 했겠나만 애들의 협조가 그저 고맙고 기꺼웠다.
주인공인 남편 포함 모두가 다 그랬지만 애들이 찍은 영상마다 내가 제일 많이 웃고 있었다. 두어 친구에게 보여주고서 며느리 칭찬도 많이 들었다.

남편은 6.25 직후, 함경남도 흥남에서 월남하신 부모님 슬하 누나와 남동생에게 끼인 첫째 아들이자 둘째로 태어났다. 우여와 곡절이 만나서 천신만고와 간난신고 끝에 도달한 그의 70세, 요즘 나이 70은 나이축에도 안든다 하지만 남편네 가족력으로는 장한 나이가 아니던가.

듣자니까 요즘은 그 나이를 인생 전성기라고 한다던데 진정 남편에게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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