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만난 사람의 두 모습
현장에서 가장 성실했던 일꾼.
3개월 후, 그는 수갑을 차고 떠났다.
그 충격적인 뒷모습은 집이라는 공간의 가장 근본적인 의미를 깨닫게 했다.
인테리어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직 회사도 작고, 모든 게 서툴렀을 때였다. 현장에 청소와 잡일을 해줄 사람이 필요해 인력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다음 날 아침, 성실해 보이는 한 남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를 나누고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내가 시키기도 전에 미리미리 일을 찾아서 했다. 청소도 꼼꼼하게, 정리도 깔끔하게.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나는 고마웠다. 현장에서 성실하며, 일머리도 좋은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으니까.
그날 이후, 나는 현장이 생길 때마다 그분에게 연락했다. "이번 현장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알겠습니다." 항상 흔쾌히 와주었다. 일당도 조금 더 드리고, 목욕비도 따로 챙겨드렸다. 일을 잘하는 분이니까 당연한 대접이었다.
3개월쯤 지났을 때는 작은 현장 하나를 완전히 맡기기도 했다. "여기 청소하고 정리 좀 부탁드려요. 제가 오후에 다른 현장 가야 해서요." "알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믿을 만했다.
어느 날 오후, 그날도 평범한 날이었다. 나는 현장에서 작업을 확인하고 있었고, 그분은 한쪽에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현장 문이 열리며 두 남자가 들어왔다.
"여기 사장님이신가요?" "네, 그런데요?" 한 남자가 사진을 꺼내 보였다. "이 사람, 여기서 일하나요?" 사진 속 얼굴. 지금 저쪽에서 청소하고 있는 그분이었다. "네, 맞아요. 우리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인데요. 무슨 일이세요?" 두 남자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그제야 말했다. "저희 형사입니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형사 두 명이 그분에게 다가갔다. "000 씨 맞으시죠?" "..." 그분은 아무 말이 없었다. 저항도 하지 않았다.
찰칵. 수갑이 채워졌다. "사기죄로 고발되어 수배 중이셨습니다. 같이 가시죠." 그렇게 그분은 형사 두 명과 함께 차를 타고 떠났다.
현장에는 그분이 쓰던 청소 도구만 남았다.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3개월. 거의 매일 함께 일을 했다. 그렇게 성실한 사람이었는데. 일도 잘했고, 예의도 바르고, 책임감도 있었는데.
정말 알 수 없는 것은 사람이구나... 나는 그날 이후, 깨달았다. 현장에서의 그는 정말로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다. 거짓이 아니었다. 연기가 아니었다. 진짜로 그렇게 일했다. 하지만 동시에, 어딘가에서는 사기를 쳤고, 누군가를 속였고, 수배되고 있었다. 그 두 가지가 한 사람 안에 공존했다.
이후 나는 그 인력회사에 다시 전화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를 받아서 현장직을 채웠다. 믿었던 사람이 수갑을 차고 끌려가는 모습. 그 충격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을 믿는 게 두려워졌다.
30년이 지나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도망 다니며 숨어 지내야 했던 이유. 그럼에도 성실하게 일했던 이유.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사람은 하나의 모습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 현장에서 성실한 일꾼이면서 동시에 수배자일 수 있다는 것.
인테리어 일을 35년 넘게 하면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점점 깨달았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게 나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당신이 함께 일하는 사람. 당신이 집을 짓고 있는 그 사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는가? 아니, 더 중요한 질문은... 당신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는 성실한 일꾼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실망을 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후 30년이 지난 지금, 나는 확신한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지만, 우리가 짓는 '집'은 그 부족함을 감싸 안고, 때로는 복잡한 우리 내면의 '기운'을 정화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물(水)의 안정감과 흙(土)의 무게가 불안정한 우리의 감정을 붙잡아 주듯, 이 책에서 제시한 오행의 원리가 당신의 복잡한 삶에 가장 편안한 쉼터를 제공하기를 바란다.
수갑을 차고 떠난 그의 뒷모습은 집이라는 공간이 '인간의 불완전함을 포용하는 거대한 그릇'임을 깨닫게 했다. 결국 집은 우리 삶의 오행을 완성하는 공시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우리를 안아주는 가장 안전하고 따듯한 공간이다. 당신의 집이, 당신의 가장 좋은 모습만을 비추어주기 바라본다.
결국, 집은 우리 삶의 오행을 완성하는 공간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우리를
안아주는 가장 안전하고 따듯한 공간이다.