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원의 우정/노명숙/고래책빵
책 읽기 모임을 지난 7월 만들었다. 모임 이름은 ‘세상읽는 디딤돌‘이다. 우연히 지자체 청년지원사업 공고문을 보고 책 읽기 모임과 연결하면 좋을 것 같아 신청했다. 아직은 청년으로 봐주는 게 으쓱하다. 반백 중년으로 봐주지 않고. 지원사업 연령 기준에 턱걸이로 통과되었다. 유엔이 정한 기준처럼 18세에서 65세까지는 청년이라 해야 할까. 100세 시대를 맞아 어쩌면 청년은 늘어나겠지. 무슨 일에 대한 열정이 살아있고 책을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대접받기를 거부하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는 용기를 가진 이들은 다 청년으로 포함된다면 좋겠다. 아무튼 그렇게 청년지원사업으로 독서모임을 꾸리게 되었고, 목표는 군민들과 함께 책을 읽는 문화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AI시대 디지털 중독시대 상상력의 대안인 책읽는 문화를 키우는데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되고자 한다. 말만하는 하는 꼰대가 아닌 책읽고 말하는 어른이 되기 위해. 대량독서의 견인 장치이자 질 높은 독서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해야겠다. 아무튼 첫 책은 서로 부담되지 않도록 동화책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아이들과 작가와 만남을 염두에 두고 접근성이 쉬운 지역 내 동화작가로 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당선된 책이 노명숙 작가'만 원의 우정'이다.
노명숙 작가는 작가 소개글처럼 해발 200m 넘는 전남 곡성 통명산 중턱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쇠꼴베기와 나무를 하느라 산과 들판을 친구 삼으며 자연과 더불어 자랐다고 한다. 아이들이 '쇠꼴베기'를 알까 싶지만 우리 세대 집집마다 한 마리 정도 소를 키웠을 때 풀베기는 큰 일이었다. 유년시절 막내로 참여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가 베어 둔 풀을 거둬들이는 일을 주로 했던 것 같다. 베어둔 쇠꼴 개미들이 많아 거기에 물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점심 소밥 쇠죽을 한 양동이 씩 퍼 주었던 기억도 난다. 아침저녁으로 아버지께서 소 등짝을 우리네 빗 같은 도구로 연신 쓰려내려 주었던 모습도 떠오른다.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해서일까 아이들과 관련된 작품이 많다. 산과 들판을 친구 삼아서일까 생태 관련 동화 '아무르 장지 얍'이라는 생태동화도 있다. 위 작품 <만원의 우정>은 박경리 선생님으로 유명한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어떤 면에서 이 단편동화가 상을 받았는지 심사 기준이 궁금하다.
단편 동화인 <만원의 우정>은 반에서 일어날 수 있는 돈이 없어지는 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친구들 간의 우정을 그린 이야기다. 주인공 영훈이가 실수로 아닌 용돈이 필요한 절박한 상황에서 친한 친구 성민이의 만원을 가져가면서 벌어지는 주인공의 갈등상황과 다른 친구 슬기가 지켜보는 가운데 내적 갈등을 겪는 해결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갈등 해결의 밑바탕에는 친구를 믿어주는 신뢰가 크다. 현실 속에 보면 어른들은 뒤끝이 오래가고 실수를 인정하는 걸 잘못을 인정하는 거라 생각해 절대 말하지 않을 텐데 순수한 아이들은 금방 용서하고 자신의 잘못을 잘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 배경에는 작가의 말처럼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용기를 더 낼 수 있을 것이다. 믿어주지 않고 한 번의 잘못으로 그 아이의 인생을 죄인처럼 낙인을 찍어버린다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용기는 사라지고 그 아이는 회복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소도 비빌언덕이 필요하다고 사람도 자신을 믿어 줄 비빌 언덕 같은 어른이, 아니 사회환경이 필요할지 모른다. 몇년전 지역 마을할동가가 지역 청소년 아이들을 위해 급한 용돈을 빌려쓸수 있는 장학금을 마련하자는 웹카드를 보낸적이 있다. 중고등학생들이 급하게 용돈이 필요할 때 불건전한 방법으로 접근하는게 아닌 정당하게 마을 어른들에게 돈을 빌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또 생각난게 기본소득이다. 신자유주의 이후 각자도생의 삶과 양극화 시대, 상실감을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대학생 장학금이 성적이 아닌 아르바이트 투자순으로 바뀌면 어떨까하는 주장도 있었다. 학비를 위해 아르바이트 할 시간을 줄이기 위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성적순이 아닌 아르바이트 투자 순으로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떠올랐다.
현실은 동화처럼 슬기 같은 배려심 깊은 따뜻한 아이가 없을 수도 있다. 농촌에서 자랐지만 소가 언덕을 비비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아무튼 든든한 언덕처럼 주위에 그런 친구가 있다면 걱정 없을 것이다. 그 전에 어른이 있어야하고 마을아 그 비빌언덕 역할을 해야겠지. 이 이야기로 토론을 한다면 논제를 어떤 걸 삼으면 좋을까. 어른들 대상으로 한다면 아니 아이 어른 상관없이 찬반토론이 아닌 평화적인 토론주제로 어떤 게 좋을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의 물건이나 돈을 가져가고 다시 되돌려 준 경험이 있나요?"
"축구부 벌금처럼 벌칙으로 규칙을 지키기 위해 걷는 벌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
"주인공 부모님이 용돈을 넉넉하게 주었다면 어땠을까요? "
"친구의 잘못을 알고 있는데 스스로 잘못을 말하고 용서를 구할 때 기다려주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사실대로 최대한 빨리 이야기하는 게 좋을까요? "
"기본소득, 보편 복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동화는 아이들만을 위한 게 아닌 어른들의 동심을 일깨우는 힘도 있으니 어른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나 역시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하지만 주인공처럼 실수와 잘못을 인정한 경우는 드물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였다랄지, 아니면 나보다 더한 사람도 많은데 내 잘못은 축에도 못 끼지 하며 자기 합리화를 시킨다. 며칠 고민만 하다 끝내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용서도 구하지 않고 넘어간 경우가 많다. "반장은 사람 아니냐, 반장도 실수할 수 있는 거지"라며 순수하게 믿어준 주위 친구들이 있었기에 어쩌면 반장이었던 주인공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처럼 비빌언덕 역할을 하는 주위 어른들이 튼튼한 생각을 갖고 있어야겠다. 그저 자신의 이익만 생각해 주위 일들에 무관심하고, 실수를 인정하는 화해를 하자고 먼저 손 내밀고 그걸 받아주는 용기가 없는 빌빌대는 언덕이 되면 안 되겠지. 비빌언덕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면, 더나아가 그런 만원의 우정이 가능한 마을을 꿈꾸는 이들이 한번쯤 생각하며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