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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해의 취미생활 Jul 11. 2022

조선 공무원은 어떻게 살았나

대한민국 공무원이 저술한 조선 공무원의 일생

# 조선 시대 공무원


얼마 전 조선 시대 공무원에 관한 책을 읽었다. <조선의 공무원은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책이다. 굉장히 흥미로웠다. 과거 준비 과정, 업무 일정 등이 쉽고 재밌게 서술되어 있다.



글쓴이는 행정고시 합격 후 감사원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다. 회사 다니면서 공부하고 책쓰는거, 보통 일이 아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명깊게 읽은 부분 몇 가지를 남겨둔다.




# 과거 공부를 하자


* 박스 안은 인용구


양반들은 과거를 보기 위해 7, 8세에 서당 공부를 시작해 사학이나 성균관 등을 거쳐야 했습니다. 때로는 개인교습을 받아가면서 20-30년간 공부에만 매진했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과거에 도전하려면 경제적 뒷받침과 가족의 지원이 필수 적이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양반들은 수십년간 공부했다. 서울에 가깝고, 집안에 돈이 많을수록 유리했다. 서울부터 시험 일정 등 핵심 정보가 확산됐다. 집이 유복할수록 생업 신경 안쓰고 공부에 집중하기 쉽다.


어째, 남일이 아니다. 2022년, 여전히 교육의 중심지는 서울 강남이다. 있는 집 자제들은 수능도 두세번 본다. 정 안되면 해외 대학간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험은 공평하지 않다. 물론 그때가 더 심했을 거다.


근데 의문이 생긴다.


조선은 청년들을 수십년간 공부시켰다. 국가가 '인적 자본'을 축적하게 하고, 평가했고, 데려다 썼다. 조선을 똑똑함을 중시했다. 그런데, 왜 망했지?


교육방법은 암기에 주로 집중하는 것이었고, 교육 내용은 유학에서 이상 세계로 설정한 고대 중국 사회였습니다.

역사교육도 우리나라는 약간 다룰 뿐이었고, 대부분은 중국의 고대 역사가 중심이었습니다.

유교 이념과 인성교육에 지나치게 치우치다 보니 수학, 과학, 기술 같은 실용 학문은 아예 가르치지 않 았습니다.


저자의 서술을 읽고, 이렇게 생각했다.


'일생에 걸쳐 이상한 거 공부하게 하고 시험보는데,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을까? 국력을 낭비했다'


조선은 '유학 교육'에 집중했다. '먹고사니즘'과 거리가 멀었다. 중세 서양도 그랬다. 걔네들도 '하나님'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서양은 '하나님'과 '먹고사니즘'을 결합했다. 청교도는 잘먹고 잘사는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했다. 걔네들은 하나님과 자본주의를 합쳤다. 수학, 과학, 기술이 자연스레 중시됐다.


우리 조상은 아니다. 공자님이 최우선이었다. 서양에서 증기기관, 전기 만들 때, 우리는 공자왈 맹자왈했다. 이걸로 일할 사람을 뽑았다.


전국의 젊은이들을 '시험 공부'에 몰아넣었다. 국력에 도움이 안 되는 공부다. 다른 나라도 다 이러면 모른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치고나가면, 순식간에 뒤처된다.  


정약용 선생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지금 천하의 총명하고 슬기로운 재능이 있는 이들을 모아 일률적으로 과거라고 하는 격식에 집어넣고는 본인의 개성은 아랑곳없이 마구 짓이기고 있으니, 어찌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과거는 이미 쇠진했다. 과거시험을 제대로 바꿔야만 백성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


지금은 얼마나 다를까?


팔팔한 젊은 청소년들을 수능, 학종으로 짓이기는 거 아닌가? 평가 방식이 구리면, 아무리 좋은 걸 가르쳐도 무용하다.




# 신고식 해야지


어찌저찌 과거에 합격했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면신례라고 불리는 어마어마한 신고식이 있다.


일단 신참이 들어오면 선배들은 그를 말석에도 끼워주지 않았습니다.

동료나 사람 취급을 하지 않은 것인데, 새 귀신이라는 뜻에서 신귀라고 불렀습니다.

신입 관료들은 면신례가 끝날 때까지 50일 동안 얼굴에 분칠을 한 채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온갖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사람 조지는 것도 기술이다. 신참을 귀신이라고 부른다. 얼굴에 분칠을 시킨다. 옷도 더러운거 입한다. 모욕감과 굴욕감을 커진다. 저자에 따르면 이걸 50일동안 한다.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해야, 말을 더 잘 듣는다고 생각했을까?


남일이 아니다. 중앙부처에서 일하는 어느 동기 A의 이야기다.


어느날 담당 과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A 사무관, 지금부터 일하면 언제쯤 사람 될까?'


그 동기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내 나이가 30살이 넘는다. 내가 사람이 아니면, 난 뭐냐?'


정약용 선생님의 일화를 알았다면, 그 동기를 더 잘 위로해줬을 거다.


'적어도 형은 귀신은 아니잖아. 그리고 다산 정약용도 사람 취급 못받았어'


아래는 정약용의 반성 편지다. 면신례를 제대로 못해서 썼다  


절름발이 걸음으로 게를 줍는 시늉을 하고 수리부엉이 울음을 흉내 내는 일 따위는 제가 직접 하는 것입니다. 시키는 대로 해보려고 애를 썼으나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걸 어쩌겠습니다.

그저 난잡 하고 우스운 모습을 드러낼 수 없어 명령에 따르지 못한 것이지 절대 존경하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공무원 연수원에서 정약용은 거의 예수급이다. 청렴하고, 따뜻하고, 꼼꼼하고, 똑똑하고. 모든 공무원의 롤모델로 상정됐다. 그런 정약용마저 된통 당했다.


선배들이 시켜서 절름발이 걸음도, 수리부엉이 울음도 해보려고는 했나보다. 그마저도 잘 못했다. 못하겠으면 끝까지 못하든가. 사과까지 한다. 구구절절한 편지와 함께.


먹고사는게 참 힘들다. 정약용도 그렇다.





# 일을 하자


조선의 관료들은 평상시에는 묘시(오전 5-7시)에, 겨울에는 진시(오전7-9시)에 출근했습니다. 그리고 출근부인 공좌부에 서명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공좌부에 기록되는 출근 일수는 근무 성적 평가와 승진에 반영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관청은 유시(17-19시)에 퇴근을 했고, 겨울에는 신시(15-17시)로 앞당겨졌습니다. 퇴근 후 관료들은 자연스럽게 술자리 를 마련했고, 부서 내외의 모임이 자주 열렸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 공무원들은 오전 5시에부터 오후 5시까지 일했다. 옛날이라 그런가? 노동시간이 진짜 길다. 매일 12시간씩 수십년간 일하면, 병나는거 아니야?  


문득 야근은 얼마나 하는지, 초과근무 수당은 주는지, 주말에는 나왔는지도 궁금해졌다. 책에는 아쉽게도 찾지 못했다.


평범한 공무원들이 어떤 멘탈리티를 가졌는지도 궁금하다. 이 시대 과거 합격자들은 모두가 장차관하고, 그런게 목표였을까?


책을 읽어가던 중, 눈에 띄는 제도를 발견했다. 자기개발 휴직제도다.


젊은 관리 중에서 학문이 뛰어난 사람을 뽑아 책 읽는 휴가를 주어 오로지 공부에 전념하게 하는 서재인 독서당도 있었습니다.

독서당은 한강 근처의 경치가 좋고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20칸 규모에다가 서늘한 마루와 따뜻한 방을 갖춘 곳이었다고 합니다.

신숙주, 이황, 유성룡 같은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들이 독서당을 거쳐 갔습니다.


그 시절에도 똘똘하면 공부를 더 시켰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무원에 대한 유효한 보상은 '자기개발' 아닌가 싶다.


연봉? 일 시작한지 6년이 된다. 민간에서 일하는 대학 동기들과 연봉 차이가 꽤 난다. 그쪽이 근무 시간도 더 짧고, 휴가도 더 많다. 주말에 일해야 되서 서울 못 간다고 하면, 시대가 어느 때냐고 묻는다.


연봉도 낮아, 근무강도도 높아. 그나마 승진과 자기개발 기회가 가시적인 보상이다. 일 잘하면 승진시켜주고, 해외 대학이나 기관에서 글로벌 역량 쌓을 기회 주고. 그런데 요새는 많이 없어졌다. 공무원의 역량은 더 이상 무용할까?


한국은 글로벌 국가다. 하지만 중앙부처 공무원은, 세종시에 있다. 글로벌하기 어렵다. 세종시에서는 사람 만나는거 어렵다. 공부할 기회도 적어졌다. 우리 경쟁자는 워싱턴, 브뤼셀, 제네바, 북경, 도쿄에 있다.  


이 말도 조심스럽다. 공무원이 어렵다고 해봤자다. 나도 공무원 다 됐다. 그래서 요즘은 많이들 옮긴다. 다들 똑똑한 분들이다.





# 재밌다!


재밌게 읽었다.


이 글에는 담지 못했지만, 이 책은 (1) 과거제도 특징, 조선시대 중앙부처 운영 방식 등 거시적 측면부터, (2) 암행어사의 생활, 귀향자의 생계 등 개인의 미시적 부분까지 다양한 내용을 포괄한다.


업무 스트레스가 많은 시기여서 머리 아픈 책은 피했다. 아주 잘 골랐고, 아주 잘 읽었다.


책은 이렇게 쉽고, 재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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