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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산 Jun 05. 2024

민원의 뫼비우스 띠

민원은 돌고 돌아 어디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함께 지낸 엉뚱한 친구가 한 명 있다. 가끔씩 재미난 이야기도 하고 생각하게 끔 만드는 이야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비 오는 날  도로를 달릴 때 튀어나오는 개구리 안전 때문에 운전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다. 왜 그럴까를 친구는 고민해 보았다고 한다. 소심한 아이형인지라 역시 비 오는 날 시골 농로 길을 운전할 때 불쑥불쑥 튀어나온 개구리들 때문에 가끔 멈추기도 한다. 지나가라고 그러면 또 안 지나가는 개구리들 때문에 한참을 기다리곤 했다. 친구가 찾은 고민의 해답은 비 오는 날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추면 그곳을 향해 벌레들이 달려든다. 그리고 그 벌레들을 잡아먹으러 개구리들이 도로 위로 뛰어나온다는 것이다. 불빛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들이나 그것을 먹기 위한 개구리들 모두 생존을 위한 사투라고.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한 밤 헤드라이트를 밝힌 인간이 원인 제공자라고. 과학시간 가끔 생태계 설명할 때 예시로 들곤 했는데 이렇게 모든 현상이 연결되곤 한다. 약간 개똥철학 엉뚱 과학 설명처럼 보이지만 그럴싸한 설명이었다.

  

  3월 말 경 이곳은 소각장 설치 선정으로 시끄러웠다. 어디든 다 길목이고 중심지겠지만 이곳에 들어선다는 이유였다. 수많은 현수막 중에 "금덩이를 줘도 안된다."라는 글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설치 예정된 장소도 금이 들어간 곳이다. 고속도로 아이씨 출입구 들어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왜 생기는 걸까. 주위 지인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이제 각 지자체 쓰레기들은 자기 지역에서 해결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밖으로 유출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달가량 시위로 화려한 현수막이 펼쳐진 광경은 끝났다. 결국 주민 의견을 받아들여 다시 선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오지랖이 문제였다. 학교에 있으면서 아이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학교 부근에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지역 이기주의라는 오해를 받을까 가만히 있을까 생각하다. 그래 아는 이상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라는 생각에 군청에 연락을 했다. 전화로 학교 학생들의 보건과 위생 안전을 이야기했다. 가까이에 학교가 있는데 어떻게 소각장을 만들 수 있냐라는 질문을 먼저 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잠시 후 전화가 왔다. 그쪽도 언성을 높이면서 갑자기 학교에서까지 왜 그러냐. 소각장과 학교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아냐.  사람들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걱정이냐라는 말투로 자기 이야기만 하다가 끊어버렸다. 학생들을 학교에서 걱정하지 않으면 누가 걱정을 해야 할까.

 

 그렇게 끝난 전화 상황으로 특정실에서 더 큰 소리를 낼 수도 없고, 일방적인 하소연을 듣다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화장실 세면대에 가서 얼른 씻고 싶었다. 아니 큰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렇게 한 달이 넘었지만 앙금이 남아 있다. 쉽게 잊히지 않는다. 특히 전화 민원은 예민하게 대응을 해야 한다. 얼굴을 보지 않고 감정 변화를 알 수 없이 음성으로만 정보를 주고받다 보니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없어 일방적인 감정 전달이 되곤 한다. 그래서 민원이 격해질 것 같으면 대면으로 이야기하라고 한다.  


 이 사건 이후 어떻게 할까. 계속 고민 중이다. 이렇게 내부로 지향하는 아이형인 작자는 글로 풀어보려 하지만 참 오래간다. 화가 날수록 차분해지자. 성격이 그런데 어떻게 차분해지냐. 흥분하면 논리적이지 않다. 당연하다. 흥분했을 때 논리적일 수 있을까.  준비를 충분히 하고 말을 하자. 이거는 조금 이상하구나. 대화란 게 즉시성인데. 즉각적인 반응인데 미리 준비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또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체하는 법에 나왔듯. 결과론이지만. 이미 들었던 악담이나 욕설 등을 쓰레기로 치부하고 보관하지 말라는 것이다. 악취 나는 그 쓰레기를 계속 담고 있어 봐야 힘들다는 거다. 이것도 조금 모순이다. 쓰레기를 투척하지 못하게 사전에 막아야 하지 않을까. 이러쿵저러쿵 다짐을 해보지만 앙금은 오래간다.


  과학시간 물질이 물과 같은 용매에 녹는 현상인 용액을 배울 때 아무리 녹이는 물질인 용매가 많아도 용질인 녹는 물질의 성격에 따라 녹지 않고, 뿌옇게 흐려졌다가 바닥에 가루가 내려앉아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녹이는 물질 용매를 다른 것으로 바꾸던지 이런 현상을 만든 것을 바꿔야겠지. 그리고 민원도 앞에 이야기한 개구리 일화처럼 돌고 돌아서 온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누군가에게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민원을 들었기에 그 앙금이 남아서 역공을 하는지도 모른다. 민원인도 누군가에게 민원을 받아서 그 스트레스로 누군가에게 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되돌아본다. 전체적인 숲보다 자신에 눈에서 보이는 골목길만 한 안목으로 접근했는지 모른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고. 이것도 서울중심 속담이구나. 읍내에서 뺨 맞고 섬진강 가서 눈 흘긴다고. 돌고 도는 민원이다.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 뫼비우스처럼. 나부터 돌아보고 아니다 싶은 악성 민원은 단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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