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투자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것들...
처음 그 집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나는 숨을 잠시 멈췄다.
마호가니 복도와 넓은 현관, 먼지 하나 없이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 그리고 그 위에 가지런히 놓인 파란 로퍼와 슬리퍼들. 마치 준비된 무대 같았다. 모든 것이 정돈되고, 빛나고 있었다.
거실에 들어서니, 햇살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반쯤 내려온 커튼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은 거실 중앙의 어항에 무지개를 만들고 있었다. 물속을 유영하는 잉어들이 그 빛 속에서 춤을 추듯 움직였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삶의 여유와 품격을 담은 무대라는 것을. 안방은 또 다른 세계였다. 벽면을 가득 채운 붙박이 가구와 천장에서 반짝이는 샹들리에, 세월이 묻어났지만 하나하나 정갈하게 관리된 흔적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창가, 그리고 밝고 여유로운 표정의 안주인.
그분의 손끝에 섬세하게 발라진 분홍색 매니큐어까지 이 집을 닮아 있었다. 조용하고 차분하면서도 품격 있는 여유. 당시 30대 초반이던 나는 프리랜서로 일하던 초짜였다. 새벽 다섯 시부터 현장에 나가며 화장실 타일 메지를 손톱과 칫솔로 닦았다. 마지막 날, 청소비를 아끼려고 마스크를 쓰고 청소기로 밤새 방 다섯 개를 청소했다. 그곳에서 나는 깨달았다. 부자는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삶을 가꾸고 공간을 돌보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10년이 흘렀다.
다시 그 집을 찾았을 때, 나는 이제 경험 많은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전면 리모델링이었다. 큰 공사였다. "이번 공사는 규모가 커서 소음이 많이 날 것 같습니다." 관리실에서 먼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민원만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관리실 아저씨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주민들 예민하거든요. 혹시 뭔가 방법이 있을까요?" 나는 알고 있었다. 민원이 나오면 관리실에서 작업을 중단시킨다는 것을. 그래서 결정했다.
그날 오후, 나는 멜론 두 개씩 들어간 과일박스 20개를 준비했다. 그 시절에는 조금 귀했던 멜론이었다. 앞집, 옆집, 윗집, 아랫집... 라인별로 돌아가며 모든 집에 전달했다."공사로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솔직히 경비가 만만치 않았다. 혹시 이 프로젝트가 손해가 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민원 없이 공사를 마치고 싶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한 달 후 동네 반상회가 있었다. 그날 이웃들이 사모님에게 하나둘 인사를 건넸다. "사모님, 그때 과일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인테리어 하시는 분이 정말 세심하시더라고요." 사람들은 내가 그 집에서 인테리어 비용을 꽤 후하게 받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사실은 민원 방지를 위한 나름의 투자였는데 말이다. 반상회에 다녀오신 사모님이 나를 불렀다. "이웃들이 모두 고마워하더라고요. 덕분에 우리 집 체면도 살았고..." 그러더니 봉투 하나를 건네셨다. "이건 작은 보너스예요.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그때 나는 깨달았다. 때로는 손해 같은 투자가 진짜 기회를 만든다는 것을.
돈이란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흐를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흐름은 결국 공간을 돌보는 마음,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그 이후에도 꾸준히 그 가족의 일을 맡게 되었다. 어떤 프로젝트는 당장 경비가 과하게 나가는 것 같아도,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나에게 또 다른 투자의 개념이었다. 그 가족은 나에게 '기회'였고, '운'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기회를 통해 배웠다.
'운은 준비된 공간에서 머물고, 준비된 마음에서 자란다'는 진리를.
지금 나는, 그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공간은 어떤가요? 그 공간에서 당신은 빛나고 있나요? 그리고 당신은 오늘 누군가를 위해 작은 투자를 했나요? 운은 기다리지 않습니다. 작은 정리와 따뜻한 배려로 시작해 보세요. 그것이 당신의 공간을, 그리고 당신의 삶을 바꾸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