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정세랑/문학동네/2020
마을교육공동체를 지향하는 이곳, 사람을 잇고 미래를 여는 비전으로 세운 중간지원조직(?) 플랫폼 역할을 해나가는 곳, 아니 그런 역할을 기대하는 곳이다 당시 2022년도 파견근무하고 있는 곳 타 팀의 독서동아리 선정 책이었다. 오지랖이 넓게도 거기에 속해있지는 않지만 이 책에 관심이 갔다. 왜 이 책을 골랐을까. 이곳에 비전과 방향에 어떤 영향 또는 울림을 줄 것 같았다. 책을 읽고 어떤 논제로 이야기를 나눌까. 이 책을 통해 동아리 회원들은 개인의 삶의 어떤 이면을 발견할 것이며, 현재를 살아가는 이 사회와 세계 어떤 모습과 연관을 지어 토론할 수 있을까?
<보건교사 안은영>, 이번에 <시선으로부터,>까지 누군가의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한다. 다음에는 어떤 이름이 등장할지 궁금해진다. '시선'이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뜻도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심시선'으로 한국근현대 여성 예술가의 삶을 산 할머니 이름으로 등장한다. 작가의 페르소나처럼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쓰는 것 같다. 제사를 지내야 하는 그분을 모델로 삼아 글을 썼다고 한다. 10년 만에 그분을 위한 제사를 지내기 위해 다시 모인 가족들의 이야기다. 소설의 특징 중 하나인 허구성이 있지만 사실을 허구처럼 꾸몄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인생을 한 권의 소설처럼 기가 막히고 절실하고, 다이내믹하지 않은 인생, 사연 없는 인생은 없을 거다. 마치 각본 없는 드라마, 허구성이 없는 소설처럼 리얼리티 한 인생들이 많다. 이 책 역시 소설이라는 틀에 있지만 진짜 있을 법한 슬픈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바로 부모님 세대, 이 이전에 할아버지 할머니 조부모세대까지 생각나게 했다.
1960년부터 지금까지 60년 이상의 결혼생활을 하면서 힘든 고비가 왔을 때마다 너희들 때문에 살았다는 말씀을 종종 했던, 가부장적인 그것도 농촌에서 많은 노동과 희생을 강요받았던 어머니, 할머니 세대 분들의 삶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책띠 문구처럼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 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라는 말처럼 그들에 대한 존경을 표한 글이다. 그렇게 주인공은 일반인이라면 어쩌면 좌절할 것 같은 고통과 아픔을 겪으면서도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예술로 승화시키며 한 발짝 나아가는 당당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에이, 만든 김에 그냥 쓰지, 뭐' 정도로 넘겼을 것이다. 그 실패작이 천오백 년을 살아남아 박물관에 자리 잡은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테고 말이다. 훨씬 잘 만든 토기가 많았을 텐데 하필 그 토기가 발굴되고 보존되어서 유리함 안에 전시된 걸 4세기의 토기 장인이 알게 된다면 얼마나 황당해하고 민망해할까? 천오백 년짜리 유머였다." p. 97
어쩌면 우리가 배운 역사도 이렇듯 긴 역사의 유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당시 그걸 선택했기에 우리가 지금 그걸 배우고 있다고. 너무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합리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천오백 년짜리 유머일 수도 있는 일에 너무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도록.
"가능성이 조금 번쩍대다 마는지 오래 타는지 저가 알아서 확인하도록 두십시오." p.221
"워커홀릭들만이 관리자가 되는 것인지, 관리자가 되면 워커홀릭이 되고 마는 것인지 우윤은 궁금했다." p.243
"사랑은 돌멩이처럼 꼼짝 않고 그대로 있는 게 아니다. 빵처럼 매일 다시,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거래." p.304
현재를 살아가는 직장인들 아니 뭔가를 도전하고 취업하려는 이들, 사랑과 결혼을 하려는 독자들에게 던지는 말듯 같다. 나로부터 시작해서 생각하고, 타인들의 시선으로부터 쉼표를 갖고 있는 엠지세대들에게 와닿는 문장이다. 내 가능성은 내가 선택한다는 자존감이 느껴진다. 직장에 들어가 관리자들을 만날 때 워커홀릭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성실함이 관리자를 만든 것인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 것인가. 또 사랑을 돌멩이처럼 고정된 게 아니고 끊임없이 보살피고 새롭게 여겨야 하는 빵으로 표현하게 인상적이었다.
"기억하지 않고 나아가는 공동체는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p334
마지막 문장이 가장 와닿았다. 과거를 잊지 못하는 건 집착이나 고통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잊어야 덜 괴롭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으면 안 된다. 잊으라고 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진실과 멀어지게 왜곡하려 한다면 더욱 안 될 일이다. 개인의 흑역사도 잊지 않는다면 실패가 아니라 성장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건강한 공동체라면 타인의 아픔과 슬픔을 더욱 잊지 않아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처럼. 가족의 엄마들의 역사를 잊은 가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많은 이들이 어머니,할머니 삶을 기록해보면 좋겠다. 나 부터 인터뷰를 해봐야겠다. 과거의 어머님 삶에 대해 대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