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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와이프의 갑질

공간이 전하는 행복의 온도

by 운채



요즘 중소기업 대표들을 만나서 인테리어 상담을 하다 보면,
가끔 '진상'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갑과 을은 항상 수직 관계지만, 가끔은 나도 갑처럼 일하고 싶을 때가 있다.





회사라는 공간의 스트레스성 현상

이제 막 법인으로 전환한 한류의 붐을 타고 호황기를 맞이한 화장품 회사가 있다. 직원이 갑자기 20명 가까이 되면서 부족해진 사무공간을 확장해야 했다. 새로 입주를 시작한 지식산업센터로 이전을 하면서 우리 회사와 인테리어를 진행하게 되었다. 대표님은 인테리어에 관해, 직원들의 의견을 100% 반영하고 싶어 했고, 나는 그런 대표님의 의견을 받아들여 직원들에게 조금 더 나은 공간을 만들기 주기 위해 여러 의견들을 취합하고 있었다.


그런데, 직원들의 의견을 적용해서 디자인한 인테리어 내용에 자꾸 딴지를 거는 여직원이 있었다. 나이는 많지 않았는데, 창립멤버로서 사장님의 신뢰를 받는 직원이라 함께 일하는 다른 직원들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흔히 말하는 오피스 와이프 같았다.


몇 번의 수정을 거쳐 대표님께도 컨펌이 끝난 최종 3d 작업과 견적서를 담당자에게 보냈다. 갑자기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최종 결정된 디자인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니 다시 수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진행하면서 수정사항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일단 계약 후, 다시 정리하자는 의견을 보냈는데, 당장 사무실로 오라는 것이었다. 일단 사무실로 방문했다. 그런데, 기다린 것은 담당자가 아닌, 그 여직원이었다.


"이거 디자인이 왜 이래요?? 제가 말씀드린 부분이 하나도 적용이 안 되었는데요. 그리고, 다른 회사에서 해온 건 이거보다 퀄리티도 좋고 저렴한데, 여긴 디자인도 그렇고 비싸기도 하잖아요!!"


회사 입장에서 비용을 생각하면 꼼꼼히 살펴보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구체적인 언급 없이 다른 회사와 비교를 하거나 가격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대개 자신이 소개한 업체가 안됐을 경우 이런 분위기를 만든다.

나도 기분 나쁜 심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대표님께도 최종 컨펌받은 거라, 수정은 이제 안됩니다"

"그리고, 오픈날짜가 정해져 있어서 더 이상 미루시면 최종 이사날짜를 뒤로 미뤄야 하실 수도 있어요."

그 여직원은 나를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더니, "그래요? 그럼 제가 다시 사장님께 말씀드릴게요"


그 자리에서 사장님께 전화를 드려 확인시켜주고 싶었지만, 담당자의 상황도 있고, 이 여직원의 태도로 보아, 맞서는 것은 서로에게 안 좋을 것 같아서 일단 그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돌아오면서 화가 나고, 기가 막혔다. 회사의 최종 결정자가 결정한 사항을 직원이 바꾸라는 것이다.


갑과 을, 그리고 윈윈의 방법

차 안에서 일단 회사로 전화를 걸어서 진행하고 있는 작업을 일단 중단시켰다. 인테리어는 모든 일이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직접 진행하기 때문에 선 작업이 필요하다. 이런 마찰은 작업자들의 갑질과 클라이언트의 갑질까지 이중고를 겪는 경우도 가끔 있다.


하루 종일 기다렸으나, 전화가 없었다. 다음 날, 일단 대표에게 전화를 해서 디자인 변경사항에 대해 문의를 했다. 그런데, 대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직원이 아직 아무 얘기도 없었다는 것이었고, 진행이 되는 줄 알고 있다고 했다.


황당하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 어제 대표님 바쁘셔서 오늘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왜 먼저 전화하셨어요? 아! 제가 알아서 하는 거죠. 왜 그걸 그쪽 회사에서 이래라저래라 하세요!"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고, 나는 이런 무례한 태도에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그럼 오늘 말씀드리고, 내일까지 연락을 주세요! 저희도 인원들이 무조건 대기를 시킬 수 없어요"


나는 더 이상 전화기를 붙들고 있을 수 없어 전화기를 내려놓고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 여직원은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은 불평을 을인 나에게 쏟아내고 있다. 갑이라는 위치에서 자신의 직위를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다.


나는 윈윈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기다리는 것만이 상책은 아니다.


스타벅스에서 딜리버리 서비스를 시키고, 그 회사로 향했다. 도착할 때쯤, 커피가 도착했고, 사무실로 올라가 그 여직원을 찾았다. 내 손에 들린 스타벅스 커피를 보며 나를 쳐다보았다.


"아! 대리님 제가 놓친 게 있나 봐요. 대리님 말씀대로 디자인이 공정이나 견적에 많이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려고요. 원하시는 디자인 말씀해 주시면 제가 수정을 해 볼게요." 나는 준비한 도면과 견적서를 들이밀며 말했다.


그 여직원은 다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대표님과 상의를 해야 하지만.... 많이 바뀔 건 없어 보여요." 말끝을 흐리며 그녀가 순하게 말했다. "아..! 네 그럼 제가 일정에 맞춰서 인원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결정되시면 오늘이라도 연락 주세요." 일단, 그렇게 못을 박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 프로젝트는 한 달간 진행되었고, 그 여직원은 이후로 나에게 딴지를 걸거나, 힘들게 하진 않았다. 훗날 전해 들은 회사 직원의 얘기는 이랬다. 어린 나이에 회사에 들어와서 오랜 시간 성실하게 일하다 보니, 대표님과 자주 돈 문제로 얽히게 되었고, 자금이 부족해서 힘들 때, 그 여직원이 자신이 모은 2000만 원을 회사에 투자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대표님은 그 여직원의 의견을 거의 100% 수용을 했고, 이 직원이 회사의 대외업무를 결정을 해 왔다는 것이다.


자신이 키운 회사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피스 와이프가 성행하는 회사의 특징이 거의 비슷하다.


공간이 사람의 운을 짓는다는 것

가끔 나도 클라이언트와 감정적으로 대응을 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싸울 때도 있다. 갑과 을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글쓰기에 을은 없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오피스 와이프의 갑질 사례는 결국 공간을 다스리는 일이 사람의 관계와 감정을 다루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예산, 컬러, 시공업체를 다루는 법을 배웠지만,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의 '불완전함'일 것이다.


우리는 완벽한 집을 지었을 때, 과연 완벽한 사람이 될까?


이 모든 여정을 통해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집은 그저 건축물이 아니라, 우리의 불완전함을 끌어안고 삶의 기운을 다스려주는 가장 헌신적인 동반자라는 것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 삶의 가장 소중한 흔적들이 집이라는 공간에 쌓이고, 그 조화가 곧 운을 짓는 집의 완성이 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공간이 삶의 가장 평온하고 강인한 뿌리가 되기를 기원한다!


이제 현장에서 만난 사람 중 가장 복잡하고 슬펐던 한 남자의 이야기로 이 긴 여정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수갑을 차고 떠난 사람' 그 이야기는 결국 집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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