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카잔차키스
권위적인 직장 분위기를 벗어나고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자는 의미에서 직책과 이름으로 소통하지 않고, 애칭이나 별칭으로 소통하는 곳에 파견근무를 했을 때다. 별칭을 알려달라고 했을 때 '한량'으로 사용하겠다 했다. 하지만 그곳 팀장이 극구 반대를 했다. 한량이라는 단어가 어감이 대외적으로 좋지 않았나 보다. 당시 해야 할 업무의 책임감과 상하위계가 엄했을까 경직된 그곳 분위기에서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 컸나 보다. 그래서 되려 어렸을 적 부모님들에게 많이 들었던 단어, 자유로움이 연상되는 한량을 떠올렸을지도.
좋아하는 색은 자연과 가까운 녹색이다. 아니 초록빛 자연의 색이다. 우리가 항상 밖을 나가면 볼 수 있는 풀색, 봄과 초가을까지의 나뭇잎 색깔이 좋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연 속에 들어온 것처럼, 그 녹색이 사람들의 시야에도 피곤함을 덜 해준다고 한다. 어찌 보면 답답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녹색이 사람도 자연 속 일부라는 것을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최근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게 되었다. 직장 내 독서토론 추천도서로, 연수 과제로 자주 등장한다는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시내 서점에 들어가서 무장적 잡은 책이다. 그리고 정독하게 되었다.
주인공이 갈탄 광산을 개발하려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에서 60세 정도 된 사내를 만난다. 역시 자연인답게 산투르라는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한다. 그렇게 함께 섬으로 들어가 광산을 개발하며 일어난 우여곡절의 시간, 그리스인 조르바의 젊은 생과 여성을 대하는 태도를 알아가는 시간을 통해 주인공이 느낀 점을 이야기는 일련의 과정이 그려져 있다.
책 표지에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므로.......”
라는 글귀가 있다. 이 글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생전에 마련해 둔 묘비명이라고 한다. 이렇듯 그는 사상이나 영혼,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야인 같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조르바를 스승으로 삼았나 보다.
그에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알렉시스 조르바는 실존인물이다. 그는 조르바와 함께 크레타 해안에서 탄광사업을 벌였고,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듯 벌목사업까지 실패로 끝나고 만다. 그 부분에서 크게 아쉬워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기간 그와의 추억을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소설로 쓴 것이다. 그는 조르바가 지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자유와 순수함, 열정과 뜨거움을 존경했고 구원의 오아시스처럼 여겼다. 그는 자서전에서 조르바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힌두교도들이 ‘구루(사부)’라고 부르고 수도승들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한 사람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을 것이다.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부터 빨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라고 했다. 책 속에서 나오듯 작가는 부처와 니체 그리고 조르바가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준 사람이라고 한다. 이들은 모두 인간의 굴레, 종교나 사상을 이야기하겠지. 거기에 갇히기보다 자유를 사랑하고, 신보다 사람 자체를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두목, 당신의 그 많은 책을 한 무더기 쌓아놓고 불이나 질러 버리슈. 그러면 혹시 알아요? 당신이 인간이 될지? 그래도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니까.....”
“비와 꽃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쩌면 우리를 부르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데....... 언제면 우리가 귀가 뚫려서 팔을 벌리고 모든 것을 안을 수 있을까요?”
책 속에 나온 말을 보면 그 어떤 학자나 철학자보다 순수하게 인간의 아름다움과 열정을 가진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에서 나왔기에 누구에게 물들었거나 영향을 받지 않는 색, 이것저것 섞이지 않은 색, 특히 자연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색 같다. 작장과 결혼이라는 제약과 책임, 의무감 등으로 지쳐 있는 삼사십 대 어른들에게 어쩌면 자유로움이 가장 필요할지 모른다. 그래서 더 절실하게, 많은 이들이 찾을지도. 대리만족으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열광할지도 모른다.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듯 나 역시 내 의지대로 자유롭게 생활하는 직장생활을 꿈꾼다. 아니 꿈만 꿀게 아니라 말을 하던 건의글을 쓰든 조금씩 바꿔보자. 아니 당장 퇴근 후에는 산투르 연주하듯 통기타를 치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개인 취미생활로 자유로움을 찾아보자. 아무것도 두렵지 않게.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을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게 진정한 자유인 한량이 되는 비법이다. 단 오늘만을 위해 탕진하며 사는 것이 아닌. 자책이나 뒤끝이 아닌 잊지 않아야할 과거에 대한 성찰과 미래에 대한 굴레,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오롯이 당당하고 자유로운 오늘을 살아가는 자유인이 되길 꿈꾸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