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고 벼르던 전신 안마를 다녀왔다. 아침에 일어날 때 찌뿌둥함의 이유는 봄이라 텃밭 농사가 시작된 것도 있지만 사실 주범은 쪽파였다. 작년 이즈음에 파 값이 비싸서 금파라고 불렸다. ‘파테크’, ‘홈파밍’ 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코로나 때문에 양식이나 외식보다는 한식과 집밥이 늘었고 그에 따른 재료들 값이 오른 이유라고 했다.
덩달아 쪽파도 비싸졌다. 마침 우리가 쪽파를 한 귀퉁이에 심은 것이 있었다. “어라, 이거 내가 한번 팔아볼까?” 생전 처음으로 지역 거래 커뮤니티에 농산물을 올려보았다. 정말로 신기하게 댓글로 주문이 바로 달렸고 순식간에 다 팔았다. 비록 얼마 안 되었어도 손에 바로 쥐어지는 현찰을 보며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심을 걸’ 하는 얄팍한 마음이 들더라는 것이었다.
그만 그 경험이 독이 되었던 것이다. 농부 비기너의 어리석은 실수, 다음 한 해를 내다볼 줄 모른다는 것. 우리는 그만 엄청나게 심은 것이다. 그리하여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올해는...... 쪽파 값이 싸다. 주변에서 쪽파를 주어서 자신은 안 받아도 된다는 친구가 벌써 두어 명인 것만 봐도 쪽파가 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한 친구 말에 의하면 로컬푸드에 가보니 유독 쪽파만 산더미처럼 쌓여있다고도 했다.
처음에는 동네 제일 싼 마트보다 천 원 저렴하게 내놓았다. 조회 수가 몇 백인데 주문이 한 건이 없었다. 아이고야. 저 많은 쪽파를 어쩐다. 그래도 갈아엎을 수는 없지 않은가. 확실한 시장조사를 하고자 오일장을 가보았더니 내 가격이 결코 싼 것이 아니었다.
“오늘 수확하는 싱싱한 텃밭 쪽파. 많이 드립니다. 1단도 배달해드립니다. 파전이나 돌돌이 해 드시면 좋아요.”
오일장보다도 천 원 더 내려서 다시 올렸다. 그나마 4군데에서 10단 주문이 들어왔고 그다음 날에는 2군데 6단을 팔았다. 아직 파김치를 안 담근 지인들에게는 두어 단씩 막 안겨주었다.
내가 5년 차 농부임에도 여전히 아니 계속 초보라고 딱지 붙이는 이유는 나는 아빠를 거들뿐 내가 농사를 주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아빠는 다른 농작물과는 달리 쪽파 정도면 체급상 나에게 맡겨도 된다고 판단하셨고 그래서 내 차지가 되었다. 물론 나 스스로 먼저 열성적으로 팔아본다 했지만 말이다.
농산물 판매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쪽파가 쏙쏙 쉽게 뽑히는 게 아니라 힘주어 잡아당겨야 해서 한참 하다 보면 허리가 아프다. 흙을 털어내고 찌끄레기들도 적당히 떼어내 주고 저울에 무게를 잰다. 처음에는 묶는 것도 서툴러서 더뎠고 나중에는 요령이 생겼다 해도 2킬로 넘는 것을 들어서 한번 돌려 묶는 것이 팔이 아프다.
밭에서 들어 날라서 봉투에 각각 담아 차에 실어야 이제 배달이 시작된다. 배달지의 동선을 어떻게든 효율적으로 그려봐도 4~5 군데면 시내를 완벽하게 돌아다니게 마련이다. 주차의 애먹음은 그렇다 쳐도 출입구를 못 찾아 5킬로 넘는 것을 들고 아파트 단지를 뱅뱅 돌기도 했고 비대면 구매인 경우 20층까지 쪽파 한 단을 들고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했다. 동태찌개 식당에서는 한 두단 사기 미안하다고 5단을 주문하셨는데 정말 감사했다. 당연히 6단을 드렸다.
그렇게 몇 번에 걸쳐 40 여단 정도를 배달하면서 신기한 것이 친구들 집 앞에 놓고 오는 경우는 하나도 힘들지 않은데 4000원 받으려고 골목골목을 운전해가 기다렸다 받아오는 길은 정말 기름값 생각나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러고 들어오면 파김치가 된 것은 나였다. 산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가며 노지에서 일한 게 이제야 삭신이 쑤셨고 잠들어서는 신음소리로 잠꼬대를 했다.
너무 웃자라면 팔기도 그런데 쪽파는 한 고랑이나 더 남았다. 멀쩡한 쪽파를 아깝게 갈아엎을 상황이 될까 걱정은 초반뿐, 이제는 정말 주문이 들어오는 것도, 그냥 나눔 하는 것도 내가 힘들어서 못 할 것 같았다. 그깟 일로 엄살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몹쓸 허리가 고질병인데다 안 쓰던 근육들의 아우성. 지구 중심까지 딸려갈 것만 같은 중력이 몸에 덕지덕지 매달려 있는 느낌이었다.
농작물 판매는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란 반성과 함께 농산물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풍년도 문제, 흉년도 문제. 그에 따라 농부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니 말이다. 남아 돌 정도로 값이 싸서 상품화하여 파는 비용이 더 드는 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사자면 또 그것도 작은 돈이 아닌지라.
경작지와 소비자 사이의 물리적 심정적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는 걸 알았다. 직장인 시절, 멀쩡한 농산물을 갈아엎는다는 뉴스를 볼 때는 아까운 저걸 어떻게라도 좀 나누어주지 왜 저럴까? 싶었는데 직접 해보니 정말이지 현실은 1도 모르는 나의 납작한 생각이었다.
마사지는 몇 번 더 해야 몸이 회복될 듯싶다. 딱딱하고 뻣뻣하기가 통나무 같은 몸이 호강을 하니 좋았다. 그래! 힘들어도 힘내자. 인류가 해결 못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문제, 더 저렴하게 해서 나라도 다시 한번 팔아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