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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Mar 02. 2022

서울대 10개만 만들면 해결된다

입시 지옥에 대한 해결책 - <서울대 10개 만들기>, 김종영

# 지옥같은 입시과정


나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불쌍하다. 우리 학생들은 비슷한 경제력과 국력의 선진국 학생에 비해 불행하다. 아래 표는 OECD 국가별 아동, 청소년의 인생 만족도다. 꼴찌다. K-교육이다.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148006622722128&mediaCodeNo=257


왜 이렇게 됐을까? 입시가 유력한 원인이다. 명문대 입학을 위한 경쟁.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고, 고등학교에서 정점 찍는다. 우리 학생들은 같은 반 친구와 경쟁하고 이겨야 한다. 이걸 못하면 '잠재적 잉여인간'된다. 공부 잘하면 불안하고, 공부 못하면 불행하다.



그런데 어른들은 애들이 불행해하면 이렇게 말한다.


"너만 불행한게 아냐. 나도 불행해, 근데 원래 그게 세상이야. 다른 나라도 똑같아. 열심히 해야 1인분 몫하면서 살 수 있다. 너 평생 무시당하면서 살래?" 이건 뭐, 협박이다. 하지만 중고등학교에서 횡행하는 보편적인 담론이다.


요즘은 유튜브에 '일침 모음' 같은 것도 올라온다. 유명 인강 강사가 이렇게 일침을 놓는다.


"지금 공부 안하고 퍼자면 인생 패배자다, 하등 쓸모없는 인간 된다. 열심히 해야 그나마 먹고살 수라도 있다. 그딴 식으로 살면 후회만 남는다. 공부하자." 요즘 학생들은 힘들때 이걸 들으면서 커피를 마신다. 진짜 개빡세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미래의 내 아이가 이렇게 산다고 생각해보자. 아, 깝깝한데 이거? 지금의 입시지옥, 천국까지는 아니라도, 연옥수준까지는 나아가야 한다.


오늘 다룰 책은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책이다. 입시지옥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저자는 경희대 사회학과 김종영 교수다.



서점에서 처음 제목을 봤을때, '이건 또 뭔소리냐?' 싶었다. 그럼에도 저자의 네임밸류를 믿고 책을 샀다. 난 김종영 교수의 책들을 감명깊게 읽어왔다. 서평도 썼었다. 그래서 읽어봤고,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느꼈다. 무슨 말이길래?




#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


* 박스 안은 인용구


저자는 입시지옥의 원인을 '명문대의 양적 희소성'이라고 주장한다.


지위재에 대한 기념비적 연구를 수행한 허쉬는 '물질재가 풍부하고 지위재의 공급이 고정되어 있다면 지위재의 가격은 상승한다'라고 밝힌다.

대학이 보편화되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이른 상태에서 '명문대 학위'라는 지위재의 공급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한다.


우리나라는 명문대 서열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다. SKY-서성한-중경외시. 우리나라에서는 진리와 같은 문구다. 서열은 엄격하다. 그리고 명문대 숫자도 한정적이다. 좁게보면 3개, 많게보면 10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은 이 좁은 길에 들어가길 원한다. 당연히 통행료는 엄청 비싸다.


저자는 좁은 길을 넓히지 않으면 입시지옥은 해소되지 않을거라고 단언한다.


한국인 대부분도 '전사 사회'에 속한 사람들처럼 평평한 운동장에서 공정한 시합을 통해 명문대 입학을 바란다. 이들은 전사 사회의 독점을 문제삼지 않고 오직 독점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공정한 입시에만 매달린다. 나는 이들을 '입시파'라고 부른다.

사실 한국의 교육단체, 전문가, 학부모, 학생 대부분이 입시파다. 따라서 정부가 바뀔 때마다 입시를 바꾸려고 한다. 입시는 대학서열의 종속변수다. 즉 원인이 아닌 결과다.


타당하다. 정시로 뽑건, 수시로 뽑건, 명문대 숫자가 한정된 상황에서, 애들은 죽어난다. 수능 준비하다 죽건, 내신 준비하다 죽건, 본고사 준비하다 죽건, 어쨌든 죽어난다. 입시 구조를 아무리 바꿔도, 입시 지옥이 지속된다.    


왜 그럴까? 앞서 언급했듯, 명문대의 수요가 공급에 비해 높게 때문이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과잉 수요는 공급 확대로 해결될 수 있다.  


저자는 <1> 정부 집중 투자로 서울대처럼 우수한 지역별 거점 대학 10개를 만들고, <2> 서울대 브랜드를 공유하라고 말한다. [예시 : 서울1대학, 서울2대학] 이 지점에서 저자는 미국의 캘리포니아 대학체제를 끌어온다.


서울대 10개로 구성된 대학통합네트워크는 .. 10개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이루어진 캘리포니아 대학체제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체제는 지위권력의 상향평준화와 창조권력의 다원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UCLA, UC버클리와 같은 캘리포니아 대학체제를 따온다. 미국의 대표 명문대는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로 대표되는 '아이비리그 대학'이다. 하지만 스탠포드, MIT, UCLA, UC버클리, 시카고 등 다른 명문대도 많다.


캘리포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는 버클리, LA, San Diego 등 캘리포니아의 다양한 지역에 캠퍼스를 가지고 있다. 'UC'계열 대학은 10개의 공립 대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우수한 성과를 시현한다.


UC계열 대학 지도

가령 UC 버클리는 노벨상 수상자를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이 배출했다. 애플의 스티브 워즈니악, 인텔의 고든 무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이 여길 나왔다. UCLA도 쟁쟁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엘리너 오스트롬, 블리자드 공동 창업자 앨런 애덤, 마이클 모하임, 프랭크 피어스, 우버 창업자 트레비스 칼라닉, 전 미국 부통령 앨고어가 여길 나왔다.


하버드, 예일도 좋지만, UC버클리, UCLA, 스탠포드, MIT도 충분히 좋다. 미국 명문대학은 '많고', '다원화'되어 있다. 서열도 고착화되어 있지 않다. 스탠포드생이 하버드 가겠다고 재수하나? 우리나라는 연세대생이 서울대 가겠다고 재수한다.


저자는 이런 방향으로 가자고 한다. 이를 위해 서울대 수준의 '세계적 명문대학 10개'를 만들고, 'UC' 계열 학교처럼 '서울대 브랜드를 공유'하게 하자고 말한다. 명문대학의 수를 늘리고, 다원화시키려는 목적이다.


낯설긴 하다. 하지만 우리에겐 선례가 있다. 포항공대, 카이스트는 SKY에 비길만한 명문대학으로 자라났다. 이런게 더 많아지면 좋은 거 아냐?


저자는 말한다. 2020년 서울대 예산이 1.5조원이다. 부산대는 8천억원, 경북대 6천억원, 전남대 5천억원 정도다. 나머지 대학들의 지원 예산을 서울대만큼 올리고, 대학별로 지역 산업 등과 관련된 특화 학과를 지정하고 육성하자. '뛰어난 역량'의 '브랜드 있는 학교'를 만들어내자.



여전히 엘리트 대학은 존재한다. 그렇지만 엘리트 대학의 숫자는 더 늘어난다. 시장 원리에 따라 명문대 획득에 필요한 비용은 감소한다. 이러면 '입시 천국'은 안되더라도, '입시 지옥'이 '입시 연옥' 정도로 나아지지는 않을까?  




#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나는 입시지옥에 해법은 없다고 봤다. 좋은 직업의 수는 제한적이다. 그게 한정되어 있다면, 명문대 학위를 향한 경쟁은 지속될 거라고 봤다. 명문대 학위가 더 좋은 기회를 보장하면, 누가 그걸 포기하겠어?


그래서 정시로 뽑든, 수시로 뽑든, 애들 죽어나는 건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3년 내내 애들이 경주마처럼 달리고 감시받아야 하는 수시보다, 차라리 정시가 낫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공부, 솔직히 그거 해서 얼마나 쓸모 있다고?


그런데 저자의 말처럼 '명문대 숫자'를 늘린다면 청소년기의 경쟁은 완화될 것 같다. 이게 현실에 어떻게 적용될지는 모르겠다. 난 교육전문가가 아니다. 내가 뭘 안다고 판단할까?


그래도 직관적이고, 유효성이 있는 주장이다. 대학 입시도 수요와 공급이 논리가 작용한다. 명문대가 1개인 나라보다, 명문대가 10개인 나라가, 그리고 명문대가 50개인 나라가, 입시지옥의 강도가 덜 할 확률이 높다.  


다른 나라라고 입시 스트레스가 없을까? 다 있다. 그래도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다를거다. 하버드'만' 가야하는 상황보다, 하버드 외에도 UC버클리, 스탠퍼드를 가도 된다면, 스트레스가 덜 한다.


같은 학교, 같은 반 내에서 일거수 일투족을 '학생부'에 기록한다. 좁아터진 학교 안에서 매번 '내신 시험' 보고 등급 매긴다. 여기에 투입되는 아이들의 스트레스와 노력은 어마무시하다. 그런데 이게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는 불분명하다.  


평가를 위한 평가기 때문에 그렇다. 명문대로 가는 길이 좁아터졌다. 그러니 명문대로 갈 애들을 솎아내려면, 별걸 다 평가해야 한다.


나는 미래에 우리 아이가 이런 환경에서 자라길 원치 않는다. 만약 지금보다 경쟁이 완화되면 아이들은 꽤 많은걸 경험할 수 있다.


사교육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아낀다. 그러면 해외여행을 가거나, 드럼을 배우거나, 스케이트를 배우거나, 도서관에서 맘놓고 소설책을 볼 수 있다. 하다못해 잠이라도 1시간 더 자고, 공이라도 1시간 더 차서, 더 건강해진다.


우리는 선진국이다. 그런데 청소년들은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할까? 도대체 왜?


구조를 바꾸자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이 가는 이유다. 이 정도의 변혁이 없으면, 입시 지옥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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