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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Apr 07. 2023

3년 만에 목욕탕, 변한 것은 딱 하나

나는 손과 손톱이 예쁘다는 말을 듣곤 한다. 오죽하면 한 친구는 “넌 손이 예쁘니까 소개팅 나가면 말이야 얼굴은 쯧...... 어차피 어쩔 수 없고, 손이라도 테이블에 올려놓도록 하렴. 혹시 아니?”라고 애정 어린 조롱을 했었다. 사실 내 손은 만져보면 보기와 달리 여자 손치고는 꽤 거칠다. 그건, 어릴 때 늘 손이 터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때 핸드크림도 없고 바셀린이란 게 있다더라고 듣기만 했었지 시골에선 구경하기 쉽지 않았다.


그 어린 손이 거칠하다 못해 갈라졌고 손톱 위생상태가 엄청 안 좋았다. 년 중 행사처럼, 아니 해를 걸러서였던가, 여하튼 엄마랑 읍내 대중목욕탕에 가서야 그 흙 때가 제대로 벗겨져서 아이 살로 돌아오곤 했다. 


엄마와 목욕탕 가는 일은 즐겁지는 않았다. 팔뚝, 턱, 허벅지의 살갗이 벗겨지는 거처럼 아팠다. 아이가 때가 있어봤자 얼마나 있다고, 아파서 몸을 비틀고 징징대는 나를 엄마는 물 젓은 손으로 패가면서 빡빡 밀어댔었다. 달랠 생각 자체를 안 하는... 참으로 멋대가리 없는 엄마다. 


입에서 김이 나오는 추운 겨울, 목욕 마치고 얼굴이 벌게져 나온 어린 딸에게 목욕탕 골목길 호떡 정도 사 먹이는 인정도 없었던 우리 엄마. 농번기가 한참 지난 덕분에 읍내 목욕정도는 나올 수 있어도 대가족 밥 때는 거를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시골 버스시간도 맞춰야 하니 서두르기만 하는 엄마가 나는 야속했다. 


그때 나 호떡 좀 사주지 그랬냐고 해봤자 엄마는 기억에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오일장에서 주전부리음식을 보고는 옛날 나처럼 똑같이 먹고 싶어 하는 엄마가 난 참 좋다. 골목이 끝나도록 젖힌 고개로  호떡집을 바라보는 데, 그걸 외면하며 잡아끌던 엄마의 손아귀가 너무 서러웠다고, 지금도 엄마와 호떡을 먹을 때면 나는 꼭 이야기한다. 그게 그런 적이 있었냐는 엄마에 대한 나의 복수랄까. 

길거리 음식 하나 즐길 여유가 없던 엄마의 팍팍한 과거에 대한 복수랄까. 지금 맛있게 같이 먹을 수 있으면 되었다. 그 오래된 정서적 허기 때문일까, 목욕탕을 나와서는 그냥 집으로 가면 이제는 뭔가 허전하다. 엄마와 목욕 후의 맛 집, 그만한 행복이 없다. 


내가 돈을 벌고부터는 엄마와 손잡고 목욕탕에 가는 일이 연중행사보다는 많아졌으니 위생과 경제의 비루한 상관관계라고나 할까. 그러니 내가 엄마의 등만 밀어주다가 그 비싼 전신 세신사 서비스로 ‘신분상승’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내 수입이 늘면서일 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그 비싼 걸 돈 아깝게 뭘 하냐고 내키지 않아 했지만 벗고 올라가 남 앞에 누워있는 거를 쑥스러워서 어찌 하냐는 말이 더 진심이었다. 


“아, 그렇구나..... 알았어, 엄마. 처음이니까 나도 같이 할게. 나랑 같이 하면 할 거지?”


그것이 나의 첫 ‘때밀이’였다. 나는 엄마에 비해 그래도 소위 새파란데 나는 내가 밀어야지, 이게 평소 생각이었으나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말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일 줄이야.  엄마 때문에 처음 한 번만 하려고 했던 것이 돌아올 수 없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 내가 명품을 좋아라 하는 것도 아니고, 하물며 평생을 경차 예찬론자로서...... 나름 자기 합리화의 억지 과정을 만들어버리고 난 후, 그날부터 목욕탕 때밀이는 나의 유일한 사치가 되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는 대중목욕탕엘 안 갔다. 나는 나대로 아파트에서 그간 힘써 씻어왔지만 엄마는 시골집에서 변변히 그러질 못했다. 사실 팔순 넘은 팔에는 남은 힘이 없기도 하다. 그러니 엄마는 집 목욕이 귀찮다고만 하고 코로나 풀리면 목욕탕 가면 된다고 한 게 벌써 3년이나 된 것이다.


말도 못 하게 돌아다니는 나의 고양이 털은 괜찮아도 곳곳에 흔적을 남기는 엄마의 각질은 도저히 못 봐줄 정도여서 급기야 나는 코로나도 불사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아빠가 알면 필시 역정을 낼 일이다. 사람 많은 목욕탕 갔다가 코로나라도 걸리면 우린 노인네들이라 바로 죽는 거라는 아빠의 극단적인 염려증을 무시하고 엄마와 나는 입수를 감행하였다. 

대중목욕탕에 가면 늘 남성의 상상과 욕망의 시선으로 그려진 앵그르의 <목욕탕> 그림이 생각이 난다. 실제는 그렇게 우아하고 아름답지는 않기 때문이다. 살과 땀과 스팀이 적당히 버무려진 축축한 냄새. 거의 매일을 출근도장 찍듯 하는 중앙의 단골 무리들, 탕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 대놓고 쳐다보는 그들의 불편한 시선, 텃세를 과시하는 배달 통 냉커피족이 즐기는 한증막의 고온다습 열기. 3년 만인데 목욕탕 풍경은 변한 게 없었다. 그 옆에 물 바가지 하나씩들도 그대로였다. 말하기 좋아하는 세신사 여사님의 연실 수다도 3년 만인데도 어쩌면 그리 여전할까. 


“아이고, 시원~하다.” 


엄마는 온탕, 나는 열탕에 몸을 담그면서 터져 나오는 탄성도 그대로인데, 바나나우유에 빨대를 꽂으며 웃는 엄마의 주름살은 많이도 굵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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