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보다 강했던 리스의 나비효과
성북동 입구, 언덕배기를 오르는 길. 좁은 골목을 따라 올라가는 데 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집들과 뭔가 달랐다. 대문이 유독 환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이유를 알았습니다. 나무 대문에 커다란 크리스마스 리스가 걸려 있었다. 아직 11월 초인데도 빨간 리본과 장식들이 풍성하고 화려한 리스가 달려있었다. 빨간색은 오행에서 불(火)의 기운을 상징하며, 명예와 소통 그리고 열정을 뜻한다.
'여기는구나'!
지인의 소개로 찾아온 집이었다. 120평 규모의 오래된 주택, 리모델링 상담 의뢰였다. 집주인이 유명 대학의 교수님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꽤 섬세하고 날카로운 분"이라는 귀띔에 긴장하며 초인종을 눌렀다.
"네! 들어오세요!" 문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예상과 달랐다. 명랑하고 밝았다. 문이 열리고 교수님은 환한 미소로 저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 순간 어깨를 가득 채웠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주방 옆 아이방을 다이닝 공간으로 확장하는 비교적 소규모 프로젝트였다. 교수님은 원하는 내용을 경쾌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명확했지만 강압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 의견을 물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
진짜 물어보고 있었다. 형식적인 질문이 아닌. 내가 설명하는 동안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셨다. 그리고, 내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셨다. 중간에 끊지 않았다. 자존심이나 고집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인의 소개로 온 낯선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마치 오랜 친구처럼 대해주셨다. 그 태도에 나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렸다.
언덕 동네의 인테리어 작업이 시작되고, 그 동네를 자주 오르내렸다. 이 동네는 집집마다 높게 올라간 성벽 같은 담벼락이 있어 프라이버시에 좋지만, 다소 폐쇄적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거리에서 만난 청소부 아저씨, 강아지와 산책 나온 주민들 다들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주었다. 교수님 댁도 마찬가지였다. 공사 중인데도 집 안 분위기가 무겁지 않았다. 교수님은 가끔 현장에 나와 작업자들에게 음료수를 건네며 웃어 주셨다. 작업자들도 덩달아 밝아졌다.
어느 날, 벽을 철거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배관이 나와서 공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걱정하며 교수님께 설명드렸는데, "그럴 수 있죠. 오래된 집이니까요." 화를 내거나 다그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선생님의 의견 들어볼게요."
오히려 저를 먼저 배려했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사람은 자신의 불편함보다 상대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사람이구나. 인테리어를 매개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교수님의 태도는 불(火)의 기운이 공간을 넘어 사람에게 긍정적인 빛과 열을 전달하는 방식 그대로를 보여 주었다.
불의 기운은 공간에서 가장 밝은 조명, 개방된 창문, 그리고 삼각형이나 뾰족한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명예와 소통을 상징하는 현관과 거실의 가장 밝은 곳에 빨간색이나 오렌지색 소품을 두어 불의 기운을 강화한다.
교수님 댁 대문 앞 빨간 리스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 집의 유쾌함이었고, 열정이었고, 따뜻함이었습니다. 11월에 미리 걸어 둔 크리스마스 리스처럼, 그분은 아직 오지 않은 기쁨을 미리 맞이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집은 사람을 닮고, 때로는 사람이 집을 닮기도 한다. 교수님의 밝은 에너지가 공간을 넘어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불을 지탱하는 단단한 연료가 있기 때문이다.
불이 과도하면 감정적인 폭발이나 가벼운 소통으로 흐르기 쉽다. 하지만 교수님의 태도는 깊은 배려와 성장이 바탕이 되어 있었다. 이 '단단한 연료'는 오행 중 '나무(木)'의 기운이다. 소통과 명예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성장과 배려가 필수다. 다음 장에서는 이 '나무(木)'의 기운이 공간과 가족의 관계에서 어떻게 활력과 지속적인 성장을 불어넣는지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