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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유주 Oct 31. 2020

27. 15년지기 절친과 결별했다.

건강한 관계 VS 공의존

공의존 vs 관계

남의 심리를 조종하고 약탈하는 부모의 자식이 되는 것이야말로 한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불행이다. 

그 사람의 앞길에 온갖 삐뚤어진 종자들이 꼬일 위험이 있으니까. 

하지만 마조히즘은 아니다. 

그냥 일방적인 약탈 관계를 피하는 능력을 계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뿐이다. 

자기보호권을 다시 습득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거대한 자기회복 작업이지만 파괴적 관계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다.


<굿바이 심리조종자> 크리스텔 프티콜랭




'나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으면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나를 희생해서 남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 것이다.'라는 잘못된 믿음 위에 세워진 인간관계의 패턴을 가진 나는 항상 자신의 욕구는 뒤로 미뤄둔 채 타인의 감정과 욕구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알아서 채워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다보니 당연하게도 자기 감정과 욕구는 자기가 알아서 해결하는 '어른'이 아닌, 누군가 하기 싫은 귀찮은 일을 해결해주길 바라는 미성숙한 인간들이 내 인생에 잔뜩 꼬이곤 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온전히 사랑받는 느낌? 일거수 일투족을 비난받지 않고 존중받는 것?

그런 '건강한 관계'는 책에서 읽고 글로나 배웠지, 여전히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해하려고 애써야만 하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이었다.

대부분이 '일방적 착취' 관계의 패턴들로 점철된, '가짜 자아'로 살아오던 과거에 쌓아올린 인간관계들도 하나씩 정리해야만 했다.

심지어 친엄마와도.


나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하레'라는 내 일거수 일투족을 날카롭게 관찰하고 그대로 따라하는 작은 아이가 있다.

이 아이에게 건강한 관계를 맺는 능력과, 유해한 사람들을 알아보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능력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더더욱 '진짜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는 일이 절실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인 '나 자신'과의 관계를 제대로 돌보기로 결심했다.


'진짜 나'를 재발견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건강한 자기애를 알아가는 지난한 과정에서 항상 나에게 일어난 말도 안되는 일들을 곁에서 묵묵히 들어주던 친구가 있었다.

J는 15년지기 친구였고, 한때는 나의 절친이자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했었다.


끈질기게 따개비같이 내게 들러 붙어있던, 수동 공격적이고 미묘하게 내 편인척 해서 더 알아채기 힘들었던 J와의 관계마저도 정리해야 했다.

이로써 내 낡은 가짜위에 쌓아올렸던 오해와 착각으로 점철된 '공의존'들을 전부 부쉈다.




하레는 미운 네 살답게 시도 때도 없이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리며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런 하레를 관찰하다가 아주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괴로운 깨달음'은 끈질기게 나를 쫓아다니며, '해결'되기를 요구했다.


34개월인 하레.

내가 기꺼이 기쁨으로 돌보고 있는 '나의 아기'이자, 사랑스러운 조카.


그런데 이게 바로 나와 J의 관계를 설명해 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34개월 아기를 돌보듯 J를 돌봐 온거구나.

그리고 J는 34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34개월 아이처럼 행동하는 거구나.


내가 지금까지 한평생 한 일은, 되먹지 못한 어른, 크지도 않은 애어른, 몸만 커다랗고 '늙은 미운 네살'들을 돌봐온 일이었구나...싶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J도 그 중 하나였구나.

'설마' 싶었는데, J는 정.말.로. 하레 정도의 사고 수준을 가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독특한 자기 세계를 가진 친구'라고만 생각했던 J의 행동들이 이제서야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너랑 있으면 참 편해." J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편하겠지.

내가 알아서 다 해주니까.

늘 나의 삶의 속도보다 뒤늦게 쫓아오는 J를 보면서 '그래, 나도 저길 올 땐 저랬어. 지금 이런 심정이겠지.'하면서 마치 하레의 정서와 욕구를 먼저 읽고 이해하듯 그렇게 J를 보살펴 왔다.

지금까지 나는 J의 '절친'이 아니라 '엄마'였네,하는 놀라운 자각.


J는 늘 같은 자리를 맴돌면서 익숙하다고, 새로운 게 없다고 불평한다.

내가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고, 새로운 건 바깥에 있어, 라고 하면 두려워한다.

바깥엔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익숙하지 않으니까.

억지로 끌어내려고 하면 두려워하고 화를 낸다.

그러면서 자기는 지금 여기가 좋다고 한다.

그리고는 또 반복한다.

여긴 지루해, 뭐 새로운 거 없나?


하레와 J의 유일한 차이점은 하레는 한 번 혼나고 나면 다음번엔 안하려고 노력하고,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반면 J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무언가 시도하거나 새로운 계획을 말할 때마다 "니가?" 혹은 "어떻게 하려고?"하고 비웃던 J의 모습이 같이 놀던 내가 "고모 쉬하고 올께."하면 "쉬야, 안돼!", " 고모 물 마시고 올께", 하면 "물, 안돼!"라고 하는 하레의 반응이랑 같은거라는 것도.


J의 비웃음에 나는 움츠러 들곤 했다.

진지하게 J의 의견을 묻고, 조언을 듣고, 내 계획에 반영하곤 했다.

J는 내가 새로운 시도에서 성공하는 걸 보고 '안정성이 입증'되면 그제서야 '마치 자기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곤 했다.


그런데 J의 입에서 나왔던 그 모든 말들이 마트에 가서 하레에게 "하레야, 빨간색 파프리카를 살까? 노란색 파프리카를 살까?"처럼 애초에 뭘 골라도 상관없는 정도의 '의견'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그렇게 단순하고 터무니없이 자기중심적인 반응에 그토록 진지하게 대응하고 생각한 나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처량하고 화가나고 서글프고 웃겼다. 


늘 나를 비웃었던 J의 진짜 문제는 내가 '비웃어 마땅한 한심한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감정을 정상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J의 문제였다는 걸.


정확하게 내가 나의 부모로부터 받았던 존중받지 못하던 익숙한 느낌 그대로 J에게 똑같은 대접을 받으면서도 깨달을수조차 없었던 거구나.

나를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바로 옆에 그 오랜시간 있었는데도 알아보지 못하고 피하지도 못했다.


하레에게 '언어자극'을 주고, 말을 가르치고 '하레가 무슨 생각'을 하고 '내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 지난 몇 달간 나는 하레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설명을 하고 있다.

아침에도 무턱대고 와서 "곤농!"하고 말하면  "고모, 유튜브 보고 싶으니까 틀어주세요."라는 걸 알지만 "공룡, 틀어주세요 해야지~"라고 말하고는 "곤농 으애으애요~~~"라고 서툴어도 꼭 따라하게 시키곤 했다.


진짜 아기인 하레조차도 명확하게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해주는데, 늘 틱틱 단어만 던지는 J의 말을 '헤아려서 알아듣고 받아주고 있었구나' 싶은 생각에 허망함과 분노가 동시에 치밀어 올랐다.

이제 앞으론 '알아들어 주지 않을거야'라고 생각했다.

"울지말고 '해주세요' 해야지."

너도 이제 나에게 "해주세요"라고 어른답게 똑 부러지게 이야기해.




진짜 미운 네 살인 하레를 돌보기 전까진 몰랐다.

J와 주말에 만나 시간을 같이 보내는 동안 내가 모든 것을 '알아서 자동으로' J에게 맞춰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분이 안좋아 보이면 농담을 해서 분위기를 띄우고, 우울해 보이면 쇼핑하러 데려간다.

만나면 해야할 것, 가야할 곳까지 전부 정해서 데리고 다닌다.

해외여행을 가면 통역과 가이드까지, 무료 개인 비서다.

그 세월이 너무 길고 당연해서 '뭐가 문제인지'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일주일 내내 하레와 시간을 보내고 나면 주말은 나도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점점 J와 보내는 주말의 시간들이 버겁고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그리고 이 '버거운 느낌'을 느낀다는 것 자체에 죄책감이 들었다.

어떻게 내 절친에게 이런 감정을 느낄수가 있는거지?


앞으로의 우리 관계에 대해서, 일어나는 나의 감정들에 대해서 더 주의 깊게 관찰해 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나를 좋게 평가할 때도 그것을 칭찬으로 듣지 못하고 오히려 내가 그런 칭찬을 들을 자격이나 그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으레 그런 관심을 거부하거나 그런 관심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그리고 그런 긍정적인 관심을 정말로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이용당하고 심적인 학대를 받더라도 말이다.

<나로 살아가는 기쁨> p.32 - 아니타 무르자니


'관계'라는 것은 마치 '제3의 생명체'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가 있고, '너'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각자의 에너지를 불어 넣어 만들어낸 '관계'라는 제3의 생명체.


늘 정확하게 50%씩을 투입할수는 없겠지만,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내가 더 많이 투입하는 날도 있고, 니가 더 많이 투입하는 날도 있어서 대략 50%씩의 노력을 기울여서 균형을 맞추며 가꾸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J와의 '관계'에 80-90%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

그것은 언제나 나였다.


내가 J의 기분을 띄워주고 웃게 만드는 모든 시도를 의도적으로 중지하자마자, 우리 사이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고, 공통점도 대화할 것도 없었다.

언제나 이랬던 거구나.

나는 이야기를 정신없이 쏟아내고, J는 정신없이 집어 삼키고.

미성숙한 두 인간의 공의존이었다.

'정신 없이'가 포인트였다.


'쌍방대화'가 가능한 유일한 주제는 '지적'과 '불만'이므로 나는 오늘 최대한 부정적인 화제를 꺼내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그러자 하루종일 우리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이 관계에서 내가 에너지를 거두자마자, 텅 빈 껍데기만 남았다.




2010.5.31 일기:
"쉬는 날 J를 만나 밥 먹고, 차 마시고, 남 씹고, 지나가는 사람 흉보고, 우울에 찌든 J를 지켜보는 일은 이제 그만 하고 싶다."


무려 십 년 전 일기에서 이런 대목을 발견한 나는 더 크게 놀랐다.

내 인생에서 무수하게 되풀이되어 온 얼굴만 다르고 결국은 다 똑같았던 문제들의 근본은 '불안'과 '결핍'으로 인해서 나 자신을 '온전하지 못한, 어딘가 모자란 존재'라고 생각한 것이다. 


원래는 '완벽한 두 존재가 등을 대고 붙어 있었는데' 신이 질투해서 반으로 갈라 놓았다던 나의 '반쪽'을 열렬히 갈구했다.

나의 반쪽, 진짜 사랑, 혹은 나를 인도해 줄 스승같이 나를 구원해 줄 내 인생의 '구원자'를.

그러다보니, 나의 그 욕망에 스스로 거듭거듭 속고 말았다.


내 스스로 나의 '진짜 가치'를 모르니 자꾸만 나를 헐값에 팔아 넘기곤 한다.

진짜 사랑도 아닌 조금의 보잘 것 없는 관심에도 기꺼이 모든 걸 하염없이 퍼주고 무너져 내리는 일의 반복이다.

이렇게 당했으면, 이렇게 싫으면 관계를 청산해야지 이건 바보이거나, 기억력이 나쁘거나, 아니면 사람들을 너무 쉽게 용서하거나 아무튼 심각한 문제가 있어!! 하고 생각했다.


내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햇살같이 듬뿍 쏟아지는 사랑'을 찾아서 이 사람, 저 사람을 거지같이 찾아다녔듯, J도 '안정적이고 나를 보살펴줄 믿음직한 사람'을 찾아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우리는 상호의존/보완하는 관계였다.

늘 불안하고 뽈뽈거리면서 뭐라도 해야 안심이 되는 나는 J가 '차분하고,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쿨하다'고 믿었다.

그리고 사실 그냥 게으르고, 무기력하고, 별다른 의지도 실행능력도 없던 J는 나의 '추진력'에 기대어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상호 의존하는 관계였던거다.

둘 다 결핍에 의한 결합이었으므로 '보완'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 문제의 진정한 원인을 깨닫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하고 싶다.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나는 계속해서 돌림노래를 부르듯 내 곁을 스쳐가는 정서가 건강하고 괜찮은 사람들에게는 '재미가 없어'라고 느끼거나, 열등감을 느끼거나, 혹은 '예쁨받고 편하게 큰 니가 인생에 대해 뭘알아!'하고 되도않는 우월감을 느낀채 그대로 다 '패쓰!' 시켰다. 

그리고는 늘 어딘가 결핍되어 있고 내가 보살펴 주어야 하는 사람들만을 골라서 주변에 둔다.

그러니 주변에 멀쩡한 인간이 없지!




결국 '내 마음'만 정리하면 되는거였다.

J가 '어떤 사람'이라는 나의 욕망과 환상에 눈이 멀어 현실이 아닌 사람을 착각하고 있었으니, 그 나의 착각과 실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지금까지의 나의 인간관계가 '진정 100% 실패'였다는 소름돋도록 무서운 진실을 그저 담담하게 마주하면 되는거였다고.

그리고 이제 나는 정말로 '철저히 홀로서야 하는 어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되는거라고.


그 잔인한 진실을 차마 받아 들일수가 없어서 방어기제로 자꾸만 J의 행동을 비난하고,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 내 마음이 그토록 시끄러웠던거다.

'이러면 안된다'라는 내 마음 하나만 바꾸면 된다,고.

J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J가 어떤 사람인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과 무슨 수로 '관계'를 맺어 나간단 말인가?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J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 거지만 만약 '전혀' 그러지 않는다면, 나는 J를 떠나 보내야 하는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는가?라는 질문에 '예스'라고 대답하고 나서야 자유로워졌다.

이제 J는 정말로 그냥 J대로 놔둘 수 있게 되었다.

더이상 '왜 그러지?'하는 의문을 가지고 분석할 필요조차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서 J는 '크지 않기를' 선택했다.

그러니까 어려서부터 애어른이고 한 번도 어린이인적 없었던 누군가를 돌보고 인생의 모든 것이 '일'인 나와 자기 힘으론 아무것도 못하고 항상 누군가가 돌봐주어야 하고 불안하고 불만에 가득찬 J는 환상의 콤비였던 거다.

그리고 그게 자신의 '고착'이라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인생은 원래 그런거'라고 굳게 믿고 고통의 행진을 해왔던거지.

이제 그걸 멈춰야 한다.


지난 일 년간 J에 대한 내 마음은 다채롭게 변화해 갔다.

의아함에서 분노, 슬픔, 불안, 짜증, 답답함 등등.

이제는 심란함보다 '후련함', '홀가분함'이 더 크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서로 격려해주며, 성장을 위해 끌어 올려주고, 흔들릴 때 잡아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

내 등 뒤에 숨어서 내 '힘'을 자기것인양 써대면서 내가 넘어질때마다 손가락질하고 막상 자신의 두려움 앞에선 마비되서 멍해지고 자기 인생의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 말고!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아니지. 내 인생의 책임은 내가 져야지. 범인은 나였어. 나의 욕망에 눈이 멀었고, 나조차 나를 제대로 대접해주지 않았으니까.'하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그 누구의 부정적인 에너지도 받아서 처리해주는 일을 하지 않을거야.

나에게는 모든 일을 해결하고 처리할 힘이 있다, 그 힘을 이제 나를 위해서 써야지.


허무함과 동시에 폐허에서 자라난 들꽃을 보는 것 같은 연약하지만 희망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더이상 외부에 사랑을 구걸하러 다니지 말자.

그 보잘것 없는 것을 얻기 위해서 몸을 숙이고 다니면서 사실은 정말 소중한 걸 내어주고 있었다.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 줄 사람같은거 필요하지 않다.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스럽고, 온전할 수 있다.


'필요' 혹은 '결핍'에 의한 관계가 얼마나 나를 더 파국으로 치닫게 만드는지 35년간 배웠으면 충분하다.

여기서 또 한 번 이런 관계에 빠져든다면 바보 인증이다, 진짜.

그렇다고 너무 마음을 굳게 닫아 버려서도 안된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들이 나에게 흘러 들어올 수 있도록.




주말을 보내고 하레네 집으로 가서 현관을 열고 들어 서자마자 하레가 두두두 달려 나온다.

내 품에 안겨서 한참이나 얼굴을 비비고 머리로 쿵쿵 박으면서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그리고는 기분이 좋아져서 앞머리가 땀에 다 젖도록 뛰고, 소리 지르고, 나를 흉내내는 건지 눈을 반달 모양으로 만들어가면서 웃는다.


하도 격하게 반기는 하레를 보고 너무 웃다가 눈물까지 나서 아이라인이 다 지워졌다.

땀이 발효된건지 몸에서 술냄새 같은 게 나서 하레아빠한테 얘 술먹은거 아니냐고 묻고는 우리 둘 다 "너 진짜 술 마셨니?"하고 웃었다. 


그래, 나를 이렇게 반겨주고 아껴주고 좋아해주는 사람도 있다.

나도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늘 부루퉁하고 제 힘으로 뭐 하나 할 줄도 모르고 남 욕을 하거나 뭘 먹어야 신이 나는 우울한 여자 기분이나 맞춰줘야 되는 사람이 아니야!!


내가 쏟아 부은만큼 나에게 '정서적으로' 되돌려주는 유일한 사람이 어쩌면 하레일지도 모르겠다.

J는 그저 정신없이 집어 삼키기만 한다.  

어쩌면 계산없이 진실하고 따뜻한 사랑을 하레로부터 처음 받아보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맺어보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건강한 관계'이다.




J와 어른답게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만나기 전에 몇 가지 다짐을 했다.

-절대로 J를 비난하지 말 것.

-내 감정과 생각만 전할 것.

-J가 어떤 감정과 생각을 느낄지는 내 통제 밖이다. 하지만 내가 줄 수 있는 최상의 친절함은 지금 내 눈에 명확히 보이는 문제들을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해주는 것 뿐이다.

-말을 하기 전에 '진실인가? 친절한가? 꼭 필요한가?'를 생각하자.

-간결하게 요점만 이야기하자.


나는 최근에 절친이라고 믿었던 우리 사이에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

나는 진짜 너가 누군지 모르고, 너도 진짜 내가 누군지 모르니 서로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끼리 '관계'를 만들 수는 없어.


우리는 그냥 0.5들끼리 모여서 겨우 1을 만들며, '의존'하고 있었던 거야.

요즘 너와 함께 있을 때 느껴지는 짜증과 분노, 그리고 끌어 내려지는 기분을 안간힘을 쓰며 휘둘리지 않으려 애쓰는 게 나에겐 참 힘이 드는 일이야.

일 년전엔 '니가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기대도 없어.

니가 계속 이 상태면, 어쩌면 우리는 그냥 여기서 '끝'일지도 몰라.


J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니 숙제지."라고 말했다.

남의 숙제를 항상 발벗고 나서서 해주는 것도 내가 고쳐야 할 나의 낡은 패턴이라고.

나는 해야 할 내 숙제가 있고, 내 코가 석자야.

앞으로 남의 숙제는 절대로 하지 않을 거야.

니 숙제는 니가 알아서 해.


평소처럼 입을 꾹 다물고 그냥 짜증스러워 죽어버리고 싶다는 식의 반응이 나오더라도 내 할 말은 끝까지 다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의외로 J는 눈물을 보이면서 나에게 "니가 너무 큰 돌을 던졌어."라고 했다.


낡은 시스템을 없애려면 '아주 큰 충격' 이 필요해.

기존의 시스템이 더이상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큰 충격.

그리고 아직 새로운 시스템이 생기지 않은 그 사이에서의 혼란, 우왕좌왕, 두려움들을 그대로 다 경험해야 해.

'익숙한 안락함'에 붙어 있으려고 하면 결국 낡은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될 뿐이야.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니가 '안다'라는 생각을 다 버리고 기쁨, 행복, 사랑같은 감정들을 새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너는 그게 뭔지 모르는 것 같아.

자꾸 옷사고, 헤어스타일 바꾸고, 맛집 찾아다니면서 기분전환하지 말고 내면을 들여다 봐.


집중력을 키워서 니가 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에 집중해봐.

자꾸 산만해지고 상상, 망상, 인스타그램 등 온갖 곳으로 도망치는 건 니가 '너 자신'과 있는 게 끔찍하게 싫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원인이 뭔지 모르겠지만 지금 너에게서 하레의 불행하던 시절의 모습이 보여.

너는 34개월 유아기의 어느 순간에 고착된 것 같아.

그 이유를 찾고, 그만 도망치고 마주해.

자꾸 도망치면 니 몸이 너를 대신해서 말하고 너는 점점 아프고 힘들고 불행해 질거야.


하지만 너는 결국은 내 말도 듣지 말아야 해.

니 안에서 나오는 들리지 않는 그 소리만 들어야지.

나는 말 못하는 아기인 하레가 하는 말까지 알아듣고 남들의 불편함을 잘 읽어주는 사람이지만, 요즘은 하레가 무언가 분명하게 말하지 않으면 안들어 줘.

앞으로 너도 나를 만나면 아주 불편할 거야.

앞으로는 니가 제대로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하나도 알아듣지 않을거거든.


J는 '배려'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도 포함이냐고 묻길래, '진정한 배려'라면 기꺼이 해야지. 너는 사실은 거절하는 게 두려워서 억지로 따라오면서 하기 싫은 티를 온몸으로 표현해서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잖아, 라고 말하자 한 방 먹은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우리가 이 의존을 청산하고 어른 대 어른으로서 관계를 새롭게 시작했으면 좋겠지만, 그건 그냥 내 바램인거고 그게 이뤄지지 않아도 이젠 상관없어. 

그럼 그냥 끝인거지 뭐. 라고 하자 어찌할바를 몰라하더니 붙이고 나온 인조 속눈썹까지 뜯어내고 하염없이 울었다.


차라리 이게 '진실'하다,고 생각했다.

늘 짜증 가득한 삐쭉거리는 표정으로 있던 모습보다.

넋이 좀 나간 것 같았지만, 평소에 넋놓고 다니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은 넋놓음이었다.


카페에서 나와 주차장까지 그냥 말없이 걸었다.

"연락 끊자는 거 아니야. 이렇게 붙어 있어봤자 서로에게 좋을 게 없어. '니'가 아니, '우리'가 어른 대 어른으로 만날 수 있을 때까지 좀 시간을 갖자."라고 하고 안아주었다.

그냥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안아주었다.

운전하면서 울지 말라고, 조심하라고 했다.


J가 계속 울자 나도 좀 눈물이 났다.

마지막 인사로 "잘 가."라고 했다.

또 보자, 가 아닌.

정말로 오늘이 마지막일수도 있으니까.


J를 보내고 돌아서자 눈물이 나면서도 동시에 '홀가분함'과 '후련함'이 압도적으로 몰려왔다.

그리고 이 감정들이 내가 '옳은 결정'을 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인생의 한 챕터를 또 이렇게 마감했다.


이제 정말 '내가 되어야 할 것'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자.

앞으로는 더이상 내가 성장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을 내 인생에 들이진 말아야지.


그리고 우리가 누구의 탓을 하며 상처를 주거나 외면하는 방식이 아닌 어른스러운 방식으로 대화를 통해서 마무리를 했다는 게 기뻤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었다.

우리는 그저 잘못을 바로잡았다.




지난번에 저녁을 먹을 때 누군가에게 사랑한 이야기를 했더니 울로프가 말했다. 

'세상에는 말로만 하는 사람들이 있고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 말로만 하는 사람인 게 느껴지면 끊으면 돼. 그리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들만 간직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간단한 거야.'


<괜찮아지는 중입니다> p.74 - 안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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